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풍경소리, 성불하라는 인사로...

유구한 군산의 불교문화, 그 흔적을 찾아서 ④

조종안 | 기사입력 2014/11/18 [04:46]

청명한 풍경소리, 성불하라는 인사로...

유구한 군산의 불교문화, 그 흔적을 찾아서 ④

조종안 | 입력 : 2014/11/18 [04:46]

 

▲ 군산-나포 도로에서 일광사 가는 길. 뒤 배경은 오성산 줄기     © 조종안

 


[신문고뉴스] 조종안 기자 = 지난 주말(15일) 오후.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수심마을)에 있는 일광사(日光寺)를 찾았다. 군산-나포 시내버스를 타고 수심마을 정류장에서 내렸다. 두리번두리번. '오성산 일광사'가 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큰길에서 절집까지는 800m. 여유를 부리면서 걷는다. 추수가 끝난 시골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담장 너머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감들이 넉넉함을 더한다.
 
방죽(저수지)에서 한가로이 먹이 사냥을 즐기는 가창오리 가족 모습이 무척 평화롭다. 마을 들머리에서 이곳이 쌈터라는 이명순(92) 할아버지를 만났다. 밭고랑처럼 깊게 팬 주름에서 세월의 나이가 느껴진다. 달마대사를 떠오르게 하는 머리에 흰 눈썹, 긴 턱수염 등 영락없는 산신령이다. 아래는 이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수심마을 내력.

 

 

▲ 마을 내력을 설명하는 이명순 할아버지     © 조종안

 


"닦을 수(修) 마음 심(心), 마음을 닦는대서 수심마을이지, 절이 많고 중이 많이 살어서 그렇게 불렀댜. 이 동네는 풍치는 좋은디 부자는 읎구 가난헌 사람만 살어. 성산면에서 제일 빈촌이지. 산에 있던 절(암자)들은 다 철거되고 쪼끄만 절(일광사) 하나만 남었는디 어치께 절까지 가난허당게.(한숨) 옛날에는 사람이 들끓었는디 지금은 신도도 읎어. 쬐끄만 혔을 때 놀러만 댕겼지, 한 동네 살음서도 잘 안 댕깅게 당초 몰라···."


이 할아버지 말대로 수심마을은 오성산(227m) 자락이 어머니 자궁처럼 감싼 형태여서 푸근하고 편하게 느껴진다. 기록에 의하면 마을 형성 연대도 1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수가 뛰어나 수양차 찾아오는 외지인이 많았고 불자도 많이 살았다고 한다. 마을 부녀자들이 해마다 마을 뒤 큰 골에서 산신제를 모셨으며, 정상 8부 능선에서 '고산사지' 두 곳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수심마을 안쪽 길을 따라 능선을 올라가면 군산 지역에서 발견된 20여 기 고인돌 중 가장 잘생기고 규모도 큰 것으로 알려진 북방계통 고인돌도 있다. 이웃마을에서도 고인돌이 발견되어 이 지역이 석기시대부터 훌륭한 자연조건을 갖춘 생활공간이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권력과 금력을 탐낸 불도들과 노승이 부처의 노여움을 사 결국 절까지 망했다는 내용의 전설도 내려온다.


20년 전 신축한 대웅전, 세월의 깊이 느껴져

 

 

▲ 수심마을 안쪽 오르막길에 세워진 일광사 표지석     © 조종안
▲ 주차장에서 바라본 오성산 일광사,     © 조종안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꼬부랑 시골 길. 수심마을 안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할아버지와 헤어지고 10분쯤 지나 오르막길에 세워진 일광사 표지석을 만났다. 음각된 글씨가 비바람에 퇴색되어 천년고찰에 온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일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일주문도, 3층 석탑도, 사천왕상도 없다. 손으로 쌓아올린 돌탑들만이 방문객을 맞이할 뿐이다.


주차장에서 절집까지 거리는 100m쯤. 숲 속에 파묻혀서 그런지 가까운 거리임에도 대웅전 지붕이 아슴하게 보인다. 정감 넘치는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며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붉게 물든 단풍과 노오란 들국화가 양쪽에서 에스코트한다. 다른 사찰에 비해 규모는 보잘 것 없지만 아기자기한 아름다움과 그윽한 품격을 지닌 사찰이라는 생각이 든다.

 

 

▲ 소박한 멋이 풍기는 일광사 대웅전     © 조종안
▲ 석가모니 부처를 중심으로 약사여래부처와 아미타불부처를 모신 대웅전 법당.     © 조종안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잡아당기니 잠겨 있다. 법당 안에서 잠가놓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할지 망설이는데 밭에서 도라지를 캐던 보살님과 주지(해송) 스님이 옆문으로 들어가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법당에 들어서니 본존불인 석가모니 부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부처와 아미타불부처가 자리하고 있다. 은은한 향 내음이 온몸을 휘감는듯하다.


소박한 멋이 풍기는 대웅전은 높게 쌓은 석축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의 한옥 양식이다. 해송 스님 설명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에 신축했다 한다. 그럼에도 빗살무늬 창살에 공포와 단청이 없고 나뭇결을 고스란히 드러내놓고 있어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봉황이 조각된 들보도, 기둥들도 본연의 나무색을 띠고 있어 무척 단조롭다.

 

조선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불교 문화유산 두 점

 

오성산 일광사는 태고종 사찰이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찰로 알려진다. 조선 숙종 8년(1682)에 만들어진 <동여비고>에 일광사 자리에 '관성암'이란 암자가 표기되어 있어 향토사학자들은 고려 시대 이전부터 인근에 있던 수심사(修心寺) 암자로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1927년 정허경 스님이 일광사로 개칭하고 최근 중창불사를 통해 사적을 갖추었다.

 

 

▲ 향토문화유산으로 정해진 독성상(왼쪽)과 소불좌상(오른쪽)     © 조종안

 


일광사에는 두 점의 향토문화유산이 전해진다. 한 점은 조선 후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독성상(군산시 향토문화유산 제13호)이고, 한 점은 높이가 20cm 크기의 소불좌상(군산시 향토문화유산 제12호)이다. 현재는 모두 '군산불교 보물전-천년의 만남'(12월 15일까지)이 열리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독성상'은 목조로 만들어졌다. 부처님 수기를 받고 정진하는 나한 중 한 분으로 '독성수', 또는 '독성존자'(나반존자)라고도 한다. 독성의 본래 뜻은 홀로 인연의 이치를 깨달아 도를 이룬 소승불교 성자들에 대한 통칭으로, 나반존자가 홀로 깨친 이라는 뜻에서 독성이라 부른다는 것. 보통 독성상은 나이 든 아라한으로 긴 머리카락과 긴 눈썹을 드리운 상으로 묘사되고 있으나 일광사 독성상은 젊은 남자 승려 모습에 흔하지 않아서 의의가 있다 한다.
 
'소불좌상'은 돌로 만든 후 개금을 하였다. 신체보다 얼굴이 큰 편이어서 불균형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앉은 모습은 단정한 느낌을 준다. 착의법은 조선 후기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두 무릎 위 옷자락이 2~3줄 직선으로 처리되고 W자형의 대의 자락이 느슨하게 표현된 점 등 상당히 형식화된 느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두 손을 무릎에 올린 모습과 불상 규모 등에서 나한불상 중 하나로 추정한다.


절집 공간에 텃밭 가꿔 먹을거리는 거의 자급자족

 

 

▲ 대웅전에서 내려다본 수심마을, 편안한 느낌에 전망도 뛰어나다.     © 조종안

 


해송 스님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고즈넉하고 풍광도 좋아 며칠 쉬었다 가고 싶다"고 하자 스님은 "인연이 닿으니까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이지 아무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절에 가든, 성당에 가든, 교회에 가든 어머니 품 안에 들어온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 때는 마음으로 기도만 해도 좋은 기가 몸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스님은 사찰 주변의 돌탑들을 모두 만들었다고 한다. 대웅전 본존불도 직접 주조하였고, 요사채도 3~4년에 걸쳐 중축하면서 기둥과 석가래, 기와 등 주요 재료는 전주에서 헐리게 된 한옥을 해체해서 옮겨와 사용했다고 한다. 스님은 예술적 감성이 뛰어나신 것 같다고 하자 허허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 최근까지 사용했다는 인법당. 무말랭이가 소박한 정겨움을 더한다.     © 조종안

 


약수터와 인법당 주변 이곳저곳에 벌통이 여러 개 놓여있고, '밭에서 나는 인삼'이라는 무말랭이도 보인다. 가마솥 두 개가 걸린 공양간 지붕위에서는 탐스럽게 영근 박 3개가 늦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스님 설명에 따르면 절집 공간에 텃밭을 가꿔 나물, 채소, 시래기 등 먹을거리도 80~90%는 자급자족 한단다.


사찰이란 이름보다 암자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일광사는 소박한 느낌의 대웅전과 시골 외갓집 같은 요사채, 1927년 건물로 최근까지 인법당으로 사용했다는 허름한 한옥이 가람을 이룬다. 인법당으로 사용했던 옛 건물은 바닥이 온돌로 되어 있어 그 안에서 살림도 하고 예불도 올리고 했다는 것. 대화가 길어질수록 스님에 대한 호기심은 더했다.


해송 스님에게 "내년 봄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다시 찾아뵙겠다"고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대웅전 처마에서 '뎅그렁뎅그렁' 울려 퍼지는 청명한 풍경 소리가 부디 성불하시라는 인사로 느껴졌다.

 

 


참고 도서: 김중규의 <군산답사 여행의 길잡이>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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