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이스라엘 세리가 아니다

[편집위원장 칼럼] 공무원 연금제도 개혁, 차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임두만 | 기사입력 2014/11/04 [15:22]

공무원은 이스라엘 세리가 아니다

[편집위원장 칼럼] 공무원 연금제도 개혁, 차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임두만 | 입력 : 2014/11/04 [15:22]

[신문고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공무원 연금제도 개혁에 대해 공무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당연히 예측되는 일입니다. 공무원들은 자기 몫을 빼앗길 판인데 반발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래서 그들과는 협상도 필요하고 설득도 필요하며 끝내는 강압도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이 박근혜 정부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이나 개인들의 태도입니다. 이들은 사실상 제도 개혁에 실패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얘기들을 나눠보면 이에 대한 생각도 각각입니다. 우선 공무원 노조나 공무원들의 입장에 서서 제도개혁을 반대하는 측이 있습니다. 이들은 공무원 연금 자체가 희생에 대한 보상 차원의 복지제도였으므로, 박봉의 공무원으로 부려먹은 뒤 국가나 국민들이 공무원을 세금도둑으로 몰고 있다고 반발합니다.

 

다음은 제도개혁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박근혜 정부의 접근이 틀렸다는 측입니다. 이들은 제도는 개혁해야 하므로 반발하는 공무원들도 잘못되었다고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이 정책으로 인해 망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저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공무원들의 대우에 대한 국민적 합의라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관리하는 공적인 업무를 맡긴 공무원들에게 그 일을 하고 있는 때만 국민의 세금으로 보상할 것인지, 법이 정한 기일까지 일을 시켰음에도 우리들 공동체가 그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지 못했으니 은퇴한 뒤 사망 때까지 세금으로 보상해야 할 것인지의 합의가 그것입니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의 십일조라는 세금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430년을 이집트 땅에서 하층민으로 살았습니다. 선지자 모세가 이들을 이끌고 40년에 걸쳐 시나이반도를 횡단, 지금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인들이 사는 땅에 정착했습니다. 여기서 성서적 해석은 생략합니다. 공무원과 세금에 대한 얘기만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르단 강을 건너 정착할 땅을 정복한 모세 이후의 지도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게 각각 살아가야 할 터전(토지)을 분배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터전을 분배받지 못한 지파가 있습니다. 그들은 레위지파입니다. 이 레위지파는 모세의 혈통입니다. 모세의 형인 아론이 야훼를 통해 대제사장이 되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야훼에 대한 제사를 관리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레위지파는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공동체를 관리하는 지파가 된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육적 공동체는 모세 여호수아로 이어진 ‘정치적 지도자’가 이끌었습니다. 물론 이들이 야훼의 직통계시를 받아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이 민족들의 신인 야훼에게 제사를 드리는 영적 공동체는 아론을 시작으로 레위지파라는 한 지파 전체가 관리하게 된 것입니다. 요즘으로 본다면 한 지파 전체가 탄생 직후부터 영적 공무원이 된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 후 여호수아는 야훼의 명을 받아 이스라엘 열두지파(야곱의 열두 아들로부터 각각 형성된 혈통) 중 레위지파를 뺀 나머지 지파들에게 정복한 땅을 분배합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난 소출의 1/10을 세금으로 내게 합니다. 그 세금은 당연이 야훼의 일을 해야 하는 영적 공무원으로서 분깃을 받지 못한 레위지파 사람들의 몫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통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십일조 헌금 유래입니다.

 

우리 기독교에겐 헌금이지만 이스라엘인들은 세금입니다. 따라서 이 십일조 말고 다른 세금을 징수한 세리(세무공무원)들은 이스라엘에서 하층민 취급을 받았습니다. 특히 바벨로니아의 침공 이후 로마의 압제가 진행될 때까지 외국 점령군 앞잡이로서 세금을 거둬 침략자에게 바친 세리들은 매국노 취급을 받았습니다. 영적 공무원인 레위지파를 위해 십일조라는 세금을 엄연히 내고 있는데, 여기에 다른 명목으로 또 세금을 거둬다 침략자들에게 바치고 자기들도 치부하는 세리들은 공적 매국노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를 위해 공적 업무를 하는 공무원들을 위해 자발적 세금을 내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다시 공무원들의 연금을 충당하기 위해 또 다른 세금을 거두려 합니까? 우리의 논의는 여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국민소득이 10,000달러 이하일 때 우리 공무원들은 다른 민간 직장인에 비해 열악한 대우를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의 공무원연금 제도는 당시에 만들어 진 것입니다. 일반 기업처럼 퇴직 후 일시불로 퇴직금을 정산한다면 막대한 일시적 국고유출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연금으로 대치하며 막아온 것입니다.  

 

반면 다른 측면으로 보면 그렇더라도 박봉은 아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경제가 불안한 나라에서 국가가 매월 고정급여를 지급한다는 보장은 공무원들이 일반 직장인에 비해 월등한 신분보장이 되었고, 이는 금융기관 등에서 우대조건이 되어 특별한 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즉 현 공무원 노조나 공무원들의 주장인 박봉에 대한 반대급부가 필요할 만큼은 아니란 것입니다. 이스라엘 레위지파처럼 일생을 세금으로 보장받은 존재가 아니란 것입니다.

 

공무원들은 지금 자신들의 보수 문제를 두고 일반 사기업의 예를 동원합니다. 그러나 사기업은 일단 채용과 퇴직, 보수와 상급 등이 공무원들과 질적으로 다릅니다. 매일 매일이 전쟁이고, 그 전쟁에서 지는 순간 개인도 기업도 도태됩니다. 따라서 이기거나 이익을 내면 당연히 그에 대한 보상이 있고, 지거나 실패하면 그에 대한 책임도 분명하게 따릅니다. 이처럼 상벌이 실제적으로 분명한 사기업과 공무원을 직접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공무원에 대한 대우 문제는 공무원으로 한정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레위지파처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여 고용했던 공무원들이므로 취임한 후 법이 정한 기일 이상 근무했을 경우 무덤까지 세금으로 보장할 것인지. 아니면 봉직한 기간은 당연히 보장하되 퇴직 이후는 일부만 보장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퇴직 이후의 보장은 봉직 중의 급여에서 자신이 적립한 금액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만 하면 됩니다.

 

 

 

 

 

저는 공무원 연금제도 개혁의 논의는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공동체는 공무원에게 공동체에 대한 일을 시키고 그 일에 대한 보상을 돈이나 명예로 했습니다. 이것을 평생 보장하기로 했다면 연금 재정의 고갈은 문제가 아닙니다. 고갈이란 용어 자체도 잘못입니다. 국가나 자치단체는 아예 처음부터 그에 대한 예산까지 세워야 합니다.

 

반대로 공적업무 수행 당시에만 국가가 돈이나 명예로 보상하되 퇴직 후에는 일반 국민으로 돌아간다고 약속했으면 공무원들이 재직 중 박봉, 재직 중 차별대우 등을 말하는 것도 안 됩니다. 공무원이었기에 특별한 혜택을 주장하는 것으로만 들립니다. 지금 공무원들의 주장이 국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재직 중에도 공무원으로서 대우를 해줬는데 퇴직 후까지 대접을 해 달라는 말로만 들립니다. 그래서 철밥통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전교조라면 빨갱이라며 상종도 하지 않던 교총이 돈 때문이라면 그 빨갱이들과도 손을 잡고 ‘투쟁’이란 것을 한다고 수만 명이 모이는 모양은 그리 보기 좋은 것이 아닙니다. 민노총에 소속된 전공노가 빨갱이라면서 돈을 놓고는 같이 투쟁한다고 하는 다른 공무원들의 모양세가 보기 좋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의 길거리 투쟁, 심지어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촛불투쟁은 공공의 안녕을 해치는 행위라며 강력진압도 하고, 30,000명을 5,000명이라고 축소 발표하는 경찰이 공무원들의 돈싸움에는 느슨한 진압대형에다 주최 측이 12만이라니까 경찰은 9만이라고 근접 발표하는 것도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야당이 새누리당과 대통령의 공무원 연금개혁 드라이브에 안절부절하면서 행여 이 개혁이 성공하면 어쩌나 하는 모양세를 보이는 것도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솔직히 쪼잔해 보입니다. 노무현 정권에서 시도했다가 실패했는데 박근혜가 성공하면 박근혜가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 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이 더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가장 먼저 다시 우리 공동체의 의견을 모으는 일입니다. 우리의 공동체를 위해 일을 시킨 공무원들에게 일하는 그 기간만 돈과 명예를 보장할 것인지, 퇴직 후까지 계속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그것입니다. 이미 봉직 기간만 보장하기로 합의 되었다면 지금 공무원들의 요구는 가차없이 잘라내야 합니다.

 

그게 아니고 일정부분이라도 퇴직 후까지 보장하기로 했다면 공무원들을 도둑으로 모는 여론몰이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예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니까 다시 협의하자”가 가장 먼저 시작되어야 할 협상 수순입니다. 그래야 이 문제는 제대로 된 매듭풀기가 될 것입니다.

 

‘십일조는 당연한데 세리들이 거둬가는 세금은 착취다’라는 이스라엘인들의 인식이 세리들을 하층민, 권력 부역자, 매국노로 만들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공무원들은 우리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가 고용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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