일제 남긴 자리, 우리는 뭘하며 지냈나?

[서평] 군산에 모인 '인문학 해적단' <왜 우리는 군산에 가는가>

조종안 | 기사입력 2014/08/22 [04:56]

일제 남긴 자리, 우리는 뭘하며 지냈나?

[서평] 군산에 모인 '인문학 해적단' <왜 우리는 군산에 가는가>

조종안 | 입력 : 2014/08/22 [04:56]

[신문고뉴스] 조종안 기자 = 전북 군산은 일제 식민지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다. 관공서, 주택, 사찰, 쌀 창고 등 일제강점기 건물과 개항(1899년) 이후 설계된 바둑판 모양의 격자형 도로망이 그대로 남아있다. '원도심권 자체가 박물관'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해방 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3세대에게 군산은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책 <왜 우리는 군산에 가는가>가 출간됐다.   
 

▲ <왜 우리는 군산에 가는가> 표지     © 조종안

책을 처음 받아들고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허름한 판잣집과 색 바랜 시멘트 건물이 마주 보며 늘어선 군산시 경암동 '철길마을'과 7~8년 전에 운행이 끊긴 폐철도 등. 그 묘한 풍경을 대각선으로 나눠 밝음과 어둠으로 처리한 표지 사진에서 그들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20대부터 30대까지, 젊은이 여덟 명이 자신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대로 정리한 군산 여행기를 수많은 논의와 수정 작업 끝에 책으로 엮었다. 강석훈 저자 대표는 "내용이 알차고 재미있다고 모두가 동의했음에도 책의 성향과 맞지 않아 탈락한 원고도 많다"고 귀띔했다. 
   
군산에 모인 '인문학 해적단'
 
대학에서 민속학을 전공하고 서울 역사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에서 근무하다 얼마 전부터 문화재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강석훈(34) 저자 대표(아래 강석훈 해설사)를 만났다.
 
<왜 우리는 군산에 가는가>에서 강 해설사는 '근대문화유산거리'와 '일본식가옥'(히로쓰가옥), '사가와 가옥', '구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사택'(대한통운 사택)을, 또 다른 저자 구단비씨는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을, 노현식씨는 달동네 '해망동'을, 심효윤씨는 일본식 사찰 '동국사'를, 이동원씨는 '이영춘 가옥'을, 최미진씨는 명산동 '유곽 거리'를 다뤘다.
 
그들은 민속학, 인류학, 사진학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문학도로 '인문학 해적단'이란 이름으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이름에 '해적단'을 붙인 이유는 그들의 모임이 세상을 등지고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객 이미지와 흡사했기 때문이었단다. 그들이 군산 앞바다(비응도)에서 활동을 개시하고 처음 가진 학습 주제는 '일제강점기'였다.
 
"우리는 때에 따라 일본을 적대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하고, 우호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단지 그 시선을 가르는 중심에 역사를 따지느냐, 문화를 따지느냐의 간발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수탈의 역사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데, 대중의 문화는 꽤 받아들일 만하다'라는 이야기이다. 적대와 우호 중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를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두 가지 이미지를 자연스레 체득하여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강석훈이 쓴 '에필로그'에서)
 
강씨는 "일본에 대한 분노와 호감의 시각이 공존하기까지 우리는 아픈 과거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며 "아픈 역사를 겪은 세대, 겪은 역사를 전해 들은 세대, 겪지 않은 역사를 글로 배운 세대가 한데 모인 곳에서 이루어진 수용과 선택을 보고 싶어 군산을 찾았다"고 덧붙였다.


 

▲ 강석훈 문화재해설사     © 조종안


 

▲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미창) 사택 정원 모습     © 조종안

 


'탁류의 역사',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다
 
강석훈 해설사는 "2년 전까지만 해도 군산 관련 책을 펴낼 생각조차 못 했다"며 군산을 처음 여행하고 책을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2011년 겨울, 매스컴을 통해 군산에 일제 잔재가 많이 남아 있고, 그 잔해를 수습해 '일제 문화거리' 조성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그때 군산을 돌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마침 사진을 전공한 군산 출신 박민구 후배가 안내하겠다고 해서 2012년 5월 15일 처음으로 군산에 왔고, 군산답사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책 출판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혀 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졌죠."
 
처음 만난 젊은이들의 다양한 의견은 이내 하나로 모였다. 텍스트에 기록된 군산의 역사가 삶의 현장에서 어떤 색깔의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는지 알아보자는 것. 어둡고 아픔의 시대였던 일제강점기를 '국가의 역사'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이라는 안경을 통해서도 바라보고자 했다. 더불어 그 어둠의 통로를 지나 지금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평범한 군산 사람들과 만남에 주목했다.
 
대한제국, 일본제국, 대한민국 등 세 나라의 역사가 탁류와 함께 흐르는 항구도시 군산은 대한제국의 꿈이 좌절로 바뀌고, 일제의 헛된 야망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젊은 인문학도들은 그 '탁류의 역사'를 억지스럽게 '청류'로 걸러내기보다는 그대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군산의 길을 걸었고, 동네를 그렸고, 집을 구경했고, 유적을 찾았다. 먹거리도 맛보았고 재래시장의 향수도 만끽했다.
 
"무얼 두고 '근대 문화유산 거리'라 하는 것일까? 군산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구시가지(원도심권)로 걸어가는 내내 품게 되는 생각이다.(중략) 개발이 멈춰버린, 이제는 세월의 그늘 속에 쇠퇴해가는 잿빛 도시의 이미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간판들은 대부분 색이 바랜 터라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빽빽이 들어선 저층 건물과 사방으로 뚫린 넓은 도로를 보며 한때 이곳도 꽤 호황을 느렸을 것이란 어렴풋한 상상은 해볼 수 있다." (강석훈의 '낯선 근대문화유산 거리를 걷다'에서)
 
초등학교 시절 현장학습을 다녔던 박물관(중앙청)이 1995년 광복절에 해체되는 TV 중계를 보며 옛 조선총독부 건물인 것을 알았다는 강씨. 그는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해방 후 거부감 없이 사용하던 일제 잔해를 우리 정부가 '부쉈다가 지었다가' 오락가락했던 과정을 군산을 여행하며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제강점기를 겪은 일도 없고, 부모에게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귀동냥으로 주워들었을 뿐이다. 그 외에는 교과서를 통해 배웠다. 시험 문제를 맞추기 위해 독립운동가 이름과 업적을 정리하고 외웠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면 모두 새하얗게 지워졌고 '일본은 한반도를 철저히 수탈했고, 우리는 끈질기게 독립운동을 펼쳤다'는 문장만 머릿속에 남았다.
 
“1990년대 중반은 제가 막 사춘기를 벗어날 때였죠. 그때만 해도 일본 대중문화는 함부로 접할 수 없는 '금기문화'였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최신식 상품들은 암암리에 급격히 퍼졌고, '나쁜 것'으로 취급되던 일본의 애니메이션, 음반, 게임 등이 복제되어 음성적으로 공유했죠. 이런 현상은 저에게 일본이 '나쁜 침략자'와 '문화 선진국' 두 개의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 70~80년대 시멘트 건물이 빼곡한 군산 영화동 거리.     © 조종안
▲ 일제강점기 쌀 창고를 다목적 공연장으로 개보수한 ‘장미공연장’     © 조종안

 

 


강 해설사는 "금강이 보이는 내항 거리를 찬찬히 거닐면서 원래 있던 위치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 일본식 건축물들을 살펴봤는데, 일제 역사를 그대로 보존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부정하겠다는 것인지, 심지어는 긍정하겠다는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에 빠져들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군산의 근대문화유산 거리는 복잡한 거미줄 같은 삶의 현장으로, 일제강점기의 흔적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겪지 않은 역사를 글로 배운 세대 시각으로 '군산에 남아 있는 일제(日帝)'와 '우리가 사용하는 일제(日製)'를 구분해서 서술하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는 것.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남긴 것을 쓰다가 돌연 부수고, 부수었던 것을 새로이 짓는 상황을 지켜본 우리들의 메시지를 책에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책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제가 남긴 그 자리에서 우리는 무얼하며 지냈나?'입니다. 해방 후 3세대 여덟 명이 한 목소리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군산에 가는가> (강석훈, 구단비, 노현식, 심효윤, 이동원, 최미진, 김자혜(그림), 박민구(사진)// 2014. 6. 13. / 352쪽 / 1만 6000원)
 
덧붙임: 강석훈 외 7명(공동 저자)
 
구단비: 한양대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을 거쳐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연구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태원, 동대문 시장, 삼척 어촌 등 국내 여러 지역에 관한 글을 썼다. 군산을 시작으로 좀 더 나은 연구자이자 여행가가 되고 싶은 바람이 있다.
 
노현식: 중앙대에서 민속학을 전공했다. 취미는 ‘무작정 걷기’이고, 특기는 ‘끝없는 공상’이다. 이 책은 ‘걸으며 공상하기’의 결과물이다.
 
심효윤: 중앙대에서 민속학을, 영국 더럼대(University of Durham)에서 사회인류학을 전공했다. 현재 아시아문화개발원에서 근무 중이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 준비에 힘쓰고 있다.
 
이동원: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과 사진학을 전공했으며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로 활동했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음식, 게임, 아날로그에 관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최미진: 중앙대에서 민속학을 전공했다. 현재 남양주역사박물관 학예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 문화를 다루는 글을 썼다.
 
김자혜: 덕성여대에서 의상디자인학을 전공하고, 서양화를 부전공했다. 현재 그림 그리는 일을 행복하게 하고 있다.
 
박민구: 백제예술대에서 사진학을,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미디어영상학을 전공했다. 게으르고 부지런한 사진가이다.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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