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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인분들 수감생활 햇수 합해보니 '200년'
"조국을 사랑한 죄를 빨갱이라고 한다면 기꺼이 그 호칭을 달게 받겠다"
 
추광규 기자   기사입력  2008/12/24 [05:59]
▶ 국가보안법위반으로 5개월여 구속되었다가 지난 6월부터 불구속 재판이 진행중인 군산 동고교 김형근 교사ⓒ 추광규
한해를 마감하면서 이런저런 각종 모임이 한참이다. 월요일인 지난 22일(월) 올 한해 그 누구보다도 시련과 고초를 겪고 있는 한 사람의 재판이 끝난 후 조촐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지난 1월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다가 지난 6월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계속해서 받고 있는 군산 동고교 김형근 교사의 15차 공판이 끝난 후 였다.
 
재판은 현재 전주지방법원에서 검찰측과 김교사측 변호인단 간에 치열한 법적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이날은 변호인단이 신청한 증인들에 대한 심문이 이루어졌다.
 
김 교사가 재직했던 전북 임실 관촌중 교장선생님과 관촌중 학부형의 증인이 이어졌던 것.
 
교장선생님은 "35년 교육평생 이렇게 휼륭한 교사는 처음보았다"며 김 교사가 관촌중 재직시절 학생들을 휼륭하게 교육했다고 증언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학부형은 "우리 학부형과 학생들은 6.15를 따랐고 6.15 정신을 실천하였을 뿐이지 북한의 대남노선이나 사상을 추종하는 체제전복세력이 아니다"고 증언했다.
 
김형근 교사는 지난 1월 29일 자신이 재직중이던 전북 임실 관촌중 학생들에게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찬양.고무'등의 행동을 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바 있다. 
 
김 교사에 대해 사법당국은 전북 임실군 관촌중학교 근무 당시 관촌중 학생들이 벌인 '반전 버튼 달기 운동', '북녘 학생들에게 편지쓰기'등을 구속사유로 들어 그를 구속했었다. 특히 그에데해 <조선일보>는 김 교사가 빨치산 추모제에 학생들을 인솔해 갔다며 사설등을 통해 맹비난을 한바 있다.
 
전국각지에서 오신 10대에서 80대를 아우르는 방청객 70명
 
재판은 이날 오후2시 시작되어 세시간 남짓 진행된 후 5시경 마무리 되었다. 다음 재판은 2월 2일 오후2시에 계속된다. 이날 재판정에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재판을 지켜봤다. 10대부터 80대 까지, 선생님들 학부형들 운동단체 시민단체 진보정당 관계자들 전교조 노조등 각계각층의 70여명이 지켜 보았던 것.
 
재판이 끝난 후 옮겨간 법원 인근의 한 작은 식당에서 전주지방 특유의 각종 반찬이 푸짐하게 나오는 6천원 짜리 백반에 동동주를 겉들인 조촐한 한해 마무리 모임이 시작 되었다. 자리에 모이신 분들중에는 특히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유달리 많았다.
 
바로 비전향장기수 출신으로 소위 '통일운동가' 분들 이었다. 43년 10개월간의 수감 생활을 하신 안학섭 선생을 비롯해 1979년 남민전 사건 관련 안재구 박사등 10여분의 어르신 들이었다. 이분들은 김 교사의 재판이 시작된 후 지난 1년여 동안 단 한번도 거르지 않은채 꼬박꼬박 재판에 참석해 그 과정을 지켜 보았다고 한다.
 
안재구 박사는 인삿말에서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가. 오직 하나 였다. 우리가 사랑을 할때 그 상대방에게 모든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같은 감정을 나는 사랑하는 내 조국과 민족에게 바쳤을 뿐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가진것을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을 때 배짱이 생긴다"며 이날 자리에 모인 후배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43년의 수감생활을 경험한 안학섭 선생은 "내 모든것을 바치는 것을 빨갱이라고 하더라, 통일을 위해서 모든것을 바쳤다고 빨갱이라고 한다면 그 호칭을 달게 받겠다. 있는 사람만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통일은 언젠가는 될 것이다. 우리 세대에서 못해낸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될것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유영래 선생(80세)은 "젊은이들이 많이 모르는 것 같다. 표 하나만 잘 던지면 이런 고생을 안할텐데 표 하나 제대로 못던져 또 고생한다. 우리민족이 화합하게끔 노력하자"며 참석자들에게 당부했다.
 
회문산 빨치산 출신으로 29년이 넘는 수감생활을 하신 유영쇠(82세) 선생은 "나를 잊어 버리고 조국에 자신을 바치는 정신이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부족한것 같다. 어쨓든 민족이 하나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평화적으로 통일하자는 것은 법에 안걸린다"며 말했다.
 
남파간첩 출신으로 1963년 체포되어 1989년 석방된 김영식(67세) 선생은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 모든 일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 안재구 박사    ©편집부 ◀

  
  
▶김영식 선생     ©추광규
 

 

▶유영쇠 선생     ©추광규


'입춤'과 '대금'의 조화..."같이 하지 못하지만 재능으로 함께 하겠다"
 
허기진 배에 몇 순배 돌아간 동동주로 식사자리를 마무리 한 후 즉석에서 작은 공연이 펼쳐졌다. 1년간의 시간을 소리와 춤으로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끔 하는 시간 이었다. 바로 '전주시립' 대금 수석인 최명호 선생의 대금 연주와 예원대 유인호 교수의 '입춤' 공연이 이어졌던 것.
 
무대는 식당 탁자 몇개를 옆으로 치우고 즉석에서 마련된 두세평의 공간이 그 전부. 하지만 그 공연은 휼륭했다. 전주가 '예향'임을 여실히 증명하는 듯 했다. 공연이 이어지는 가운데 식당 여주인도 공연을 듣겠다며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설 정도였다.
 
'입춤'은 양반도포자락을 갖춰 입고 '사람의 소리에 따라 춤을 춘다'고 유 교수는 공연이 끝난 후 설명했다. 그는 계속해서 춤의 내용은 조선시대 양반가 난봉꾼이 기방에서 기녀들을 유혹하면서 추는 춤이라는 것.  
 
대금연주로 흥을 돋군 최명호 선생은 "여러분들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재능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이렇게 왔다"고 말했다. 전통공연과 함께 포크송 공연도 있었다. 박찬중씨의 기타 반주에 맞춘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이날 자리가 마무리 되었다.
 
 
▶대금 최명호 선생     ©추광규

  
  
▶  대금 연주와 '입춤'이 어우러 지고   ©추광규
 

 
▶  박찬중 씨의 포크송   ©추광규


이날 자리를 함께한 열분 남짓의 장기수 출신 어르신들의 수감기간을 헤아려보니 200년이 훌쩍 넘는다. 그 험한 시간을 감옥속에서 보냈다고 하지만 2008년 12월 오늘 그들의 얼굴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장기수 출신 10여분 들은 격렬한 투쟁심으로 똘똘 뭉친 젊은날의 '혁명전사'가 아닌 여전히 조국을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늙은 투사'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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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2/24 [05:59]  최종편집: ⓒ shinmoo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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