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 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미국 아이오와 코커스가 끝났다. 그리고 그 끝은 추후 미국 정계와 국제 정치계의 흐름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게 될 개연성을 남겼다.
버니 센더스, 그가 애초 미국 대선에 뛰어들 때 힐러리 클린턴의 이 같은 강적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미국의 전문가는 없었다. 센더스는 공화 민주 양당제가 굳건한 미국 정계에서 좌파를 자처하며 오래도록 무소속을 고수한 ‘이단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미국인 누구도, 또 세계인 누구도 센더스를 이단아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천국이었던 미국이란 나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좌파 정치인 센더스의 ‘99%를 위한 정치’라는 이슈가 매국 대선 가도를 집어삼킬 것인지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다.
2일(한국시간) 미국 민주당 유력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불과 4표차의 승리를 거두고는 흥분된 표정으로 “믿을 수 없는 밤이며 믿을 수 없는 명예”라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명예’에 걸맞는 ‘승리’라는 용어로 이 코커스의 결과를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미국의 대부분 언론은 이 경선을 ‘비겼다’고 표현했다. 뉴욕타임즈는 아예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과 사실상 비겼다”고 썼다. 그리고 NBC, CNN 등 방송은 ‘센더스의 폭발력’에 더 무게를 싣는 보도를 했다.
이러한 언론 보도는 센더스의 연설에서 잘 나타났다. 그는 “아이오와 주민들이 미국의 정치·경제 기득권, 언론 기득권 세력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치 혁명이 시작됐다”면서 “사실상 이겼다”고 기염을 토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조직도 없었던 그가 선거운동 시작 9개월 만에 억만장자와 기성 정치권력, 월가 금융자본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클린턴 후보를 ‘사실상 이긴’데서 온 자신감의 발로였다.
이제 미국의 대선 가도에서 센더스의 이 열기는 앞으로도 상당부분 이어질 것이다. 오는 9일 치러지는 뉴헴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앞두고 나온 각종 여론조사에서 센더스는 클린턴을 약 20% 정도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곳 경선은 당원 대상이 아니라 일반인도 참여하는 프라이머리이므로 이곳에서 만약 센더스가 대승을 일궈낸다면 당분간 미국 대선의 초점은 센더스에게 맞춰질 수밖에 없다.
특히 뉴햄프셔 이웃인 버몬트 주 출신인 주는 샌더스 의원은 사실상 이곳이 아성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따라서 클린턴이 이곳에서 여론조사 지표대로 샌더스에게 큰 격차로 역전을 허용한다면 3월 슈퍼 화요일까지는 센더스 대세론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직까지 미국의 유권자나 주류인사들, 그리고 언론은 센더스보다 힐러리 클린턴이 이길 것으로 보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이날 나온 워싱턴포스트(WP) 보도를 보면 이날 아이오와 40개 코커스 장소에 입장한 1,600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전국선거합동취재단 조사 결과 ‘11월 본선 승리 가능성’은 77%가 클린턴을 꼽은 반면 샌더스라고 답한 응답자는 17%에 불과했다.
지금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우리의 주류 언론은 우파이건 좌파이건 할 것 없이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양파전을 주 기둥으로 보도 또는 논평을 한다.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을 거론하기는 하지만 이 거론은 언제나 종속변수이고, 특히 비판적 관점의 보도가 많다. 오랜 관행에다 기득권이 깨지면 불편하므로 그 기득권이 깨지는 것을 막으려는 암묵적 기도 등이 합해진 보도행태다.
그러나 이미 이런 기득권층의 기대와 예측은 상당부분 빗나가고 있다. 천정배와 안철수의 시도를 비웃거나 비아냥스럽게 취급했음에도 이들은 경쟁을 통한 통합으로 차근차근 기득권 양당의 강고한 나눠먹기식 정치에 균열을 내고 있다. 그리고 이 균열에 보이지않는 민심은 상당부분 동조하고 있다.
이는 마치 지난 9개월 전 센더스의 시도를 비웃던 미국 주류언론의 뒤통수를 친 것 같은 미국 시민의 변화 기류가 나타나듯이 우리도 그렇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아직 우리는 주류의 기득권이 우세하다. 따라서 이들의 가열찬 제3세력 방해 책동이 계속되면 유권자들 또한 그에 동화되어 적 아니면 우군이란 이분법적 선거를 할 수도 있다. 만약 다시 이런 선거 결과가 나온다면 우리는 앞으로 상당기간 ‘좋은 정치’를 소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이 시기가 우리 유권자에게도 언론에게도 정동영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오늘 한 언론은 정동영이 이르면 오는 14일 정치 재개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더불어민주당 또는 국민의당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언론은 ‘정 전 의원 측’이란 취재원을 통해 "정 전 의원이 오늘(3일) 정치 재개를 발표하려다가 설날 민심을 좀 더 들어보자고 했다"면서 정동영이 안철수 측과 김종인 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가운데 고심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러면서 이 언론은 정동영이 최근 안철수 의원이 대표로 있는 국민의당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으며, 설 연휴 중에 상경,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원장 겸 선대위원장을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직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않았다"며 "앞으로 양쪽 당사자를 만나 어떤 비전과 정책을 갖고 있는지 볼 것"이라고 말했다.는 점을 명기했다. 정동영이 지금 양 손에 떡을 들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다면 정동영의 이 저울질은 주인이 정동영 자신이 아니라 어떤 주인을 섬길 것인가를 계산하는 것이다. 즉 안철수냐 문재인이냐의 저울질, 누구에게 충성해야 내가 살 수 있을 것인가의 저울질...만약 그렇다면? 정동영은 정치 지도자도 아니요, 정치의 판을 바꿀 정치권의 핵도 아니다.
센더스는 저울질하지 않았다. 1%를 위한 경제로는 미국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면서 미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99%를 위한 경제로 바꿔야 한다는 이념 하나로 모두의 비웃음속에 지난 9개월을 달렸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정동영은 지난 2008년 대선에서 진 뒤 그간의 고초와 고난을 통하여 자신이 있어야할 곳이 민중 속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그동안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등의 차별받는 소수 노동자들 투쟁에 동참했으며 ‘담대한 진보’를 주장하고 ‘진보의 대중성’을 말했다. 남북관계의 교착상태를 비판하고 남북의 화해와 교류를 통한 경제발전을 주장했으며 ‘정동영표 정치’를 선보일 수 있음을 내보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 양손에 떡을 들고 그 떡의 크기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뉴스는 그 스스로 이미 ‘정동영표 정치’를 포기했다는 의미로 들린다. 이건 아니다. 정동영은 지금 과감해야 한다.
현재의 정치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고 권력을 위한 정치, 정치인을 위한 정치라고 본다면 이 구도를 깨는 일의 누구보다 정동영 자신이 선봉에 서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안방인 전주 덕진을 두고 양당과 거래하는 모양새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그곳에서 한 번 더 당선된다고 그의 인생에 꽃이 피는 것인가?
아니다. 정동영은 '한국의 센더스'가 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순창의 칩거를 접고 당당하게 “서울 종로 출마를 통해 ‘재기냐, 굳바이냐’를 국민들에게 묻겠다”고 선언하면서 총선가도에 정면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서울 종로는 더민주의 대주주인 정세균과 새누리당의 기린아인 오세훈이 버티고 있는 말 그대로 험지다. 이곳이라면 센더스가 0%의 가능성을 50%의 가능성으로 만든 아이오와 기적을 연출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국민의당이 정동영의 이 선언을 수용, 수도권 선대위원장 직위를 얹는다면 이번 4.13 총선은 국민의당이 주류언론의 배척을 받는 3당의 서러움을 곱씹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새누리당 대 국민의당 선거판으로 판을 교체할 수도 있다. 아니 최소한 3당의 공평한 선거전 보도시장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어야 국민들에게 투표를 통한 선거혁명을 요구할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작전을 더민주의 김종인이 구사한다면? 국민의당에겐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이후는 말 그대로 소수 3당에 그칠 것이 명백하다. 정세균의 전격적 지역구 양보와 정동영의 종로 출마 및 더민주 수도권 선대위원장이라면 이 선거는 완벽하게 새누리당 대 더민주 양당 대결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정동영은 물밑에서 양손에 떡을 쥐고 저울질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언으로 센더스가 미국 대선을 센더스 선거로 만든 것과 같은 효과를 얻어내야 한다. 국민의당 또한 이 적기를 놓쳐서 바람을 되돌릴 모멘텀까지 잡지 못한다면 "이 선거에 전부를 걸겠다"는 안철수의 기염도, "야권의 교체를 통한 정치의 교체"를 호소한 천정배의 열변도 다 별무 소용이다.
정치인에게도 정치세력에게도 기회는 자주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있는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것은 진리다. 지금 우리 국민들도 미국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기득권이 깨지는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저작권자 ⓒ 신문고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