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밥상, 농민이 싸워서 지켜온 것!"

[인터뷰] 22넌차 농사꾼, 가톨릭농민회 안성시협의회 김진우 회장

황윤희 기자 | 기사입력 2014/10/05 [04:53]

"우리 밥상, 농민이 싸워서 지켜온 것!"

[인터뷰] 22넌차 농사꾼, 가톨릭농민회 안성시협의회 김진우 회장

황윤희 기자 | 입력 : 2014/10/05 [04:53]

올해 마흔여덟인 김진우 씨는 22년차 농사꾼이며, 가톨릭농민회 안성시협의회 회장이다. 회장직은 벌써 세 번째 수행하고 있다. 단국대 체육대학을 나왔지만 졸업 직후 고향인 미양면으로 돌아왔다. 전공을 살려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톨릭농민회 안성시협의회 김진우 회장.   © 황윤희 기자

농사를 짓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했던 농사일과 농촌의 정서가 좋았다. 또 가업을 이을 누군가가 필요했고, 당시 연인이었던 지금의 아내도 그가 농사짓겠다는 것에 흔쾌히 찬성했다.

 

학창시절부터 12년 열애 끝에 결혼한 아내도 미양 출신이어서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생활의 여유와 행복을 알았다. 김 회장은 중학교 때부터 등교 전에 논으로 나가 일을 했다고 한다.

 

그 어린 시절의 경험이 고된 노동의 시간이 아니라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기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진우 회장은 자신의 업, 농사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 땅의 농민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4만 평 농사, 수익이 좀 될까?   그는 지금 무려 4만 평의 땅에 쌀과 양파, 마늘을 키우고 있다. 상당히 큰 규모의 농사지만 아주 바쁠 때 사람을 쓸 뿐 대부분은 혼자 짓는 농사다.

 

밭작물은 사람 손이 아니면 지을 수 없지만 벼농사의 경우 대부분 기계화가 이뤄져 가능한 일이다. 4만 평 중 1,200평만 그의 땅이다. 나머지는 모두 임대라고 했다.  

 

4만 평 농사라니, 수익이 좀 될까? 그는 쌀농사에서 한 해 1억원쯤 되는 매출을 올린다. 하지만 임대료, 비료값, 농약값, 감가상각비 등의 생산비를 제하고 나면 4천만원쯤 남는다고 한다. 그 돈도 고스란히 수익은 아니다. 거기에서 또 농기계 사느라 얻은 융자를 갚아나가야 한다.

 

그러니 1년 농사지어 김 회장이 손에 쥐는 수입이란 결국 그의 노동의 대가일 뿐이다. 그것도 땡볕에 그을리며 일한 대가로 결코 충분하다 할 수 없는 수준이다. 4만 평 농사가 그러하니 더 적은 규모의 농사는 말할 것도 없다. 김 회장은 이 땅에서 임대농이나 소규모 가족농일 경우, 그런 수익조차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양파는 3년째 지었지만 거의 재미를 못 봤다. 지난해 가격이 좋을 때는 수확이 시원치 않았고 올해는 수매가가 지난해에 비해 50%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어쨌든 인건비, 자재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는 농사다. 원래 김 회장은 벼농사만 규모화해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것으로 버텨보자는 생각이었지만 이 땅의 농업 현실에선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다변화한다는 차원에서 특화작물에 손을 댄 것인데 그것도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김 회장은 밭작물 재배는 농민들 사이에서 ‘투기’로 일컬어질 만큼 수익이 들쭉날쭉이라고 했다.  

 

 

▲ '식량 주권과 먹거리안전을 위한 2차 범국민대회'가 지난 9월2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등 집행부는 쌀 개방으로 죽어가는 농민을 상징하는 상복을 입고 쌀 개방 전면 반대를 외쳤다. 전농은 가두행진에 나선 후 행진 도중  멍석위에 허수아비 등을 눕혀 놓고 퍼포먼스를 불을 질렀다.  © 김아름내 기자

 

 

관세율 513%라는 말, 신뢰하기 어려워 

 

이즈음 쌀 관세화 개방이 이슈가 되고 있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관세화 유예조치를 철회하고 513%의 관세율을 WTO에 통보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정도의 관세율이라면 시장에서 충분히 우리 쌀을 지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농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김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513% 관세율을 통보하겠다고 하지만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그게 우리나라가 일방적으로 통보한다고 관철되는 일도 아닐 뿐더러, 설령 받아들여진다 해도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FTA 등을 진행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았을 때 시간이 지날수록 관세율이 낮아질 거란 게 분명하죠. 그래서 농민들이 반대하는 겁니다. 그동안 정부는 공산품의 수출을 위해 끊임없이 농업을 희생시켜오지 않았습니까?”

 

그가 반문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쌀 가격은 10년 전과 똑같습니다. 모든 물가가 상승할 때 쌀만 늘 그 자리였죠. 그러니 농촌이 계속 어려워질 수밖에요. 쌀은 국가의 주권입니다. 그러니 쌀 생산기반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겁니다. 농업은 생산기반이 한 번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죠. 나중에 수입해서 먹어야 하고 그러면 부르는 게 가격이 되는 날도 있을 겁니다. 필리핀의 예를 봐도 그렇습니다. 이전에 곡물수출국 1위였던 나라가 생산기반 다 헐어낸 뒤에는 식량이 없어 굶어죽는 국민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우리나라라고 없으리란 법이 없습니다. 현재도 매년 이천시의 농지만큼 전체 농지가 줄어들고 있는 마당이에요. 쌀 생산량도 현저히 줄어들고 있죠. 국민 모두가 위기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1990년 43.1%였던 것이 2011년에는 22.6%로 떨어졌다. 그것도 쌀을 빼면 5% 이하라고 한다.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땅의 배웠다는 이들이 선망해마지 않는 캐나다, 프랑스, 미국, 독일 등은 100%가 훨씬 넘는 자급률을 고수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2011년에는 쌀 자급률도 83%로 떨어졌다. 쌀 시장을 개방하면 이후에는 이 수준도 기대하기 어렵게 될 거라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정부가 우리 농업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농민단체는 아무런 제도적 뒷받침 없이 개방하지 말고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유예로 계속 가자는 거라고 전했다. 아울러 관세화 개방을 하더라도 특별법을 제정해 이후 관세율에 변동을 기할 때 국민적 합의를 통하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또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농산물 최저가 보장 등의 진정성 있는 조치가 뒤따라야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동안 정부가 정책적으로 농업을 지지해준 경우가 없습니다. 정부정책에 확실성이 없고 신뢰를 가질 수 없으니 늘 불안한 겁니다. 우리나라 농업은 외국농과 경쟁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죠. 최대한 규모화한다 해도 외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그랬다. 오랜 시간 농업을 홀대해온 대가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시간이 멀지 않은 듯했다. 휴대폰을 먹을 수는 없다. 또 휴대폰 팔아서 버는 돈은 서민들의 주머니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 등의 기후변화로 향후 십 수 년 안에 전 지구적인 식량대란이 일어날 것이라 전망하고 있는 마당이다.

 

그런 상황에서 밥상을 모조리 내어주고서 무엇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김 회장이 인상적인 말을 덧붙인다. “농촌이 어렵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농업이 지금껏 이만큼이라도 올 수 있었던 것은 농민들이 포기하지 않고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저도 가끔 전업할까 이런 생각을 할 정도지요. 농민단체 활동이 다 그런 과정에 있습니다. 그것은 농민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지만 이 땅의 농업을 지키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농민들은 싸우고 버티는 것으로 지켜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부가 우리 얘기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죠.”  

 

이 땅의 농민들에겐 투쟁이 일  

 

김 회장은 지역의 농민들이 모여 있는 어디를 가도 ‘막내’다. 그만큼 농촌에 젊은 층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그도 강도 높은 노동에 디스크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밭농사를 지을 때는 쪼그려 앉아 있기가 어려워 무릎으로 기면서 일을 하기도 한다. 사실 이 허우대 멀쩡한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1만 2천 평의 땅을 팔아 그것을 기반으로 돈 쉽게, 잘 벌 수 있는 일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에겐 이 땅의 농민이라는 자부심과 국민의 밥상을 지켜낸다는 사명감이 있다. 농민단체 회장을 세 차례씩 하고 있는 것, 그것은 김진우 회장이 그저 자기 몫만 챙기며 살지 않고 전체와 전부를 위해 싸우며 살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그는 “이 땅의 농민들에겐 투쟁이 일”이라고 했다. 

 

▲김진우 회장은 쌀은 국가의 주권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생산기반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황윤희 기자


 

대덕농협 로컬푸드 매장에선 싱싱한 가지 대여섯 개가 천 얼마에 팔리기도 한다. 싸다고 좋아하며 사지만 우리는 그 안에 어떤 노고가 숨어 있는지는 잘 모른다. 늘 풍성한 밥상을 받으면서 그것이 이 땅의 농민들의 오랜 희생과 투쟁의 대가였음을 깨닫지 못했다.

 

농민들이 포기했다면 그런 밥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정부가 국민들의 그런 밥상조차 송두리째 저당 잡히려는 모양이다. 그 대가는 대기업이나 부유한 누군가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정신 차리고 막을 일이다. 관세화 개방은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 주머니와 내 밥상의 안위가 달린 문제다.  

 

이 기사는 [안성신문]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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