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든 아이를 만드는 철없는 사회

최지영/ 청년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6/05/08 [05:08]

철든 아이를 만드는 철없는 사회

최지영/ 청년 칼럼니스트 | 입력 : 2016/05/08 [05:08]

 

목욕탕에 가면 자주 마주치는 아이들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생 5명이다. 목욕탕 아래층 수영장에서 수영수업을 마치고 목욕탕으로 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체력이 끝내준다. 수영을 하고 난 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운 넘친다. 다이빙은 기본이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 싶으면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수영과 물총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로 인해 욕도 많이 들어먹었다. 내가 본 것만 5번이 넘는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어른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야, 이건 하지 말자. 혼나겠다.”하며 난동(?)을 자중한다. 어른들이 한꺼번에 목욕탕으로 들어서기라도 하면 마을 앞 장승처럼 얼음이 된다. 철이 든다는 게 저런 건가 싶어 재미있기도 하지만 마음 한 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며칠 전이었다. 그날도 그 아이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온탕에 앉아 눈망울이 시뻘게져 있었다. 남탕 관리인에게 된통 혼이 나고 있었다. “야 이 XXX야. 문 닫고 다녀. 가정교육 어떻게 받았니?” 목욕탕 문이 약간 열려있었던 모양이다. “실수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기가 죽어 변명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괜찮아”라는 위로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이들과 처음 대화했을 때가 문득 생각났다. 

 

 “수영하면 재미있니?”라고 묻자, 아이들이 하나같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엄마가 시켜서 하는 수영은 재미가 없다고 했다. 의아했다.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수영장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요즘 아이들에게 수영은 국어나 영어와 같은 학교 수업의 연장선이었다. 사교육에 지친 아이들에게 목욕탕은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시간이었다.

 

목욕탕에서 떠드는 건 분명 잘못된 행동이다. 하지만 나름 노력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어른들의 경멸 어린 시선과 악담이 아이들에게 비수가 되어 꽂히는 건 참 안타깝다.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아이답고, 아이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 때론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잘못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아이니까. 잘 모르니까. 잘 타이르고 따뜻한 말로 알려주면 된다. 그게 어른들의 역할이고 사회의 역할이다.

 

우리 사회는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이가 아이다우면 철이 없다고 한다. 아이가 어른스러우면 대견하고 착하다고 칭찬한다. 마치 철없는 아이는 비정상적이고, 철든 아이가 정상적인, 교육을 잘 받은 아이인 듯하다.

 

대개 아이들의 어른스러움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때가 많다. 교육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가난과 빈곤, 가족의 부재, 혹은 학대의 결과물인 경우도 많다. KBS 다큐멘터리 <동행>에 나오는 부모를 보살피는 어른스러운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게다.

 

아이도 어른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정작 어른이 된다면 더 이상 아이스러울 수 없다. 아이스러움, 아이다움은 아이들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권리다. 그들의 아이스러움을 박탈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지나친 강요이자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철들다’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른스러움을 바라는 생각은 철없는 생각이다.  

 

이 글은 [인권연대] 청춘시대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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