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 농담은 이제 그만!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 기사입력 2016/03/17 [07:05]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 농담은 이제 그만!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 입력 : 2016/03/17 [07:05]

대전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대전의 뜻 있는 단체들이 모여 대전학생인권네트워크라는 연대기구를 만들어서 활동한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대전학생인권네트워크는 대전지역 최초로 학생 인권실태조사를 벌여 결과를 발표하였고 조례 제정을 위해 학생인권증진 토론회를 개최하고 대전시의회 의원과 수차례 협의를 진행해왔다.

 

 

 

▲ 서울학생인권조례 시행 2주년.... 여전히 서울시교육청의 인권감수성은 빵점 © 김아름내    

 

 

그런 과정을 거쳐 애초 이달 시의회에서 발의 예정이던 대전학생인권조례가 5월로 연기되었다. 이는 작년 이후 두 번째 연기인 셈이다. 대표 발의자인 박병철 시의원은 교육계의 의견을 좀 더 수렴하겠다는 이유로 연기했다고 한다.

 

학생들의 교육과 학교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례이니만큼 교육계와 시민들의 충분한 의견을 듣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의견수렴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이어야 하며 학생들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의견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지역의 일부 단체들과 종교계는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에게 과도한 자유를 줘서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들의 교권, 심지어 학교운영의 자율권까지 침해한다는 상식 이하의 주장으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박병철 의원이 대표 발의하는 조례안을 자세히 살펴본 후에 드는 생각은 도대체 어느 조항, 어느 문구에서 그런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주장을 인용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히려 이번에 발의한 학생인권조례안은 앞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경기, 서울, 광주, 전북 등과 비교하면 학생권리보장의 명확성과 조문의 구체성, 조례 실행력에 대한 장치 등이 한참이나 후퇴한 조례안이라서 대전학생인권네트워크 차원에서는 많은 부분의 조례 내용을 바꿔 달라는 수정안을 이미 시의회 측에 보낸 상태이다.

 

작년에 대전지역의 여성단체 주도로 양성평등조례를 성 소수자까지 포함한 ‘성평등조례’로 제정하자 지역 기독교계가 대전시와 의회를 거세게 압박하고 항의한 적이 있었다. 결국, 대전시의회는 한 달 만에 성 소수자 내용을 삭제한 ‘양성평등조례’로 재개정하고 말았다. 이를 의식했는지 이번에 시의원이 발의한 조례안 차별 문구 예시에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정하고 있는 차별사항 중에 성별, 종교, 민족, 언어, 나이, 신체조건, 경제적 여건, 성적 등 여덟 가지만 나열되어 있고 성적지향을 비롯한 다른 차별금지 문구가 빠져있어, 이 문제도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는 차별금지 내용을 담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학생’과 ‘인권’이 결합한 문구나 조항에 대해서는 덮어놓고 반대만 일삼는 지역 내 일부 단체나 종교계는 오히려 사학재단과 교육청의 일방적 의견만을 주장하면서 한쪽으로 극히 기울어진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싼 공방의 와중에 보여주고 있는 대전교육청의 입장 역시 한심한 수준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설동호 대전교육감은 지난 2014년 교육감 선거 당시 “교육계 의견수렴을 거쳐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나서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랬던 설 교육감은 인권 친화적 학교+너머운동본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발표한 '2014 전국 학생 인권 실태 조사'에서 대전이 전국 1위의 학생 인권침해 지역으로 나온 결과에 대한 대책을 물은 시의원의 질문에 표본을 신뢰할 수 없다고 대답하더니, 최근에는 교권침해의 가능성과 조례의 유명무실 등의 이유를 들어 사실상 이번 조례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학생 인권을 주장하면 교권이 침해받는다는 논리는 학생인권조례 논의가 처음 나오면서부터 제기되어 온 우리 사회의 오래된 농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실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에서 교권이 뚜렷하게 추락했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음에도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언론과 단체, 종교계는 언제나 학생 인권의 대척 지점에 교권침해를 놓고 끊임없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하는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고 있다.

 

9시 등교, 두발과 복장의 자율화, 학생자치의 내실화, 방과 후 학습시간에 대한 실질적인 선택권, 혁신학교의 정착 등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에서 일어난 변화는 학생들의 처지에서는 예전과 달리 학교생활의 긍정적 변화를 크게 실감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경기 지역의 어느 선생님은 조례 제정 이후 일어난 변화를 묻자 “두발과 복장이 자율화되면서 학생의 머리와 옷이 아닌 얼굴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처럼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를 위해서도 현 시기 대전에서는 꼭 필요한 조례이다.

 

대전시 교육청은 선언적인 의미일 뿐이라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봐야 큰 의미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전학생인권조례를 선언적인 의미로 만드는 것은 오히려 학생 인권에 대한 대전교육청의 무관심과 준비부족이다.

 

대전 인근의 세종·충남·충북·전북의 경우 전부 중학교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지만 대전교육청은 학생의 사회복지권리와 직결되는 중학교 무상급식에 대해서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또한 대전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뿐만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진보교육감이 의욕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혁신학교 만들기도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법외노조를 통보받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전지부장에 대해서는 전국에서 제일 먼저 직권면직을 위한 징계위원회를 여는 기민함을 보였다.

 

대전교육공동체를 위해서 대전교육청이 해야 할 일은 박근혜 정부의 막가파식 교육정책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같이 학생들과 교육계에 의미 있는 변화를 줄 수 있는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인권이 제대로 보장되면 교사의 권리 역시 존중받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학교현장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대전교육청과 지역의 일부 단체, 종교계는 학생인권 보장이 교권침해라는 해묵은 농담은 이제 그만 멈추기 바란다. 같은 농담을 자꾸 하면 웃기지도 않고 짜증만 날 뿐이다.

 

 

이 글은 [인권연대] 목에가시에 실린 글이며 <한겨레신문> 대전충남 지역판 칼럼<울림마당> 원고를 수정, 보충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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