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역사를 바꾼 1940년 덩케르크의 3일...

[객원칼럼] 천정배를 향한 충고,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편집부 | 기사입력 2015/05/29 [03:02]

2차대전 역사를 바꾼 1940년 덩케르크의 3일...

[객원칼럼] 천정배를 향한 충고,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편집부 | 입력 : 2015/05/29 [03:02]

[신문고 뉴스] 편집부 = (이 칼럼은 외부에서 익명으로 기고된 칼럼입니다. 이 칼럼은 신문고 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은 서유럽 침공을 개시한다. 독일군의 기만전략에 완전히 말려든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순식간에 거대한 포위망에 갇혀 버리게 된다. 결국 수십만 영불 연합군은 프랑스 북부 소도시 덩케르크에 집결하여 도버해협 너머 영국으로의 탈출을 꾀한다.

 

▲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하는 영불연합군...자료사진



하지만 철수 작전이 시작된 5월 26일. 질풍노도처럼 진격하던 독일군 선봉은 이미 덩케르크 외곽 20km까지 진출했다. 손가락만 까딱해도 영불 연합군은 대서양 수장(水葬)이냐 포로 수용소행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세계 역사를 바꾼 히틀러의 명령이 독일군에게 하달된다. “진격 중지! 현위치에서 대기.”

히틀러의 진격중지 명령의 이유는 아직도 전쟁사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아있다. 영국에게 명예로운 항복의 명분을 주기 위해서였다는 설, 전공에 눈이 먼 괴링이 공습으로 연합군을 쓸어버리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라는 설, 자신도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승리를 감당하지 못한 ‘쫌팽이’ 히틀러가 혹시 연합군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조심증을 부렸다는 설 등이 제시되지만 정확한 진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히틀러의 명령에 야전군 지휘관들은 발끈했지만, 명령은 명령이었다. 5월 28일 히틀러는 다시 진격 명령을 내렸지만 그때는 이미 영불 연합군이 덩케르크 일대에 철수작전 엄호를 위한 전열을 정비한 후였다. 연합군은 상당한 희생을 치렀지만 6월 4일까지 무려 30만명 이상의 영국, 프랑스 장병들이 도버 해협을 건너는데 성공한다.(작전 초기 영국이 추산한 구출 가능 병력은 4만5천명이었다고 한다) 

4.29 보선이 새정연의 철저한 패배로 막을 내린지도 한 달이 되었다. 하지만 정치적 무능과 무책임으로 압축되는 문재인과 친노 정파의 막장 드라마 정치는 후안무치라는 단어에 꼭 들어맞는 꼬라지로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사람의 죽음은 의사의 사망진단서로 공식화 되지만, 의사가 사망선언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새정연이 집권은커녕, 정당으로서는 이미 사망한 상태의 룸펜정치인들만의 패거리 집단이라는 점은 광신적 친노 팬덤을 제외하면 모두 알고 있는 진실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과 친노 정파의 새정연은 혁신을 읊조리며 또다시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 퍼포먼스를 시도한다. 이는 야권의 패권을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놓지 않으려는 친노 정파와 이들과 야합하여 단일 야당 깃발만 꽂으면 무조건 국회의원 당선을 보장받는 철밥통에 눈이 뒤집힌 호남의 친노 부역자들이 듀엣으로 연출하는 3류 정치룸펜들의 3류 정치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정말로 이 쓰레기들이 얼마나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아는지 그 한계를 가늠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천정배의 ‘호남 정치 복원’이 호남 유권자에게 새로운 정치적 대안임을 증명한 시점도 역시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천정배의 승리는 1차 대전 참호전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영불 연합군에게 ‘전격전’이라는 신 전술로 참담한 패배를 안겼던 2차 대전 초기 독일군의 무적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그 다음은?

히틀러의 몰락은 전 인류의 축복이다. 하지만 순수한 군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만약 히틀러가 독일군에게 ‘닥치고 덩케르크로 진격!’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면 과연 영국은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천조국’ 미국을 생각하면 2차 대전의 결과는 역시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전쟁의 양상은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전쟁은 타이밍이기도 하다. 결정적 승기를 잡았음에도 주저주저, 머뭇머뭇하던 히틀러가 내린 단 3일의 진격 중지 명령이 괴멸 위기에 몰렸던 영국군을 기사회생 시켰다. 그 이후 독일 육군은 덩케르크 돌파를 위해 강한 압박을 멈추지 않았지만 죽기 살기로 맞선 연합군의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했고, 융단 폭격으로 덩케르크에 갇힌 연합군을 집단 학살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괴링의 공군도 궂은 날씨와 영국 공군의 엄호에 막혀 소소한 피해만을 입혔을 뿐이다.

1940년 5월 도버해협을 건넌 30만 명의 연합군은 4년 후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유럽 대륙으로 돌아온다. 45년 4월 벙커에서 자살로 생을 마칠 때까지 히틀러는 덩케르크 전투 당시 자신이 내렸던 이상한 명령에 대해 어떤 언급도 남기지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자신의 인생 역정 속에서 덩케르크의 실수를 뼈저리게 후회하진 않았을까?

천정배의 ‘작은 반란’은 호남 유권자에게 ‘신선한 대안의 가능성만’을 인정받았을 뿐이다. 친노 정파와 문재인에게 철퇴처럼 후려쳐진 호남발 퇴출 선고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작은 반란의 주인공 천정배로 향한 뜨거운 지지로 자동 연결되리라 믿는 사람은 문재인을 능가하는 바보 천지에 지나지 않는다. 승기를 잡았다면 상대방이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밀어붙여야 한다. 지금 야권의 갑질 세력 친노 정파와 문재인이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국민을 기만하며 뻔뻔스럽게 자행하는 3류 정치쑈에 맞서 천정배는 지금이라도 당장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적 같은 승리에 도취한 오만이었을까? 기적 같은 승리를 감당하지 못한 소심증 때문이었을까? 히틀러의 덩케르크 진격 중지 명령의 진실은 추측만 난무할 뿐 끝내 아무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에서든 히틀러가 1940년 5월에 허비한 3일의 시간은 5년이 지나지 않아 세계 지배를 꿈꾸던 히틀러가 입에 권총을 물고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게 하는 독배로 돌아왔다. 

무능과 무책임의 끝판왕 친노 정파는 패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뻔뻔스러운 막장 정치를 멈추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행동하는 양심’을 화끈하게 보여주어야 할 책임과 자격을 인정받은 ‘리틀 DJ’ 제 1호의 ‘전격전’은 신선한 대안 세력을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기다림을 모르쇠 한 채, 여전히 시작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1940년 덩케르크에서도, 2015년 대한민국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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