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상권보장 약정...5년 넘으면 무효?

빨래방 기계 공급 관련 북부지법 판결 확정시 소상공인 치명타

추광규 기자 | 기사입력 2015/11/24 [20:50]

계약서 상권보장 약정...5년 넘으면 무효?

빨래방 기계 공급 관련 북부지법 판결 확정시 소상공인 치명타

추광규 기자 | 입력 : 2015/11/24 [20:50]

[신문고뉴스] 추광규 기자 = 빨래방 본사와 작성한 계약서에 상권을 보장한다는 약정이 있어도 기간을 정하지 않았다면 5년이 넘으면 이를 무시해도 된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북부지방법원 민사 8단독(판사 김형원)은 최근 빨래방 사업을 영위하는 문 모씨(48세 여)가 미국제품인 'D'세탁장비를 수입판매하는 A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약정상 경업 내지 판매금지 기간은 무제한으로 볼 수 없고 이 사건 약정의 유효기간은 5년을 초과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앞서 문 씨는 빨래방 사업에 있어 핵심 수입장비를 국내에 독점 판매하고 있는 A사를 상대로 '반경 1km내에 A사가 주관하는 빨래방을 개설하지 않는다.'는 상권 보장을 약속했음에도 이를 어기고 두 곳이나 창업시켰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2006년 작성된 세탁장비 판매 약정서와는 달리 자신의 가게가 성업하자 1km상권 보장 약속을 어기고 2013년에는 800m지점에 2014년에는 600m 지점에 잇달아 빨래방을 개설해 매출 저하로 큰 손해를 봤다는 이유에서였다.

 

# 재판부, 계약서상의 1km 상권보장 약정 어긴 것 어떻게 바라봤나

 

 

재판장은 지난 10월 13일 선고공판에서 “A사는 이 사건 약정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문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장은 상권 보장 약정에 대해 “1km 이내에서는 자사의 세탁 장비를 사용하는 유일한 빨래방으로 영업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의미로 봄이 상당하다."면서도, “이 사건 약정의 유효기간에 관하여 합의하지 않았던바, 이에 관하여 법률행위를 보충하여 계약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장은 이어 ▲ 사방 반경 1km는 광범위 하여 약정이 무기한 준수된다면 영업의 자유가 지나치게 침해되는 점.

 

▲ 신의칙상 판매량 증대를 사업목적으로 하는 피고에게 오래 전 판매한 제품의 존재를 근거로 무기한의 판매금지 약정을 준수하도록 강요하기 어려운 점.

 

▲ 다른 회사 제품으로 인근에 빨래방 사업이 가능해 반경 1km 내에 세탁 장비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는 상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없는 점. 등을 각각 들었다.

 

재판장은 이 같이 설명한 후 “상사소멸시효기간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약정상 경업 내지 판매금지 기간은 무제한으로 볼 수 없다”, “이 사건 약정의 유효기간은 5년을 초과 할 수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면서 원고 패소판결 했다.

 

# 상권보장 무시하고 거리 상관없이 팔 수 있는 길 열려  

 

이 같은 판결이 주목되는 부분은 A사가 이 사건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물론 판결이 확정될 경우 이와 유사한 가맹점 사업과 관련해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 같은 판결이 확정된다면  갑의 입장인 본사가 소상공인들에게 계약서등을 통해 약속하고 있는 ‘상권보장’을 무시하고 5년만 넘으면 마음대로 팔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 또 이 같은 판례를 따른다면 가맹사업 및 유사 사업도 심하게 흔들릴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던 문 씨는 “계약서상 1km 상권을 보장 받은 것을 판사 재량으로 무효화 시키는 판결”이라면서 “1~2억을 투자 하여 평균 수입이 100만원~150만원인 상태에서 겨우 자리 잡을 만 하면 5년을 앞세워 바로 앞에다 신규 지점을 내줘도 된다는 판결로 그렇다면 계약서를 작성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씨는 계속해서 “A사는 재판에서 홈페이지에 표기된 '회사연혁', '전국 최대 150개 가맹점 지점 내용'조차도 '자신들과 무관하고 세탁기를 팔기 위해 한 거짓'이라고 변론했다. 또 계약서를 기초로 상권 보장을 받은 업체가 수십 곳이 넘는데도 ‘상권보장을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주장하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A사는 법정에서 그렇게 주장을 했음에도 창업상담에서는 지금도 700~1km 상권을 보장 한다면서 생계형 창업자들을 기망하고 있다.", "저와 같이 A사로 부터 상권침해를 당한 피해 점주들의 진정서가 있었음에도 재판장은 A사의 주장만을 받아들였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문 씨는 계속해서 “소비자와 점주 모두를 기망하는 업체의 영업 자유를 위해 힘없는 소상공인이 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가."라고 따져 물으면서, "계약서에 상권보장 기간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A사의 기계를 이용해 영업하는 동안 상권을 보장 받는다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라며 판결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문 씨는 이 같이 강조한 후 “이 판결은 빨래방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소상공인들에게도 치명적인 판결로, 확정이 될 경우 앞으로 5년이 지나면 상권보장을 못 받게 될 것”이라고 거듭해 강조했다.

 

이 같은 우려에 법정단체인 소상공인연합회도 함께 했다.

 

소상공인연합회 정추위 권오금 위원장은 “빨래방이 저희 소상공인연합회 소속 단체는 아니지만 이번 판결은 우려할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소상공인들이 고생해서 자리 잡는 게 창업후 5년 무렵인데 바로 옆에 또 하나의 빨래방을 차리라고 하는 것은 가뜩이나 힘겨운 소상공인을 낭떠러지에서 미는 격이다”면서, “소상공인 전체에 문제가 되는 판결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빨래방 내부 모습     © 추광규 기자

 

 

# 빨래방 업계 속사정이 어떻기에 소송 전으로 이어졌나! 
 
소송을 제기한 문 씨는 2006년 12월 미국의 유명세탁장비업체인 D사의 한국독점판매계약권을 가지고 있는 A사와 '창업하는 빨래방 반경 1km의 상권을 보장한다'는 조건의 특약사항을 포함시켜 계약을 체결했다.

 

문 씨는 이어 ‘세탁장비구매계약서’에 근거하여 세탁 장비를 구매하고 세탁기계비 4,600만원과 설비 인테리어 보증금을 합하여 총 8,500만원의 비용을 투자하여 빨래방을 창업했다. 

 

하지만 A사는 이 같은 구매계약서의 특약사항을 무시했다. A사는 2013년 11월경에 문 씨의 빨래방에서 약 800m 가량 떨어진 곳에 자사가 독점 판매하는 세탁 장비를 사용하는 빨래방을 창업시켰다. 이어 2014년 7월경에는 600m 가량 떨어진 곳에 또 다시 자신들이 독점 판매하는 세탁 장비를 사용하는 빨래방을 창업케 했다.

 

800m떨어진 곳에 있는 빨래방은 지난 2015년 3월까지 이 회사의 사내이사였던 유 아무개 이사가 창업을 하였다. 600m 떨어진 곳에 있는 빨래방은 A사의 독점 등록상호를 사용했는가 하면 설치 및  관리 A/S도 A사가 진행하였다.

 

문 씨는 자신의 빨래방 인근에 잇따라 개설되면서 막대한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실제 문 씨가 법원에 제출한 서류를 살펴보면 2014년 8월과 9월 2개월 평균을 기준으로 1년 전인 2013년 8월 9월에 비교하면 순수익의 감소액이 약 100만원에 이르렀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문 씨는 두 번째 빨래방이 문을 연지 한 달여 만인 2014년 8월 11일 A사를 방문해 계약불이행에 대한 사항을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A사의 김 아무개 대표는 ‘이런 일로 아주 많은 점주들이 찾아 왔었다’, ‘본인들은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고 7년이나 봐주었으면 되었지 무슨 소리냐', '아무런 보상도 해줄 것이 없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문씨가 '상권보장도 해 주지 않을 것이면서 왜 계약서에 명시하느냐'고 따져 묻자 김 대표는 '영업하기 위해서'라고 답하기도 했다.

 

A사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자 문 씨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답변 또한 신통치 않았다. 해당 업종의 영업형태에 비추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의율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기 때문. 

 

이에 따라 문 씨는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자신이 입은 손해를 회복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2014년 10월 서울북부지방법원에 A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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