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오토바이는 달립니다!

[인터뷰] 전국우정노동조합 안성우체국지부 오덕근 지부장

황윤희 기자 | 기사입력 2015/09/01 [06:50]

빨간 오토바이는 달립니다!

[인터뷰] 전국우정노동조합 안성우체국지부 오덕근 지부장

황윤희 기자 | 입력 : 2015/09/01 [06:50]

집배원을 만나면 괜히 호감이 간다. 까닭이 뭘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이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들고 오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세월이 이만큼 흘러 이제는 그런 풍경이 거의 사라졌다. 요즘 집배원들이 들고 오는 것이란 마음이 아니라 돈이나 내라는 세금 고지서나 카드명세서이기 십상이다.

 

종이에 글을 써 마음을 전하던 세상은 이제 영영 사라지는가 싶다. 하지만 아직도 빨간 박스를 뒤에 달고 달리는 오토바이를 보면 괜스레 마음이 누그러짐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호감의 이유는 달라졌다. 그들이 마음을 전해주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오직 발로 뛰는 것만으로 성실히 또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전국우정노동조합 안성우체국지부 오덕근 지부장.       © 황윤희 기자

 

 

전국우정노동조합 경인지방본부 안성우체국지부의 오덕근 지부장(56세)은 1985년에 우체국에 입사했다. 스물여섯 살 때였다. 옆집에 집배원 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추천해서 집배원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 오 지부장은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다녔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젊은 마음에 좀 창피하기도 했다고 그는 전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골 마을을 다니다 보면 어르신들이 말을 걸기도 하고 식사 때가 되면 함께 밥을 먹자고 숟가락을 건네기도 했단다. 어디 식사만 했는가? 주막에 앉아 소주도 한잔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또 가끔은 글자를 읽지 못하는 어르신이 있으면 우편물을 읽어주기도 했단다. 낭만과 인정이, 그리고 서로 오가는 기다림과 감사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 인간적 풍경이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업무가 비교적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소화해야 할 물량이 많아서라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밥 한술 뜨고 가라고 붙잡을 사람도 없지만 그렇더라도 바빠서 엉덩이 붙일 여유가 없는 것이다. 점심때면 집배원들은 홀로 식당에 들러 급히 끼니를 해결한다고 했다.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이라...

 

안성우체국에는 162명이 일한다. 그 중에 집배일을 하는 우정직이 73명이고, 비정규직이 17명이다. 비정규직이 전체의 10%가 넘는다. 이전에는 입사하면 바로 정규직이었지만 지금은 공채로 들어오는 관리직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정규직으로 시작한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하면 월급은 겨우 150만원 수준. 공공기관에 입사한 것인데도 그렇다. 다들 알겠지만 요즘 150만원 갖고는 혼자 살면 모를까 식구들 건사하긴 힘들다. 이 나라는 노동자들을 그렇게 대우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바라본다는 얘기는 어느 동네 이야기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어쨌든 비정규직으로 3~5년 일하면 정규직으로 갈 수 있는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그 시험을 통과해야 정규직이 되는 것인데, 보통 3명이나 5명 중 한 명꼴로 정규직화가 이루어진단다.

 

공도배달국과 죽산배달국을 합쳐 집배원으로 일하는 일흔세 명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폭염이 쏟아지나 태풍이 부나 그날 자기 구역의 우편물은 무조건 소화시켜야 한다. 이륜차를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눈비 많고 폭염이 쏟아지는 날은 일이 더딜 수밖에 없다. 집배일이 힘들다는 것은 그래서이다.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의무할당량이 생긴다는 것. 게다가 노동강도도 무척 높다. 보통 한 사람당 우편물은 하루에 900~1천 건, 택배와 등기는 80~90건의 물량이 주어진다고 한다.

 

여기에 폭주기라는 게 있어서 매달 셋째 주는 더 많은 물량이 쏟아진다. 각종 고지서가 그 주에 날아들기 때문인데, 덕분에 폭주기에 초과근무는 기본이다. 보통 11시간 이상 근무, 월 40시간 이상의 초과근무를 한다고 했다. 전국우정노조는 이는 연간 3천 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힘들어도 이직률은 많이 낮아졌다.

 

왜? 이 사회의 어느 자리나 다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침체되고 취업이 어려워지니 어지간히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오히려 이제는 비정규직일지라도 채용 시 경쟁률이 좀 붙는 상황이라고 한다. 서민들의 삶의 질이 하루하루 더 팍팍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마당인데 최근 정부는 우편수지 적자를 이유로 인력감축을 운운하고 경영효율화를 추진한다며 토요택배 재개를 말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상황은 전혀 안중에 없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 2월 우정종사원 5천여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규정근무시간은 9시간이 채 안되는데 집배원들은 11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었다.

 

또 시간 외에 일해도 그것이 인정되는 비율은 34.4% 수준이었다. 인력감축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인원을 충원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아울러 일 년에 21일 연차휴가가 발생하는데, 집배원은 평균 사나흘 휴가를 가고 있을 뿐이었고, 가지 않는 휴가에 대한 연차수당은 대부분 지급되지 않았다. 휴가를 가지 않는 까닭을 물으니 동료에게 피해를 주거나 업무량이 과중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집배원들은 어떤 상태일까? 집배원들은 공통적으로 업무과중으로 가족을 소홀히 대하고 있으며, 건강상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아울러 번아웃증후군에 대한 인식도 있었다. ‘번아웃’은 과도한 노동으로 신체적, 정신적 피로를 느끼며 무기력에 빠지는 걸 말한다. 기력을 다 소진했다는 뜻, 나를 다 태워서 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뜻이다. 
 

 

▲평일 오후 3시 반, 배달 나갔던 집배원들이 들어와 분류작업을 하는 시간이다.       © 황윤희 기자


 

조합원들이 믿는 지부장, 네 번째의 당선

 

오덕근 지부장은 스물여섯 살 이후로 쭉 우체국에서 일했다. 삼십 년째다. 노동조합 일은 95년부터 했다. 물론 우체국은 입사와 함께 자동으로 조합원이 되는 유니언숍 규정이 있어서 처음부터 조합원이었지만, 노조 일을 맡아 한 것은 그때부터다. 95년에 안성우체국지부 보궐선거에 당선돼 지부장을 맡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당선되고 97년 또 당선되고, 2000년 선거에서도 당선되었다.

 

그렇게 세 차례 지부장을 한 이후에는 상부조직으로 올라가 전임활동가로 일했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우정노조 서울지방본부에서 교육국장, 조사국장 등으로 있었고, 2013년 다시 현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지난 3월에는 다시금 지부장에 당선되었다. 지부장 당선만 네 번째다.

 

지난 3월의 선거에는 3명의 후보가 나왔다. 경선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오 지부장은 67% 노조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네 번씩이나 지부장에 당선된 배경이 뭘까? 간단한 대답이 건너온다. 조합원들이 믿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사관계에서 조율하는 것도 중요하고, 경력이나 노하우도 중요하지만 신뢰와 믿음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그를 믿는다는 뜻이었다. 왜 믿을까? 가식이 없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인 듯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오 지부장은 근무시간에는 휴게실과 직원실 등에서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업무가 끝난 뒤에는 쓴 소주를 함께 마시며 서로 격려하고 대화를 많이 한다고 했다.

 

명민하게 귀를 열어두고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 게으름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애로사항을 듣고 사측에 전달해 관철시키고 그것으로 직원들의 삶의 질을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 오 지부장은 그것이 자신의 존재이유라고 여기고 있다. 어쨌든 그래서 나타난 단점이 있다면 오 지부장이 술과 담배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정도? 그도 자신을 활활 태워서 열심히 노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 지부장은 무엇보다도 동료 간의 우애를 돈독히 할 수 있도록 조직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고 있다. 뭐가 어찌됐든 같은 일 하는 사람끼리 친하고 다정해야 한다는 지론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안성우체국지부의 분위기는 늘 화기애애하다고 했다.

 

“동료들 사이 남다른 우정이 있습니다. 힘든 일을 함께 한다는 동료의식, 유대의식이 있지요.”

 

오 지부장은 지부장이지만 노조 일만 하는 게 아니다. 업무도 보아야 해서 대체로 아침부터 1~2시까지는 일을 하고 오후부터 노조업무를 본다고 했다. 그도 오토바이 타고 우편배달을 다니는 것이다. 요즘은 공도지역이 그의 구역이다. 지부장이 노조 일만 하는 게 아니어서 조합원들과 소통이 잘될지도 모르겠다.
 

▲공공기관이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적자를 이유로 우선 인력감축부터 들고 나오는 상황에 반기를 들다     © 황윤희 기자

 

 

장시간 노동 없애야 사람 사는 세상 올 것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노동시간이 긴 나라다. 신께서 이 세상에 우리를 내일 때 일이나 열심히 하고 그래서 기력을 소진하다가 늙으면 죽으라고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추측이지만 신은 아마도 이 아름다운 우주를 만끽하고 누리고 즐기다가 그 기쁨으로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가꾸라고 내보내지 않았을까?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줄이는 투쟁을 하는 것은 그리하여 중요하다. 몇 사람의 노동시간이 줄면 한 사람의 일자리가 더 생겨난다. 세상은 그렇게 돼 있다. 마찬가지로 비정규직을 한 명 더 뽑고, 인력을 한 명 더 감축하면 우리 모두의 노동시간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일에 쫓겨 급히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 없도록 할 것, 좋은 사람과 정수리 맞대고 대화라는 것을 해가며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 그것이 노동조합이 할 일이다. 어쨌든 집배원 분들이 방문을 하면 이 열심히 일하며 사는 이들을 위해 깨금발로 뛰어나갈 일이다.

 

오 지부장에게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느냐 물었다. 그가 대답한다. “고객님들, 새 우편번호와 도로명 주소를 정확히 써주십시오. 그래야 집배원 분들 일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어느새 우편번호도 바뀌었다.

 

 

이 기사는 [안성신문]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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