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5년, 세월호 참사 500일...
우리는 지금 이 역사들을 잊고 사는가?

[현장취재]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밝은 미래는 오지 않는다

임두만 | 기사입력 2015/08/30 [01:36]

경술국치 105년, 세월호 참사 500일...
우리는 지금 이 역사들을 잊고 사는가?

[현장취재]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밝은 미래는 오지 않는다

임두만 | 입력 : 2015/08/30 [01:36]

[신문고 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2015년 8월 29일,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지 105년이 되는 날이다.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이루어진 강제로 이뤄진 합병조약(合倂條約)은 8월 29일 발효되었다. 이 조약의 발효로 이 땅에서 대한제국은 사라졌다.

 

▲  한일병탄조약이 발효된 1910년 8월 29일 근정전에 일장기가 내 걸렸다.   © 임두만


 

대한제국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통과시킨 조약의 공포가 8월 29일에 이루어져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이후 우리는 이 날을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로 호칭하는데 그 해가 경술년이어서다.

 

105년이 지난 대한민국 대통령은 일본제국이 위성국으로 세운 만주국 장교를 거쳐 일본군 중위로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의혹을 받는 전직 대통령 딸이다. 그리고 그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의 대표는 친일파의 아들이란 소릴 듣고 있다. 

 

물론 박근혜 김무성 본인들과 지지그룹은 부친들의 친일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애국으로 치환하려 한다. 하지만 만주사관학교 일본육사를 졸업한 박정희가 만주에서 독립군 부대와 적으로 만난 것은 움직을 수 없는 진실이다. 또 일제하 경상북도 도의원이었던 김용주씨가 조선임전보국단 임원임도 사실이고 "황군에게 위문편지를 쓰자"고 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김용주씨는 1943년 10월 3일자 매일신보에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이라든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敬神崇祖 報恩感謝)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하자"든지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 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고 했다든지 등의 확실한 친일 근거가 남아 있다. 105년 전 당한 경술국치를 기억하고 반성해야 될 나라의 핵심 지도자가 혈통으로 보면 떳떳치 못한 상태란 거다.

    

또 8월 29일, 세월호가 바다에 침몰한 지 정확히 500일이 되는 날이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맹골수도에서 청해진해운 소속 인천 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했다. 당일 뒤집혀 반쯤 떠있던 배는 4월 18일 완전히 침몰했으며 배 안에 있던 탑승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 광화문 광장에 모인 추모인파들과 피켓    © 임두만

 

    

2015년 8월 29일, 대한민국의 하늘은 화창했다. 낮 최고 기온은 전국이 30도 안팍...그런데 오후 7시 반쯤 서울 지하철 2호선의 강남역 승강장에서 스크린 도어와 지하철 사이에 사람이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지하철 운행도 양방향 모두 1시간 가까이 중단되었다.

 

이 사고로 숨진 사람은 29살 조모 씨, 조 씨는 스크린 도어 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긴급출동한 소방대원들은 지하철과 스크린 도어 사이에서 조 씨를 꺼냈지만, 결국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사고가 발생한 과정에서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켰는지 지하철 기관사와 서울 메트로 관계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나 100% 안전 불감증이 일으킨 안전사고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제 8월 28일, 초등학생이 학원 차에서 내려 길을 건너다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 경기도 평택시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원 버스에서 내려 버스 앞으로 길을 건너려던 8살 이모군을 버스를 앞지르려던 승용차가 피하지 못하고 친 것이다. 이 사고로 머리 등을 크게 다친 이 군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경찰은 사고를 낸 승용차 운전자가 일방통행길이었음에도 앞에 멈춰 선 학원 버스를 앞지르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차량은 규정상 어린이 통학버스가 멈춰 서면 일단 멈춰서야 한다. 특히 왕복 2차로 도로에선 어린이 통학버스가 멈췄을 때 반대 방향에서 운행하는 차량도 반드시 일시 정지했다가 서행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지난 2013년 통학버스에 치여 숨진 김세림 양 사고를 계기로, 지난해 도로교통법이 개정돼 각종 안전 장치가 강화됐다. 물론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가장 중요한 운전 규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안전불감증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오늘 서울 광화문은 세월호 500일을 잊지 말자는 사람들이 모여 먼저 간 이들의 원혼을 위로하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과 하나되기 행사인 "세월호 500일 추모대회'를 치렀다.

 

▲  본 행사 시작 전의 광화문 모습   © 임두만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고창석, 양승진, 권혁규, 권재근, 이영숙.  세월호 안에 여전히 단원고 학생 4명과 3명의 선생님, 일반인 희생자 3명이 있습니다. 이들이 아직 여행 중이라면, 500일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구호로 시작한 행사는 오후 3시 서울역 광장에서 한 번, 이어 오후 7시 서울 중구 광화문 광장에서 잇달아 열렸다. 부산, 전남, 대전,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 1000여 명이 참여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100여 명도 참석했다.

    

예은이 아버지 유경근씨는 "딱 1년 전인 지난해 8월, 광화문과 국회에서 단식·점거 농성을 하면서 600만 명 국민이 서명으로 힘을 보태줬다"며 "그땐 1년만 지나면 모든 억울함을 풀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지금도 진실이 밝혀진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특히 대학생들이 다수 참여했다. 이들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학생들' 모임 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 라는 플레카드를 들었다.  또 가족과 자식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은 "엄마를 찾아야 아들 가슴에 여한이 없죠" "영인아, 배 올리자! 보고싶어 미치겠다" "현철아, 엄마아빠는 숨 쉬는 것도 미안해" 등의 플레카드를 들었다.

 

▲   본 행사 시작 전의 광화문 모습  © 임두만

 

    

한편 추모 대회 주최 측은 2시간 전부터 서울역 등 시내 곳곳에서 500일 국민대회 홍보 피켓을 나눠 주는 등 사전 공동행동을 진행했다. 또 실종자 수습을 기원하는 유족들 카드섹션과 '볍씨학교' 학생들의 추모 공연 등 2시간가량 추모 대회를 여는 동안, 한쪽에서는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김초원/이지혜 교사의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서명도 진행됐다.

    

행사의 백미는 세월호참사 500일 추모합창문화제였다.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500일 추모합창문화제'는 평화의나무합창단, 세월호가족합창단, 성미산마을합창단이 이들을 추모하는 노래를 불러 청중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 여기 아직 사람들이 있다. 광화문광장 세월호500일 추모 음악회    © 임두만

 

행사는 마지막에 세월호 유족들과 평화의 나무 합창단, 성미산 마을 합창단 등이 함께 무대에 올라 "이제 4월은 내게 옛날의 4월이 아니다…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아 있을 아픔"이라는 추모곡 '화인(火印, 도종환 시)'을 합창하면서 종료했다. 이 노래를 담담하게 부른 유족들이나 이들의 노래를 듣는 객석은 ‘그냥 조용했다’ 분노와 슬픔의 눈물을 속으로 훔쳤기에....

 

▲ 성미산 아이들이 세월호 아이들을 생각나게 하는 노래들로 눈물 훔치게 했다.    © 임두만

 

그러나...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밝은 미래는 오지않는다. 감추어진 진실은 언제든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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