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에서 배우는 '종교인 과세' 정당성!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문윤홍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4/12/20 [08:15]

'미생'에서 배우는 '종교인 과세' 정당성!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문윤홍 칼럼니스트 | 입력 : 2014/12/20 [08:15]

요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TV드라마 '미생(未生)'말고 웹툰 '미생'에 관한 얘기다. 드라마 '미생'은 웹툰 '미생'의 흐름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웹툰의 일부 에피소드가 드라마에선 아예 통째로 빠지기도 한다. 웹툰의 15∼16편이 그런 경우이다.

 

'개고기'와 관련된 '문화적 차이' 문제로 다른 부서와 갈등이 생긴 뒤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은 에피소드다. 여기에 웹툰 '미생'의 명대사 가운데 하나가 등장한다. "외길 수순이라면 말을 살 찌워선 안 된다. 버려야 한다". 바둑 연습생 출신의 주인공 장그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바둑 격언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는다.

 

 

 

 

 

장그래는 "끝났어야 할 '죽은 말'(곤마)이 계속 이어져 대마가 된 뒤 죽으면 판 자체가 큰일난다"고 했다. 이미 불리해진 상황에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결국 가래로 막는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럴 때 당연한 '해답'을 놔두고 돌아가려고 한다. 결과는 대개 좋지 않다. 대부분 '자존심'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무의식적으로 이를 외면하려는 경향이 있다.

 

"괜찮아, 별 일 없을거야"라며 스스로 위안한다. 위기를 현실로 인정했을 경우의 스트레스를 견딜 자신이 없어서다. 이를 심리학에선 '반사적 불신'(Reflexive incredulity)이라고 한다. 비슷한 개념으로 '정상화 편향'(Normalcy bias)이라는 것도 있다. 상황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결국은 정상화될 거야"라며 그 심각성을 절대적으로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말한다.  

 

종교인 과세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 당국자가 "원칙적으로 종교인 과세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다. 그는 "국민개세주의적 관점에서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적절한 조치를 통해서 과세하자"고 말했다.

 

종교계의 반응도 예전과는 다른 것 같다. 종전에는 종교인 과세에 대하여 신성모독이나 종교탄압이라며 반발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목사들이 자발적인 소득세 납부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고, 보수적인 한국개신교계 입장을 대변해 온 교회언론회도 "납세는 국가에 도움을 주는 행위이며,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성직자들이 반대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논평을 냈다.

 

이번에도 보수교단을 대표하는 일부 개신교 단체와 교회를 제외하고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 측도 종교인 과세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톨릭은 주교회의 결정으로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고, 일부 기독교 및 불교 성직자들도 자발적으로 소득세를 내고 있다.

 

새누리당, 개신교 일부의 반발에 ‘종교인 과세’ 포기  

 

이에 반해 여당인 새누리당은 2015년 1월1일부터 시행되는 '종교인 소득 원천징수 소득세법 시행령'의 적용을 2017년으로 2년 유예할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부의장은 12월10일 “종교인 과세와 관련한 소득세법 시행령의 적용 시기를 2년 연기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전날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이같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이 종교인 과세 시행을 갑자기 연기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대형교회들의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당 관계자들이 전했다. “공무원연금, 공기업 개혁 등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종교인 과세까지 밀어붙일 경우 당이 떠안게 될 부담이 너무 크다”는 반대 목소리가 잇따르자 이완구 원내대표가 시행시기를 2년 늦추는 쪽으로 정리했다. 새누리당이 개신교의 반발에 '종교인 과세'를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12월15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소득세법 개정안을 처리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정부는 2013년 9월에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11월에는 소득세법 시행령까지 개정했다. 종교인 소득을 과세 대상에 포함시키되 80%는 필요경비로 인정해주고, 나머지 20%에 대해 주민세를 포함해 22%의 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이다.

 

소득의 4%선에 과세하는 셈이다. 이후 종교계의 의견을 일부 수용해 지난 2월 강제성을 띤 ‘원천징수’ 조항을 삭제하고, 저소득 종교인에게 근로장려세제(EITC) 혜택을 주는 수정안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 단체들이 수정안도 반대하면서 20313년에 이어 올해에도 정기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이러한 정부안에 대해 천주교와 불교는 수용 방침을 밝혔으나 대형교회들을 비롯한 개신교측에서 강력 반발하면서 결국 주요 지지기반인 개신교의 '표'를 의식한 새누리당이 백기를 든 모양새다. 새누리당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종교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번 임시국회에서 소득세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새누리당이 '2년 유예' 방침을 밝히면서 사실상 박근혜 정권하에서 종교인 과세는 물 건너간 모양새다. 2017년말 대선을 감안할 때 지금 종교인 과세를 못한 새누리당이 2년 뒤 종교인 과세를 추진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서민들에게는 담뱃세와 지방세 등을 대폭 인상하면서 개신교 압력에 종교인 과세를 포기, 표만 생각하는 여당에 대한 비난여론이 비등할 것으로 보인다.  

 

종교인 과세 여론 높아 --OECD 회원국 중 한국만 비과세   현행 세법에는 ‘종교인의 소득에 과세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없는데도 그동안 종교인들은 과세 대상이 아니었다. 역대 정부가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종교계와의 갈등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형평의 원칙에 따라 종교인 과세는 보편적인 추세라는 게 일반의 인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종교인에게 과세하고 있는 데다 헌법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해 성직자 비과세 관행이 위헌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여기에다 수년 전부터 종교인 납세를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움직임도 국내 종교계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천주교 성직자들은 1994년부터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소득세를 내고 있으며, 일부 개신교 목사들도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는 상황이다. 국민적 여론도 ’종교인 과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근 리얼미터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10명 중 7명 이상의 국민은 종교인에게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종교인들에게 이제는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71.3%로, ‘성직자인 만큼 납세를 면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 13.5%의 5배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른 몇몇 조사에서도 60% 이상이 성직자에 대한 과세에 찬성할 정도로 종교인 과세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종교인 과세 법안 논의는 2013년 9월 점화됐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과세 형평성 제고의 일환으로 종교인 과세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해 종교인 소득을 ‘원천징수’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종교인 과세를 통한 세수 규모가 1000억∼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부족한 세수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예상대로 종교계의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이듬해 여당과 야당 모두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있던 터라 표심을 의식해 과세 방침은 주춤했다.

 

기획재정부는 2013년말 다시 2015년부터 시행하는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하며 정치권을 압박했다.   그러나 법 개정안과 시행령, 다시 법 개정안을 오가는 사이 당초의 법 개정안 취지도 살리지 못한 채 크게 후퇴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논의 중인 법안은 시행령에서 종교인 소득에 대해 ‘원천징수’를 하도록 했던 내용을 ‘자진신고·납부’로 한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저소득 종교인에게 EITC 혜택을 주는 특혜도 포함시켰다.

 

그마저도 사실상 스스로 신고를 하지 않으면 세금을 내지 않게 되는 ‘솜방망이’ 법안이라는 것이다. 일부 종교인들의 반발에 직면하면서 다시 종교인의 의견을 수렴하는 간담회를 개최키로 하는 등 앞날이 순탄치 않다. 결국 여당이 이를 2년 유예하는 바람에 이번에도 무산됐다.

 

 

▲ 유대인들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납부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예수가 남긴 말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였다.‘종교인 과세’는 시대적 과제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 

 

 

합리적 방안 마련, 적시에 추진해야

 

과거에도 종교인 과세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다양한 이유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과세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목회 활동은 근로가 아니라 봉사이므로 봉사에 대한 사례에 근로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론과 이미 세금을 낸 신도의 헌금에 다시 세금을 물리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주장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조세법적 원칙에 비추어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전국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5%가 과세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와 종교계의 전향적인 입장을 기반으로 정부가 종교인 과세에 대한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 적시에 재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조치는 조세형평성 제고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높이는 정책적 차원에서도 필요할 것이다. 종교인 과세의 실질적 이행을 위한 필요조건이자 다른 차원에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종교단체의 회계투명성 제고 문제이다. 현재 전국의 종교시설이 9만여개에 이르고, 공식적 헌금 액수만 6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종교인들은 일반 직장인들과는 달리 '급여' 항목으로 소득을 받지 않는다. 통상 '사례비'외에 본인과 자녀 학비, 사택운영비, 승용차 등이 성직자에게 제공되는데 그 액수가 얼마인지 알기 어렵다. 이러한 사항들에 대한 회계적 투명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종교단체가 내부적 절차를 통해 이를 보고관리하지만 외부에 공개되거나 감사를 받은 예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단체의 회계 투명성 제고를 위해 종교법인도 외부감사를 받고 재무정보를 공개할 때가 되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토론회에서는 "(헌금 등) 종교단체에 대한 지정기부금을 세무상 손금(損金)으로 세제혜택을 주는 것은 종교단체의 공익활동을 위해서이므로, 해당 단체는 회계보고를 통해 그런 활동이 적절하게 이루어지는지를 알려야 한다"며 "외부감사 등 사회적 검증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개세주의 원칙 구현 중요  

 

최근 시대적 화두 중의 하나가 경제민주화이다. 지난 1987년 구축된 정치적 민주화 이후 25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주요 과제가 경제민주화로 전환되고 있다는 말이다. 경제 민주화의 의미는 다양하게 규정될 수 있지만 심화되어 가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완화하고 모든 국민들이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경제적 안전장치와 제도를 확보하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복지사회를 둘러싼 논의와 정치적 논란도 이러한 과제의 이행 수준과 경로에 대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중장기적 대안이 복지사회라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국가기능의 합리적 수행에 필수적인 세수(稅收) 확보의 기초가 되는 조세형평성 제고와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 원칙의 구현은 중요하다. 경제가 어려운 현실에 서민의 부담이 커질 담뱃값과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이 기정 사실화돼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 위안이 돼야 할 종교계가 국민개세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미생'에 나오는 바둑 격언처럼 외길 수순이라면 말을 살 찌워선 안 된다. 버려야 한다. '종교인 과세 법제화'에 반대하는 목사님들은 지금이라도 웹툰 '미생'을 한번 읽어보시면 어떨까? 다수의 국민은 더 이상 성직자들이 과세의 성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 있다.

 

이 기사는 [매일종교신문]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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