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 생명의 그릇을 만드는 연금술사!

[인터뷰] 안성맞춤 전통유기 전수자 이종문

황윤희 기자 | 기사입력 2014/09/09 [04:16]

유기, 생명의 그릇을 만드는 연금술사!

[인터뷰] 안성맞춤 전통유기 전수자 이종문

황윤희 기자 | 입력 : 2014/09/09 [04:16]

어릴 적 큰집에 제사가 있는 날이면 놋그릇, 유기가 등장했다. 유기는 화려하고도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제상에 올랐다. 그릇에는 당연히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들이 담겼다. 어린 눈에도 유기에 담긴 음식에서는 고급스러운 기품과 중후한 멋스러움이 느껴졌다. 이후 유기를 잘 보지 못했다. 우리는 속도와 편리에 젖어 유기를 잊었다.

 

▲60대가 대부분인 유기제작에 있어서는 이종문 씨는 젊은 피다. 그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 황윤희

그런데 아, 이제야 그 유기가 과연 그릇 중에 으뜸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안성맞춤 전통유기 전수자 이종문 씨는 근 20년 가까이 유기 만드는 일에 종사했다.

 

지금 그의 집과 공방은 이전의 유기제작 공장자리에 그대로 있다. 원래 그의 큰형, 이종오(58세) 씨가 해오던 일이었다.

 

이종오 씨는 2012년 대한민국 유기명장으로 지정되었지만 현재는 건강상의 이유로 일선에 나서지 못한다고 한다.

 

유기제작은 불을 다루고 무거운 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 올려야 하는 고된 육체노동을 수반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종문 씨가 전면에서 뛰고 있다. 마흔여덟인 이 사람 60대가 대부분인 유기제작에 있어서는 완전 젊은 피다. 그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유기에는 슬픈 역사가 어려 있다. 신라시대부터 제작되었던 유기는 고려시대에는 상류층의 식기와 불교공예품으로 거듭 발전했고, 조선시대에는 사대부가의 일반적인 용기로까지 사용되었다. 중국이 도자기, 일본이 나무그릇을 주로 사용할 때 우리 민족은 합금술을 기반으로 하는 유기를 발전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유기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양길에 접어든다. 일제가 가장 탐을 냈던 공출품이 바로 유기였다. 놈들은 놋그릇을 아예 만들지 못하게 하고 가져간 놋그릇은 녹여서 총알로 만들었다. 사람 살리는 그릇이 사람 죽이는 총알이 된 기막힌 이야기다.

 

그러다 해방과 함께 명맥이 살아나는 듯했던 유기제작은 양은과 스테인리스 그릇이 나오면서 다시 뒷전으로 밀렸다. 제작이 까다롭고 고가라는 이유로 유기는 멸종위기종 저어새처럼 우리에게서 멀어진 셈이다.  

 

▲  유기의 신비한 효능을 아시는가? 방짜유기는 유해세균을 살균하고 미네랄을 방출한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그를 알아 유기문화를 독보적으로 발전시켰다.    © 황윤희

 

지금 유기의 자리는 넓지 않다. 전통문화로 보존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이종문 씨도 이즈음에는 공장을 운영하기가 무척 힘들다고 했다. 5년 전만 해도 명절이면 제기세트 주문이 밀릴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단다. 제사문화도 많이 사라지고, 고가품이어서 불경기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까닭이다. 

 

유기는 제작기법에 따라 방짜와 주물, 반방짜로 나뉜다. 주물과 방짜는 재료에서 차이가 나며, 주물이 틀에 놋물을 부어 찍어내는 방식이라면 방짜는 바둑알 모양의 달궈진 쇳물을 두드려 형체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따라서 방짜는 주로 양푼이나 징처럼 큰 물품의 제작에 사용된다.

 

이종문 씨에 따르면 오늘날 전통적인 의미의 100% 방짜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옳다. 방짜는 최소한 8명이 한 팀을 이뤄, 수많은 망치질에 열처리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공정이 무척 까다롭기 때문이다. 거기에 드는 인건비와 공력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럼 방짜유기가 없나? 그렇지는 않다. 형식은 주물을 따르되, 원재료의 합금비율이 방짜이면 그것을 이즈음 방짜유기로 일컫는다.  

 

사실 방짜는 현대 금속학자들이 세계적인 특허감이라고 칭송하는 합금술이다. 방짜는 구리와 주석을 섞은 청동제품인데, 현대 금속공학에서는 주석의 비율이 10% 이상 넘으면 깨지기 쉬워 식기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선조들은 주석을 22%까지 섞고 그것을 두드리는 방식을 개발, 방짜유기를 만들었다. 덕분에 은은한 황금빛을 내고 내구성이 더욱 높은 그릇을 만들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이러한 방짜유기는 신비로운 효능을 가지고 있다. 유해세균을 살균하고 음식을 소독하는 기능이 있는 것. 가장 독한 식중독균인 O-157균조차도 방짜유기에 놓아두면 균이 사멸되고 심지어 그릇 표면이 부식된다고 한다.

 

또 농약성분이 닿으면 탈색이 돼 위험을 알린다. 수라상에 오르는 그릇이 왜 유기였는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더불어 음식을 넣어두면 싱싱한 상태로 더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며, 그릇에서는 우리 몸에 좋은 미네랄 성분도 방출된다. 그릇이 그냥 그릇이 아니다. 그러니 이 모든 효과를 두고 방짜유기를 살아있는 그릇, 생명의 그릇이라 일컫는 것이다.  

 

이종문 씨는 어릴 적부터 유기제작을 보고 자랐고 형에게 기술 전수를 받았다. 본격적으로 일에 뛰어들 때는 전국 유기제작소를 다니며 공부하기도 했다. 일생의 과업으로 유기제작을 받아들인 셈이다.

 

현재 향토무형문화재 지정을 신청해놓고 있기도 한 그는 올해 안으로 금광면으로 공장을 이전할 생각이다. 부지를 구입해놓고 지금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공장 이전과 함께 그곳에 유기체험장을 만들고 갤러리와 커피숍도 차릴 계획이다.

 

또 유기에 담긴 비빔밥이나 잔치국수를 팔아볼까 생각 중이기도 하다. 이 모든 시도는 돈 많아서 하는 게 아니다. 대출을 통하는 것이니 그에게는 일종의 모험에 가깝다. 이종문 씨 스스로 생의 마지막 투자라고 칭했다.

 

그럼 왜 그리 하는 것일까? 그의 바람은 오직 이것이다. 일반인들이 유기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그래서 유기가 얼마나 좋은지 느끼게 하는 것. 그래야 구석으로 밀려나 전시관의 한 자리나 차지하고 있을 뿐인 우리의 유기를 전면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방짜는 현재 금속학자들이 세계적인 특허감이라고 칭송하는 합금술이다     © 황윤희


  

그의 새로운 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종문 씨는 유기제작에서 ‘혁신’을 꿈꾸고 있는 야심 많은 사내다. 사실 유기제작과정은 아직까지 원시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기계화를 했다지만 그것은 육체노동을 더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덕분에 응용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종문 씨는 그러한 원시적인 제작과정에 과학과 이론을 접목시키고자 한다. 즉 지금의 대부분 장인들이 ‘감’으로만 알고 있는 주물 붓는 기술 등을 수치화, 개량화해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많은 공정이 효율화될 거라는 생각이다.

 

또 이론화, 수치화 과정은 고가의 유기가격을 일정 수준 낮추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새로운 세대가 쉽게 제작기술을 익히도록 돕고, 응용을 가능하게 해 디자인 개선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이다. 그는 이 작업이 4~5년쯤 걸릴 거라 여기고 있다.

 

아, 대단하다. 우리는 전통을 아직 제대로 살피지도 않았다. 그 일을 그가 하려 하고 있다. 이런 걸 우리는 ‘혁신’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이 과정에 지자체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지원이 절실하다. 혼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안성시가 유기를 지역 특산품화해야 한다고 여긴다. “유기시장이 연 800억원 규모라 합니다. 젊은 층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광객 유치, 마케팅만 제대로 해도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유기문화가 죽더라도 안성유기는 죽지 않습니다. ‘유기’하면 ‘안성’하는 네임벨류가 있으니까요.”  

 

어쨌든 유기장인이란 쉬운 길이 아니다. 이종문 씨에게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물었다. 그가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저는 제가 선택한 이 길이 좋습니다. 남들 하지 않는 걸 한다는 성취감이 있습니다.

 

남들은 명퇴니 뭐니 고민하지만 이 길엔 그런 게 없죠. 또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입니다. 연륜이 쌓이고 기술이 높아지면 명예가 쌓이겠죠. 저는 ‘안성유기 지킴이’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의 대답에 단단히 여문 자긍심이 읽힌다.

 

▲ 이종문 씨는 공장 이전과 함께 그곳에 유기체험장을 만들고 갤러리와 커피숍도 차릴 계획이다. 많은 이들에게 유기를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한다.     © 황윤희

 

 

이종문 씨의 공장은 사실 어떤 공정도 기계화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전 공정이 수작업으로 전통방식과 가장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8명의 직원이 있지만 덕분에 그릇을 많이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의 작품을 구경하는데 정말 탐났다. 살아 숨 쉬는 그릇, 생명의 그릇이란 말이 더없이 매혹적이었으며, 사실 그 은은한 빛이 너무 아름다웠다.

 

곁에 이종문 씨의 아내가 이런 말을 던진다. “사람은 귀하기 때문에 유기를 써야 한다”고……. 놀라운 말이다. 그렇다. 사람은 귀하니, 그 귀한 사람에게 유기에 담긴 음식을 내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돈 모아서 유기세트를 구입하기로, 일생의 계획이 하나 더 생겼다. 그 그릇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한 끼의 식사를 대접할 것이다. 그때 그는 가장 좋은, 또 가장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아, 갖고 싶다, 유기!  

 

이 기사는 [안성신문] 제휴기사 입니다.

 

황윤희 기자 948675@hanmail.net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