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정예하 진제법원 대종사 하안거 결제법어..

김성호 기자 | 기사입력 2015/05/28 [10:58]

종정예하 진제법원 대종사 하안거 결제법어..

김성호 기자 | 입력 : 2015/05/28 [10:58]

[신문고뉴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예하 진제법원 대종사는 오는 6월 1일 을미년 하안거(夏安居) 결제를 맞아 법어를 내리시고 대중들의 부단한 정진을 당부했다.

 

종정예하는 “모든 결제대중은 부처님께서 사바에 출세하신 뜻을 좇아 일구월심 참나를 밝히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며, “이번 안거 동안에 득력하여 불은(佛恩)과 시은(施恩)을 다 갚고 생사를 요달할 수 있도록 혼신의 정력을 쏟을지어다”고 당부했다.

 

안거(安居)란 동절기 3개월(음력 10월 보름에서 차년도 정월 보름까지)과 하절기 3개월 (음력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씩 전국의 스님들이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전념하는 것으로, 출가수행자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한 곳에 모여 외출을 삼가고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안거는 산스크리트어 'vrsvs'의 역어로, 인도의 우기(雨期)는 대략 4개월 가량인데, 그 중 3개월 동안 외출을 금하고 정사(精舍)나 동굴 등에서 수행하였다. 우기에는 비 때문에 유행하는 수행이 곤란하고, 또 초목과 벌레 등이 번성해지는 시기이므로 모든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기 중에는 지거수행(止居修行)을 하도록 규정한 것이 안거의 기원이다. 

 

 

 

 

 

다음은 진제법원 대종사의 하안거 법어 전문이다.

 

 

을미년 하안거 결제법어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太平治業無像<태평치업무상>이요  野老家風至淳<야노가풍지순>이라.  只管村歌社飮<지관촌가사음>하니  那知舜德堯仁<나지순덕요인>이리요.

 

태평세월에 업을 다스리는 데는 상이 없음이요,  들늙은이들의 가풍은 지극히 순함이라.  다못 촌에서 노래하고 모여서 마시는지라.  이에 순임금의 덕과 요임금의 어짊을 어찌 아리요.

 

금일은 을미년 夏安居(하안거) 결제일라. 모든 결제대중은 부처님께서 사바에 출세하신 뜻을 좇아 일구월심 참나를 밝히는 일에 몰두해야 함이로다. 우리가 세속의 온갖 부귀영화도 마다하고 일가친족 등 정으로 맺은 인연을 다 끊고 출가하여 먹물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나고죽는 고통을 영구히 여의고자 하는데 있는 것이지 다른 데 있지 아니함이로다. 그런데 이 일은 남이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어디 다른 나라에 가서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아님이라. 오직 스스로 닦아서 스스로 증득(證得)해야 함이로다.

 

불가(佛家)에는 여러 수행법이 있지만은 다른 여타의 수행법으로는 대오견성(大悟見性)이 불가능하고 오직 간화선 수행만이 이 일을 밝혀줄 수 있는 것이니, 다겁생에 만나기 힘든 이 견성법(見性法)을 만난 김에 이번 생은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수양에 몰두해야 함이로다.

 

그러면 어떻게 닦아야 참나를 밝혀 생사(生死)를 요달(了達)할 수 있음인고?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는 이 화두를 들고 오매불망 간절히 의심하고 의심해야 함이로다. 화두를 챙기고 의심을 쭈욱 밀어주기를 하루에도 천번 만번 반복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주 간절한 화두의심 한 생각이 끊어짐이 없도록 혼신을 다해 참구해야 함이로다.

 

앉아서 화두를 참구할 때는 몸가짐 자세가 반듯해야 하는 것이니, 어깨를 활짝 펴고, 허리를 반듯이 세우고, 눈은 보통으로 뜨되 1미터 앞 아래에다 시야를 고정해 두고 화두를 챙겨야 함이로다. 화두의심에 용을 써서 몸에 힘이 들어가면 상기(上氣)가 돼서 머리가 무거워져 참선을 할 수 없게 되니, 오직 생각으로만 화두를 챙기고 간절한 의심을 밀어주어야 함이로다.

 

이렇게 바른 자세로 뼈골에 사무치는 의심을 짓고 화두를 챙겨갈 거 같으면, 사위의(四威儀) 가운데 눈 앞에 화두가 떠나지 않아 졸리는 바도 없고 망상이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 가 없는 것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부가 무르익어지는 것이로다.

 

그렇게 혼신의 정력을 쏟아 무한히 노력하다보면 문득 참의심이 발동하여 화두의심 한 생각만이 또렷이 드러나게 되는데,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밥을 지으나 청소를 하나 직장일을 하나 잠을 자나,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 한 생각만 흐르는 냇물처럼 끊어짐 없이 흘러가게 됨이로다.

 

사물을 봐도 본 줄을 모르고 소리를 들어도 들은 줄을 모르게 됨이니, 다겁다생에 지어온 모든 습기가 다 녹아 없어져 버리게 됨이로다. 이러한 상태로 한 달이고 일 년이고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남과 동시에 자기의 참 모습이 환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로다. 그러면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여래(如來)의 땅에 이르게 되고 천 칠백 공안을 한 꼬챙이에 다 꿰어버리게 되는 것이니, 누가 어떠한 법문을 물어와도 척척 바른 답을 내놓게 되는 것이로다.

 

이것이 바로 호왈견성(號曰見性)이요, 확철대오(廓徹大悟)라, 반드시 선지식을 친견하여 바르게 점검받아서 인가(印可)를 받아야 함이로다. 왜 그러느냐? 광대무변한 진리의 세계는 도저히 혼자서는 다 알았다 할 수 없기에 반드시 먼저 깨달은 눈밝은 선지식을 의지해서 점검받고 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무사자오(無師自悟)는 천마외도(天魔外道)다” 즉, 정법을 이은 선지식으로부터 점검받은 바 없이 깨달았다 하는 자는 天魔外道일 뿐이라고 못을 박아놓으신 것이로다. 이렇듯 대오견성하기 위해서는 선지식의 지도 아래 철두철미한 신심으로 간절하게 의심하며 화두를 챙겨가야 함이로다.

 

그러니 모든 대중은 이 같은 자세로써 어떻게든 이번 안거 동안에 득력하여 불은(佛恩)과 시은(施恩)을 다 갚고 생사를 요달할 수 있도록 혼신의 정력을 쏟을지어다.

 

석일에 덕산(德山)선사께서 회상을 열어 대중을 지도하고 계실 때, 참으로 훌륭한 두 분의 눈 밝은 제자를 두었는데, 한 분은 암두(岩頭)선사로 참선하여 깨달은 바도 없이 그대로 생이지지(生而知之)요, 또 한 분은 훗날 천오백 대중을 거느리신 설봉(雪峰)선사였다.

 

하루는 덕산선사께서 공양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 식당으로 걸어가셨다. 공양주인 설봉스님이 이 모습을 보고 여쭙기를, “조실스님,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가지고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덕산선사께서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고개를 숙이고 조실방으로 돌아가 버리셨다. 그 광경을 설봉스님이 사형(師兄)되는 암두스님에게 말하니, 암두스님이 듣고는 대뜸 말하기를, “덕산노인이 말후구(末後句) 진리를 알지 못하는구나!” 하였다.

 

자신의 스승이건만 단 번에 이렇게 평가를 하니 법을 논함에 있어서는 스승과 제자를 따지지 않는 법이로다.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가지고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덕산선사께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간 뜻이 무엇이며, 암두스님은 어째서 덕산선사가 말후구 진리를 알지 못했다 했는지 알아야 함이로다.

 

암두스님의 그 말이 총림에 분분하여 덕산선사의 귀에 들어가니 암두스님을 불러서 물으시기를, “네가 왜 내가 말후구를 알지 못했다고 하는고?” 하시니, 암두스님이 덕산선사의 귀에다 대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은밀히 속삭였다. 그런 후로 뒷날 덕산선사께서 상당하시어 법문을 하시는데 종전과 판이하게 다르고 당당하게 법문하셨다. 법문을 다 마치시고 법상에서 내려오니, 암두스님이 덕산 선사의 손을 잡고, “정말 반갑고 즐겁습니다. 스님의 법은 천하 도인이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3년밖에 세상에 머물지 못합니다.” 하니, 덕산 선사는 과연 3년 후에 열반(涅槃)에 드셨다.

 

암두스님의 덕산선사의 귀에 대고 은밀히 속삭인 대문을 아시겠습니까? 대체 무어라고 속삭였기에 덕산선사께서 종전과는 판이하게 다르고 당당한 법문을 하신 것입니까?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 이 공안은 백천 공안 가운데 가장 알기가 어려운 법문이라, 천하 선지식도 바로 보기가 어려워 이 법문에 대해서 평을 한 이가 거의 없음이로다. 그래서 이 공안을 바로 보는 눈이 열려야 대오견성을 했다고 인정함이로다.

그러면 금일 모든 결제대중은 아시겠습니까?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산승이 양팔을 걷어붙이고 이 법문을 점검해서 천하에 공개하리니, 어째서 이와 같이 점검하였는지 대중은 잘 살필지어다. 

 

馬駒踏殺天下人<마구답살천하인>하니  臨濟未是白拈賊<임제미시백염적>이로다. 한 망아지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니,  그 위대한 임제 선사도 백염적(白拈賊)이 되지 못함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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