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30주년 &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 기사입력 2016/05/21 [09:59]

체르노빌 30주년 &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 입력 : 2016/05/21 [09:59]

 

지난 4월 26일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기술참사로 일컬어지는 우크라이나(당시는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난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 날을 즈음해 당시 사고의 최대 피해국이었던 우크라이나, 벨로루스, 러시아에서는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다시는 이와 같이 끔찍한 참사가 재발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각종 행사가 열렸다.

 

체르노빌 참사가 핵의 군사적 사용뿐 아니라 그 ‘평화적 이용’도 거부하는, 다시 말해 반핵을 넘어서 탈핵의 필연성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가 된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규모 때문이었다. ‘반감기 2만 4000년’ 같은 표현이 환기하듯이 인류는 이 새로운 유형의 재난 앞에서 도대체 그 끝이 언제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아득한 무력감을 느꼈다.

 

실제로 체르노빌 폭발로 방출된 방사성 물질의 양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시 방출된 것을 합친 양의 200배에 달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에 따르면 이 사고로 유럽의 약 20만 ㎢의 땅이 방사능에 오염되었고, 강과 바다, 지하수, 그곳에 서식하는 동식물이 오염되었다.

 

우크라이나, 벨로루스, 러시아 세 나라에서만 사고 후 거주 불능의 고(高)오염 구역에서 소개된 사람이 11만 6천 명, 집중통제구역 거주자가 27만 명, 기타 오염지역 거주자가 5백만 명에 달하고, 사고로 인한 직간접적 방사성 장애로 영구 불구가 된 사람의 수만 14만 8천 명이었다.

 

체르노빌 참사가 갖는 의미는 이 사고가 지구화 시대에 특징적인 복합재난의 실질적 기원이 되었다는 점도 있다. 보통 재난은 자연재해(태풍, 홍수, 해일, 지진 등), 인적 재난(대형 화재, 폭발, 붕괴, 침몰, 오염 사고 등), 사회적 재난(테러나 전쟁 등)으로 분류된다.

 

반면 지구화 시대 재난의 특성은 자연재해, 인적 재난, 사회적 재난 사이의 상호 의존성이 고도로 강화되어, ‘두 가지 이상의 재난이 동시적 또는 연속적으로 동반되는 복합 재난’이 상례화된다는 데 있다. 이때 복합 재난을 추동하는 ‘재난의 상호 의존성’은 지구화 시대에 극대화된 ‘세계의 상호 연관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울리히 벡의 주장처럼 ‘글로벌 리스크는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의존성의 표현’에 다름 아닌 것이다. 

 

▲  체르노빌 참사 최대피해국 중 하나인 벨로루스 민스크에서 2016년 4월 28일 열린 <체르노빌 참사 30주년 기념 컨퍼런스> 사진 출처 - Казинформ


 

체르노빌 사고를 복합 재난의 기원으로 간주할 수 있는 근거는 여러 가지다. 가장 단순하게는 복합 재난의 정의에 비추어, 그것이 원자로 폭발과 대형 화재, 방사능 오염 등 여러 종류의 재난이 동시다발적으로 착종된 형태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체르노빌 사고가 ‘정치적 체르노빌’이라 할 소련의 붕괴를 촉발한 중요한 팩터가 됨으로써 복합 재난이 전면화 되는 조건, 즉 전지구화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야기했다는 점이다. 이는 ‘체르노빌은 소련 체제의 상징이고,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기술 재앙은 정치적 재앙의 전조가 되었다’는 러시아에 널리 퍼진 견해가 잘 보여 준다. 

 

실제 사고의 근본 원인 중 하나였던 안전문화 부재는 소련식 관료주의로부터 배양된 것이며, 소련식 비밀주의는 사고 피해를 키우고 복구를 심각하게 방해했다. 무지막지한 방사능 누출에도 불구하고 인근 지역 주민 소개가 이루어진 것은 사고 발생 후 하루가 지난 4월 27일로, 이미 다수의 주민들이 다량의 고농도 방사성 물질에 장시간 노출된 후였다.

 

또 사고 직후 방사능 수치의 비정상적인 증가에 놀란 유럽 국가의 추궁에도 불구하고, 소련 당국의 공식 발표가 이루어진 것은 무려 3주가 흐른 뒤였다. 이후에도 소련 정부는 사고 규모 및 오염 정도를 축소, 은폐함으로써 신속하고 효율적인 국제 공조를 지연시켰다. 이렇게 체르노빌 사고로 여실히 드러난 소련의 관료주의와 비밀주의의 병폐는 소련의 개혁⋅개방 정책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 책임 규명과 피해 보상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체르노빌 참사와 이를 비견하는 건 자칫 엉뚱해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사고나 재난 뒤에는 늘 무책임한 정부나 기업, 은폐와 조작을 가리지 않는 관료주의와 비밀주의가 숨어 있다는 점에서 두 사고는 같다.

 

사건 발생 후 5년이나 지났지만 책임자나 관련자 처벌은 반드시 따져 물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 스스로의 근본적인 각성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구화 시대 대형재난의 대부분은 과학과 문명의 결핍이 아닌, ‘과잉’의 결과로 발생한다. 체르노빌도 그랬고, 가습기 살균제도 그렇다.

 

우리는 이미 온갖 세균, 곰팡이와 더불어 살아간다. 세균과 곰팡이를 박멸과 살균의 대상으로만 볼 일이 아니라,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사람도 죽일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더럽게 살자는 건 아니다.

 

강박적인 위생관념으로부터 벗어나 공생, 공존하는 법도 배울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우선 필자부터 결벽증적 습관을 심각하게 반성하고, 의심스런 화학물질 범벅임에 분명할뿐더러 환경오염의 주범인 각종 세정제, 물티슈, 살균제 등으로부터 벗어나는 연습을 해보아야겠다.  

 

이 글은 [인권연대] 수요산책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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