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사건에서 '김기춘' 초원복집 보인다

[편집위원장 칼럼] 유체이탈 화법의 대통령과 허망한 언론실체

임두만 | 기사입력 2014/12/01 [20:27]

'정윤회' 사건에서 '김기춘' 초원복집 보인다

[편집위원장 칼럼] 유체이탈 화법의 대통령과 허망한 언론실체

임두만 | 입력 : 2014/12/01 [20:27]

[신문고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정윤회(59)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한 청와대 문건 보도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1일 자신이 직접 주재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고 말하며 "이런 공직기강의 문란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사건 자체를 강력 부인했다.

 

이어서 "이 문서 유출을 누가 어떤 의도로 해 이렇게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지에 대해 조속히 밝혀야 한다"며 검찰의 조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주문했다. 더구나 "그동안 '만만회'를 비롯해 근거없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로 국민이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문건 유출과 관련된 부분을 특별수사를 지휘하는 3차장 검사 산하 특수2부에 배당하고, 명예훼손 부분은 전담 수사 부서인 형사1부(정수봉 부장검사)에 분리 배당하는 것으로 이원수사체제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국정 운영의 핵심기관인 청와대 내부의 문서가 무단으로 유출된 것은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판단한다"고 밝힘에 따라 검찰 수사는 문건 유출에 수사력이 모아질 전망이다.

 

이런 흐름을 보는 나는 과연 이 사건의 실체가 문건유출자만 색출하여 벌주는 것으로 끝나야 하는 문제인지 특별한 관심을 갖기로 했다. 즉 아무도, 어떤 언론도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내가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지난 1992년 대선 당시 부산의 초원북집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기억에서 끄집어 낸다.

 

 

 

“우리가 남이가” “영도다리 밑에 빠져죽자”

 

그 복집 골방에서 “우리가 남이가” “영도다리 밑에 빠져죽자”자는 말로 선거개입을 한 법무부 장관, 당시 안기부 부산총책, 검찰 부산총책 등을 모아놓고 공직자가 선거에 개입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한 고위 공직자, 그가 지금 이 사건의 한쪽 실세인 김기춘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 언론은 이들 고위공직자의 선거개입이라는 범법행위보다 이 범법행위를 밝혀 낸 사람을 불법도청을 한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 물꼬를 돌려버렸다. 결국 검찰은 선거가 코앞인데 공직자의 불법은 그대로 덮어두고 도둑놈을 신고한 신고자가 불법적 방법을 통해 도둑질을 밝혔다면서 신고자만 죽어라고 패는 것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 측근 그룹의 권력투쟁 현상...이를 두고 사건의 키를 ‘문건유출자’로 국한하여 물꼬를 돌리려는 조선일보와 그 아류들의 행태...이런 행태도 누군가는 고발해야 한다. 그래서 이 기록을 남긴다.

 

1.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의 장남인 김성원(48)씨는 올 초인 지난 1월 22일 사망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성원씨는 교통사고로 2013년 12월 31일 서울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으며 끝내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당시 언론들은 그러나 이런 사실들을 아주 간략하게 보도하는 것으로 끝내버려서 많은 국민들이 알지 못했다.

 

2.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인도와 스위스를 국빈으로 방문하는 중이었다. 김 실장은 교통사고를 당한 아들이 사경을 넘나들고 있는 관계로 대통령을 수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끝내 아들의 사망을 막지 못했으며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이런 여러 사정을 감안, 김 실장의 아들 사망에 대해 보도하지 않기로 했다. 이른바 자발적 엠바고였다.

 

3. '그런데 다음날인 23일 서울신문은 김기춘 실장이 대통령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그 보도의 출처는 여권과 청와대의 복수 관계자였다. 사의의 이유로는 장남의 사망 등에 따른 급격한 건강 이상 등 일신상의 이유라고 썼다. 이에 모든 언론사들은 김 실장의 사의를 확인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결국 이 법석은 외유 중인 대통령에게까지 들어갔다. 따라서 인도 방문을 마치고 스위스를 순방 중인 대통령을 수행하던 이정현 홍보수석이 귀국길에 오르면서 기자들과 만나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밝히면서 일단락되었다.

 

4. 이때 나온 이정현 수석의 브리핑 내용은 "김 실장이 '몇 차례나 사표를 냈다고 하는 등 왜 나를 흔들려고 하는 거지? 전혀 그런 일 없는데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참 좀 어처구니없다'고 말했다"며 "김 실장은 사의를 표명한 적이 없다"였다. 그리고 귀국한 다음 날인 24일은 특별히 “김 실장을 흔들어 대서 무엇을 얻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특정인을 겨냥해서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했음에도 건강 이상이 있다고 하고 정상적으로 일을 하는데 정말 알 수가 없다"는 말로 누군가 김기춘 실장을 흔들고 있음을 지적했다.

 

청와대 실세 비서관 3인방 김기춘 내치고 싶어하나...

 

당시 벌어진 이상의 정황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정윤회 국정개입설과 너무도 일치한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특정한 인물의 국정개입 의혹 및 청와대 심부의 권력투쟁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문건의 유출에 대해서만 일벌백계 운운하고 있다. 유체이탈이다. 공직사회나 청와대의 기강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어떻게든 치부만 감추면 된다는 사고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세계일보가 보도한 1월 6일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관련 보고서에서 언급한 김 실장 사퇴 공작은 위의 4가지 사실로 보아 맹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메인스트림이 당시 김기춘 실장을 매우 버거워하고 있었다는 말도 된다. 그리고 버거운 실장을 치우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을 보면 박 대통령의 김기춘 신임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김기춘을 치우려 했다면 그 작전을 한 측의 실책이다. 그렇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또 그렇다고 국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를 사법처리할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이번 사건은 국민들 사이에서 설만 무성하게 한 뒤 내부고발을 한 어떤 힘없는 공직자 한 사람이 희생되는 것으로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1992년 선거에 개입한 실권자는 당당하고 선거에 패한 정주영측만 작살이 난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린는 또 박근혜 대통령이 왜 이처럼 김기춘을 총애하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1. 2012년 대선 때 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 사건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2012년 당시 국정원장이던 원세훈과 서울경찰청장이던 김용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애초 청와대는 원세훈의 죄목에서 공직선거법을 빼기를 원했다. 그가 공직선거법으로 재판을 받으면 결국 2012년 대선 전체에 대한 검증이 재판을 통하여 이뤄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직선거법만은 극구 막아보려 했으나 당시 검찰총장이던 채동욱은 공안부 회의라는 카드까지 쓰면서 공직선거법을 적용했다.

 

2.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8월 경남 사천시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73세의 김기춘씨를 비서실장으로 전격 임명했다. 이후 곧바로 청와대의 말을 듣지 않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이 터지면서 낙마했다. 이어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이 당 핵심들 여럿을 내란음모혐의로 구속하고 법무부는 통진당을 해산하겠다고 나섰다. 이로서 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 사건이 주요 이슈에서 사라졌다. 이후 정국의 주도권은 급격하게 여권이 틀어쥐면서 김기춘 실장은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왕실장’ ‘부통령’ ‘기춘대원군’ 등으로 불리며 여권 내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다.

 

3. 그러나 김기춘의 권력 장악이 강고해질수록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는 엉망이 되었다. 총리후보로 안대희와 문창극이 낙마하는 등 수습하기 어려운 인사 참사가 나기도 했다. 그러함에도 취임 후  흔들리던 검찰을 잡아 쥐고 강력하게 친위권력을 장악한 김 실장의 능력을 높이 산 박근혜 대통령의 김기춘 의존도는 쉽게 그를 내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갔다.

 

따라서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리던 측은 잦은 인사참사를 통한 실책을 한 김기춘을 경질해야 한다고 봤던 것 같다. 즉 취임 초기 검찰을 장악하면서 권력을 안정시킨 것으로 김기춘의 역할은 끝났다고 본 것이다. 더구나 박지만과 충성 경쟁을 하는 와중에 김기춘이 자신들의 편에 서지 않는 점도 낙마시키기로 한 이유가 아닌가 보인다. 

 

오늘 세계일보는 '정윤회씨가 지난해 말 청와대 비서관 등과의 송년모임에서 김 실장 교체설을 '찌라시' 등을 통해 유포할 것을 지시했으며 이를 조사한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이 모든 내용 등을 담은 정씨 동향보고서를 1월6일자로 작성했다. 그 후 이 보고서는 당시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홍경식 민정수석->김기춘 비서실장 라인으로 보고되었으며 당사자인 김 실장이 이 수석을 통해 "사실이 아니다"며 공식 대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썼다.

 

'그러함에도 청와대는 1일까지 지난 1월 23일 이정현 홍보수석이 김 실장을 흔들어 대서 무엇을 얻을지 모르겠다며 '김기춘 흔들기'라고까지 규정했던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세계일보의 논조는 청와대가 이미 정윤회 측의 김기춘 흔들기 내용이 적힌 문건이 청와대 공식 문건임을 인정하면서도 문서유출만 문제를 삼는 것은 김기춘도 홍경식도 조웅천도 어찌할 수 없으며 더구나 정윤회도 어찌할 수 없음을 자인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제 이 사건은 더 이상 진전은 없을 것이다. 힘없는 한두 명의 공직자가 문서유출이라는 죄목으로 소추를 당하고 유야무야 될 것이다. 이를 노리고 조선일보는 사건의 실체보다 문서유출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조선일보 아류들은 지금도 그 장단에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도가 성공한 초원복집 사건도 결국은 누가 실패자인지 나타났다. 지금 힘없는 한두 명 공직자가 처벌된다고 이 사건이 끝나는 것은 아니란 교훈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 패밀리는 이처럼 역사가 주는 극명한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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