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항쟁 ‘수배자’ 김형근 전 교사 타계

추광규 기자 | 기사입력 2015/09/28 [12:46]

5.18광주항쟁 ‘수배자’ 김형근 전 교사 타계

추광규 기자 | 입력 : 2015/09/28 [12:46]
▲ 고 김형근 교사   

[신문고뉴스] 추광규 기자 = 1980년 광주항쟁 당시 학내외 시위로 계엄사령부에 의해 수배자로 명단을 올리는 등 현대사의 격변기를 몸으로 헤쳐 나왔던 전 전교조 김형근 선생이 향년 55세를 일기로 28일 새벽 3시25분 지병으로 타계했다.

 

전주시민사회단체들은 오늘 오후 3시 30분경 모인 후 장례절차와 장지를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고 김형근 선생은 현재 전주효자장례타운에 모셔져 있는 상황이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1남을 두고 있다.

 

녹색연합 이세우 대표(목사)는 “유족들과 논의를 거쳐 5.18묘지에 안장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고 김형근 선생은 1978년 전북대 교육학과에 입학 한 이후 질곡의 현대사를 몸으로 겪어야만 했다. 김 선생은 세 번의 제적과 복교 끝에 11년 만에야 겨우 졸업했다.

 

1980년 5.18광주항쟁 당시 광주 전남지역 외부에서는 처음으로 전북대에서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면서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또 이로 인해 계엄사령부의 329명 수배자 명단에 장기표(서울대 법대 2), 김부겸(서울대 정치4)등과 함께 올려야만 했다.

 

수배자 신분으로 체포된 직후 3개월간 헌병대 영창에서 불법 구금 상태로 끔찍한 고문을 받았고, 강제징집으로 녹화사업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그의 수난은 이어졌다. 1987년 민주 항쟁에 앞장서다가 또다시 감옥에 가야만 했다. 먹고 살기 위하여 서점을 운영하였으나 금지서적을 판매하였다고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서점도 망해버렸다.

 

김대중 정부 들어 사면 복권으로 입학한지 22년만에 교사로 임명된 후 자신의 표현대로 전북 임실의 한 중학교에 부임한 후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냈지만 그 시간은 짧았다.

 

2006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1년 6개월여 전의 소위 회문산 ‘빨치산 추모제’를 이유로 마녀사냥을 당해야만 했다. 중학생들을 빨치산 추모제에 참석시키고, 교사들에게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e메일을 보냈다는 이유에서였다.

 

고 김형근 선생은 2007년 2월경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후 원심과 항소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판단과는 달랐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법률심이라는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들면서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과거 범민련에 가입한 적이 있으니 이적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 1980년 6월 17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계엄사 발표 '5.18광주사태 수배자 명단'. 당시 계엄사는 김부겸 전의원(당시 서울대 정치4)등 20명을 시위주모및 배후조정등의 혐의로 현상금 100만원에, 장을병(당시 성대교수)등 309명을 같은 혐의등으로 공개수배한후 그 명단을 발표한바 있다. 김형근(당시 전북대 교육3) 교사도 지명수배된바 있다.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고 김형근 선생의 인생은 크게 뒤틀려야만 했다. 이후 박근혜 정권하에서만 두 차례 더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구속되어야만 했다.

 

고 김형근 선생은 지난 봄 갑자기 쓰러진 후 병원 진단 결과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또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그동안 고향인 전주에서 요양을 계속해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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