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국민의 행복 원천은 ‘당당한 자존감’

매일종교신문 | 기사입력 2016/02/10 [16:21]

부탄 국민의 행복 원천은 ‘당당한 자존감’

매일종교신문 | 입력 : 2016/02/10 [16:21]

 국내 한 케이블TV 방송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인기가 치솟았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송을 마친 이 드라마는 1988년 당시 청춘이던 40~50대는 물론이고 20~30대, 심지어 그 시대를 구경조차 못해본 초등학생들까지 드라마의 배경인 서울 쌍문동에서 살고 싶다며 열광하고 있다. 그러면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이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었던 많은 요소 중에 하나는 ‘향수’가 아닐까 싶다. 사람을 사랑하기보다 경계하는 것이 일상화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정이 넘치며 인간미가 있던 그 시절을 다시 기억하게 해준 것이다. 함께 뛰어놀고 서로 챙겨주며 걱정하는 쌍문동에서 살고 싶은 욕구, 그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간이라면 당연히 끌리는 그런 세상살이의 따뜻함일 것이다.
 
세계 최초 ‘국민총행복지수’를 입법화한 부탄
 
어떤 사람들은 그런 공동체는 ‘판타지’라고 말한다. 지금의 한국사회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이 말에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체념이 깔려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체념과 답답함 속에서 안식을 얻길 원하고 있다. 힐링(healing)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마음의 안정과 행복, 희망이다. 그 힐링을 향해 전국· 세계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에서 그 희망의 빛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는 부탄에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그러한 행복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다.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답하는 부탄 사람들의 행복 비결은 우리가 드라마 속 쌍문동에서 발견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 간의 신의와 친목이 두터운 사회, 이웃끼리 문을 열어놓고 내 것 네 것을 구별하지 않는 사회다. 그것은 물신주의(物神主義)에 빠져 우리가 잃어버린, 어쩌면 우리가 포기한 사회다. 그런 사회가 히말라야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작은 나라 부탄에 있다. 세계에서 ‘지상의 마지막 샹그릴라(Shangri-La: 평온하면서도 고요하고, 지적으로 짜릿한 자극을 주는 이상세계. 또한,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1933)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가공의 장소)’로 불리기도 하고 ‘미래 국가의 모델’로 불리기도 하는 부탄은 GNP(국민총생산)나 GDP(국내총생산) 대신 GNH(국민총행복지수)라는 개념을 세계 최초로 만들어내고 입법화시켜 국민의 행복을 나라에서 직접 챙겨주는 나라다. 사람은 물론 동물, 심지어 벌레까지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세계 최초로 100% 유기농 국가를 선언했다. 1인당 GNP 2500달러의 가난한 농업국가 부탄 국민들은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당당히 말한다.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지만 이 나라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은둔의 왕국’으로 불리는 부탄은 국토의 70%는 험준한 산악지대여서 물산이 부족하다. 국민 의 대다수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대가족이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불교국가인 부탄은 군인보다 승려가 더 많다고 한다. 국민들은 ‘현재에 만족하라’는 불교의 가르침에 따른 ‘욕심 없는 삶’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들이 행복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만이 국민 행복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근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국민적 특성이나 최고 지도자의 통치이념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행복한 나라 부탄에도 요즘 서구의 문물은 빠른 속도로 상륙하고 있다. TV와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전통문화 대신 서양문화가 사람들의 삶에 파고들고 있다. 사람들은 점차 돈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젊은이들은 서양 국가로의 이민을 동경한다. 급격한 변화 속에 부탄은 계속 ‘행복한 나라’로 남아질수 있을 것인가.

‘당당한 자존감’이 행복의 원천 
‘태어난 것 자체가 행복’이란 속담도 있어

부탄에는 고아도, 노숙자도 없다. 최근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자살자가 부탄에 생겼다. 부탄 정부에서는 이 자살자의 발생을 무척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부산하다. 자살률 1위의 나라에서 사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호들갑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대신 부탄에선 머무르는 숙소나 음식, 그리고 여행하는 장소까지 정해진 대로 따라가야 한다. 부탄을 여행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어차피 휘황찬란한 건축물이나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또는 미각을 깨울 맛있는 먹거리를 기대하며 부탄을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을 감수한다면 세상의 꼭대기에 있는 듯한 아름답고 한적한 분위기에 금방 동화된다. 가난하지만 마음의 평화를 갈망하는 자신들만의 고유함을 지키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탄 사람들의 행복 조건에는 ‘당당한 자존감’이 있다. 도시든 산골이든 부탄에서 만난 부탄 사람들의 복장은 언제나 정갈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예의가 몸에 배어 있다. 부탄 사람들의 말로는 그러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어려서부터 가족에게 배우고, 학교에서 배우고, 마을 어른들에게 배우고, 걸어서 가는 등굣길, 수업이 끝나고 뛰어노는 대자연의 섭리 속에서 배운다고 한다. 그렇게 자란 부탄 사람들은 어느 곳, 누구 앞에서도 인간으로서 당당하다. 부탄인(人)의 이러한 강한 자존감은 많은 부탄 전문가들과 행복학자들이 크게 주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돈과 명예를 내세우며 강한 자존심을 내세우는 우리네들과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음을 오히려 불편하게 여기는 부탄인들의 강한 자존감, 이것이 바로 행복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소다.
 
부탄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기도를 한다. 그리고 부탄 남자들은 1년에 몇 달간 산에 올라가 기도를 하기도 한다. 그들이 하는 기도는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늘의 달과 별이 그 자리에 있고 우주의 질서와 맑은 공기가 영원하도록’ 기도한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도, 학교나 호텔이나 식당에서 짧게 만나도 부탄인들은 대부분 모두 헤어지는 순간, 맑고 순수한 정을 드러낸다. 짧은 만남이지만 손을 붙잡고 버터차를 권하고, 이름을 적어달라고 요구하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한다. 그들은 처음 만난 사람들도 이방인으로, 투숙객으로 대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으로 대하는 심성을 가졌다. 그들의 붙잡은 두 손에서, 수줍지만 다정한 말 한마디에서 인간과 삶과 세상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남을 느낄 수 있다. 상대방의 행복이 내 안의 행복임을 일깨우는 것, 물신주의가 뒤덮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생각이다. 부탄 사람들을 대하면 비로소 ‘태어난 것 자체가 행복이다’라는 그들의 속담에 공감하게 된다. 황폐하고 외로운 사람이 늘어나고, 급기야 자살자까지 늘어나는 우리들에게 부탄의 행복 비결을 깨닫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부탄의 행복은 최고통치자의 탁월한 통치이념에서 비롯돼
 
부탄의 행복은 최고 지도자의 탁월한 통치이념에서 비롯됐다. 지그메 케사르 현(現) 국왕의 조부인 3대 국왕은 농노(農奴)를 해방시키고 귀족과 국왕 소유의 땅을 분배해 주었다. 이 때문에 농경국가인 부탄은 국민들의 생활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 부탄은 가난하지만 기아와 거지가 없는 나라이다. 4대 국왕인 지그메 캐샤르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GNH’ 개념을 도입했다. ‘GNH’의 ‘H’는 Happiness, 즉 ‘행복’의 머리글자로, ‘GNH’는 ‘국민총행복’을 뜻한다. 4대 국왕은 국민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경제성장이 아니라 행복에 두었다. 이를 위해 부탄은 ‘국민총행복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국가의 모든 정책은 이 기구를 통과하도록 했다. 이곳에서는 국가의 정책이 국민들의 행복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따져서 국민행복을 증진시키는 경우에만 통과시킨다. 부탄 헌법에 국가는 국민행복 정책을 추진하는 여건을 마련하고, 모든 개발행위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행복에 있다고 명문화했다. 국가의 모든 정책을 국민 행복에 맞추도록 제도화시킨 것이다.

‘GNH’의 4대 축(軸)은 ▲평등하고 지속적인 사회·경제발전 ▲전통가치의 보존 및 발전 ▲자연환경의 보존 ▲올바른 통치구조 등으로 나눠져 있다. 4대 축 아래에는 국민들의 삶의 수준에서 비롯해 심리적 요소까지 총 9가지 영역에 33개의 지표가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의식주는 물론이요, 눈에 보이지는 않는 요소들까지 고려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도록 국가가 보장하고 있다.


왜 부탄 사람들은 행복한가

특별한 날이나 행사가 있을 때 티베트 스님들은 모래 만다라를 제작하는데, 다섯 명이 아주 가는 색 모래로 7일 동안 호흡조차 흐트러짐 없이 집중해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이 또한 수행이다. 그런데 모래 만다라가 완성이 되면 축원을 하고는 곧바로 만다라를 지워 버린다. 모래 만다라도 허상이라는 것이다. 이 물질세계에 미련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 불교에서는 집착을 3독(毒: 탐·진·치) 중에 으뜸으로 삼는다.

티베트 이웃에 있는 부탄 역시 불교 국가로서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2006년 즉위한 지그메 케사르 국왕은 대부분의 나라가 경제적 부(富)를 추구하지만 실제로 넉넉하게 사는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부'보다는 '행복'이라며 전통과 환경을 보호하고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정책, '국민총행복지수(GNH)'를 국가정책에서 우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정부 정책 덕분에 부탄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세계 최고가 됐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부탄 사람들은 세상일의 대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시간에 구애받지도 않는다. ‘빨리 빨리’의 민족으로 치부되고 있는 우리 국민이라면 속이 터질 일이지만, 약속시간이라는 것도 두세 시간 안에 지켜지면 된다고 한다. 늦을 때는 늦을 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기다린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생활과 태도에 변함이 없다고 한다. 그러한 사고의 바탕에는 윤회설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에게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원형의 형태로 순환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환생할 터이니 이번 생에서 모든 것을 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환생을 굳게 믿기 때문에 죽음이 진정한 끝이 아니며, 죽는다는 것은 짧은 휴식일 뿐이기 때문에 서둘러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장 눈앞의 일들에만 급급해하며 살아갈 하등의 이유가 없다. 재물을 충분히 모으지 못했다면(재물에 연연하지도 않겠지만) 다음 생에서 모으면 될 테니까 말이다. 이제 부탄의 국민행복지수가 왜 세계 제일인지 알 것 같다.

▲ 국왕 지그메 케사르가 즉위식을 마친 뒤에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     ©


‘소득보다 행복이 중요한 나라’ 부탄으로 행복 찾아 나서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부탄으로 떠난다. 실제로 부탄을 걸으며 부탄의 행복을 실감한다. 부탄의 왕은 스스로 왕권을 내려놓고 투표를 통한 의회민주주의를 국민이 선택하도록 설득해서 안착시켰고, 지금도 화려한 궁궐을 국가에 헌납하고 작은 집에서 살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금연국가이고, 교육비도 병원비도 모두 무료다. 첫눈이 오는 날은 휴일이 되는 동화 같은 나라가 바로 부탄이다. ‘부탄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라는 의문은 부탄의 특별한 신기록을 대하는 보통사람들이 누구나 슬쩍 갖는 의문이다. 행복이라는 단어와 자꾸 멀어지는 자신을 보며 꼭 부탄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직접 그들의 행복을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에 지금도 부탄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부탄에서 만난 부탄 사람들은 많은 외국인이 자신들에게 “정말로 행복한가요?”라고 묻는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부탄 사람들은 그러한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행복이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와는 생각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강한 힘과 돈의 위력에 굴복하지 않는 그들에게 행복이란 특별히 찾아야 할 무엇이 아니다.

부탄의 수도인 팀푸에 있는 왕립축구장에서 만난 부탄 아이들은 부탄의 전통의상인 고(Gho)를 차려 입은 단정한 차림새로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두 시간 거리의 집에서 매일 친구들과 함께 걸어서 학교에 가고 축구장에 가고 어디든 걸어다녔다. 축구공을 들고 한 시간을 걸어왔다는 소년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두어 시간을 더 뛰어놀고는 왁자지껄 웃으며 함께 모여 집으로 돌아갔다. 

▲ 부탄의 해맑은 어린아이들. 축구는 부탄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스포츠 가운데 하나이다.     ©


학교에서 배운 영어가 유창한 그들의 얼굴에는 건강한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부탄 아이들은 만 6살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 모국어인 ‘종카어’와 영어를 공부한다. 생활회화 위주로 진행되는 영어공부로 국민 80%는 영어 대화가 가능하다. 물론 학원이나 사교육은 없다. 부탄은 공동체가 살아 있다. 내 집 네 집 할 것 없이 어울려 지내기 때문에 아이들이 하교 후 집에 돌아오지 않아도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어디서 뛰어놀거나 다른 집에 있겠거니 믿는 것이다. 발견한 그들의 행복 조건에는 이러한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지금 우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 믿음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들, 나를 걱정해주는 나라가 있다고 믿는 그런 믿음이다.

美 언론인의 눈으로 본 부탄의 속살 『행복한 라디오
급격한 변화에 직면한 부탄은 과연 행복을 이어 갈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부탄이라고 알려준 책은 『행복한 라디오』이다. 세상살이에 지친 미국의 저널리스트 리사 나폴리 (Lisa Napoli)의 ‘행복 찾기’ 여정을 그린 책이다. 중년에 겪은 위기와 우연히 아시아의 신비로운 왕국 부탄을 방문하면서 그 위기를 극복해 낸 과정을 오롯이 담았다. 우연한 기회에 부탄에서 일하게 된 저자가 부탄과의 인연을 꾸준히 이어 가면서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의 삶을 충만하고, 흥미롭고, 경이롭고, 무한한 가능성을 갖게 만들어준 지구 정반대 편에 있는 나라 부탄. 부탄을 오가며 실제로 행복한 삶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단지 화려한 구호나 마케팅이 만들어 낸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지 저자가 직접 경험한 것들을 만나볼 수 있다. 부탄의 긍정적인 면만을 포장하는 대신 부탄의 감춰진 면도 바라보려 애쓰며 부탄이 과연 앞으로도 행복한 나라로 남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햄프셔 대학을 졸업했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공동체의 심층부를 파헤치는 일에 매력을 느껴 언론인이 됐다. CNN, MSNBC, <뉴욕 타임스> 등에서 리포터 및 칼럼니스트로 일했으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40대에 접어들어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할 무렵 부탄을 알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부탄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게 되었다.

▲ 세계 유일의 교통신호등이 없는 수도 팀푸거리. 경찰관의 손놀림만으로도 교통정리는 충분하다.     ©


2010년 영국에 있는 유럽 신경제재단(NEF)이 각 나라의 행복지수를 조사해 발표했다. 1위를 차지한 나라는 바로 부탄이었다. 국민 100명 중 무려 97명이 ‘나는 행복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작은 나라 부탄은 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됐을까. 『행복한 라디오』는 저자가 우연한 기회에 부탄에서 일하게 되고, 부탄과의 인연을 꾸준히 이어 가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담았다. 라디오 뉴스 리포터로 일하던 저자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우적대며 살아가고 있었다. 오랜 방송생활은 그녀의 모든 경험을 뉴스 아이템으로 전락시켰고, 인간관계를 뉴스 자원으로만 생각하게 했다. 미디어라는 이름의 복잡하고 소란스런 색안경이 그녀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게다가 더 많은 소비를 위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악순환과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자신의 모습은 분명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다. 그 무렵 그녀는 부탄에서 일해 보는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됐다. 그리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부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후 몇 년 동안 그녀는 부탄을 오가며 실제로 행복한 삶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단지 화려한 구호나 마케팅이 만들어 낸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것을 이 책에 덤덤하게 써 내려갔다.

저자가 가까이에서 바라본 부탄이라는 나라는 낯설기만 했다. 국민에게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며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왕(王)과 그런 국왕의 결정을 환영하기보다는 망연자실(茫然自失)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화폐 가치를 중시하는 GDP 대신 GNH라는 기준을 만들어 행복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온 국왕은 국민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경제 발전은 진정한 발전이 아니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자연 보호를 최우선 가치에 두고 모든 여행자에게 하루에 200달러씩 세금을 물리는 것도 독특했다. 너무 많은 여행객이 입국하면 자신들만의 문화를 해치고 자연이 훼손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실 부탄 여행이 허가된 것은 1970년대부터였고 국제 화폐, 도로, 학교, 공항, TV 등은 모두 그 이후에 도입됐다.

저자가 부탄에서 해야 할 일은 부탄에 처음으로 문을 연 라디오 방송국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었다. ‘쿠주FM’이라는 이름의 이 방송국은 방송국을 세우고 싶어 하는 이들의 요청을 받은 황태자가 자신의 자동차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세워졌다. 비록 저자가 일하던 미국의 라디오 방송국에 비하면 시설이 보잘것없었지만 운영 방식과 청취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미디어에 지쳐서 부탄행 비행기에 오른 저자는 아직 미디어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나라에서 사람들이 미디어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순수함에 마음을 열어 잘 적응해 나간다. 과연 그녀는 행복의 비밀을 찾아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서구의 문물은 부탄에도 최근 빠른 속도로 상륙했다. TV와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전통 문화 대신 서양 문화가 사람들의 삶에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점차 돈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젊은이들은 서양 국가로의 이민을 동경했다. 저자는 부탄의 긍정적인 면만을 포장하지 않는다. 부탄 사람들이 침묵하는 네팔계 이민자들의 문제,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미국에 대한 동경을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컨설팅 회사에 국가 발전 청사진을 의뢰한 정치인들의 이야기 등을 통해 부탄의 감춰진 면도 바라보려고 애썼다. 부탄은 과연 앞으로도 ‘행복한 나라’로 계속 남을 수 있을까?
 
‘국민행복시대’ 공약과 우리의 현주소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집권 4년차를 맞은 현 시점에서 보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행복시대를 열지 못하고 있다. 정치는 혼란스럽고 경제 또한 갈수록 사정이 나빠지고 있다. 남북문제 등 외교관계도 당장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생계 때문에 일가족이 동반자살을 하는 경우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고 있다. 가진 자들만 배를 두드리며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을 뿐이다.

산업국가인 한국과 농업국가인 부탄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역사와 전통도 다르고 현재의 생활상도 다르다. 따라서 부탄의 정책을 그대로 한국에 이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부탄 국민이나 한국인들이나 근원적인 행복의 가치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휴머니즘에 바탕한 이웃사랑, 함께 나누는 공동체,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자세 등을 회복한다면 행복은 그리 멀리 있는 것만도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가치를 국민들이 인식하고 제도적으로 어떻게 뒷받침하느냐 하는 점이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다. 2014년 기준으로 GDP는 1조4000억 달러로 세계 13위를 기록했다. 겉으로만 보면 선진국 수준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유엔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156개국 가운데 41위로 나타났다. 고도성장의 이면에 심각한 빈부격차와 각종 부작용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있는 셈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각종 정책을 정치논리, 경제논리, 안보논리가 아니라 국민 행복의 눈높이에 맞춰서 기획, 집행해야 할 것이다. <수암(守岩) 문윤홍·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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