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딸내미의 최신 자명종

김양수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6/05/27 [12:11]

[사는 이야기] 딸내미의 최신 자명종

김양수 칼럼니스트 | 입력 : 2016/05/27 [12:11]

 

[신문고 뉴스] 김양수 칼럼니스트 = 잠귀가 밝은 아내는 자는 동안에도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고 있다. 간밤에 비가 언제 왔는지, 윗집 아이 밤새 칭얼거림에 엄마가 혼내는 소리, 심지어 새벽에 윗집 화장실 물 내리는 동작까지도 아내는 자면서 그 모든 상황을 파악한다.

    

아내의 이런 능력은 나에게 상당한 압박을 가져온다. 예컨대 내가 술 마시고 새벽 3시에 귀가했는데 아침에 "당신 몇 시에 들어왔어?"라는 질문에 "음... 한시쯤?" 이라고 대답하면 나는 위증죄로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런 일엔 그냥 사실대로 이실직고한다.

    

반면 나는 잠들면 업어가도 모르는 체질이지만 그래도 '생체 자명종'이 작동하는 타입이다. 6시에 기상 자명종을 맞춰놓으면 5시 50분쯤에 눈을 뜬다. 새벽 세시에 일어나야 하는 일정이라면 칼같이 2시 50분에 눈을 뜬다. 그래서 나에게 자명종은 사실 백업용에 가깝다.

    

이런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딸내미는.... 혹시 병원에서 아기가 바뀐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들 정도로 아빠와 엄마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면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게 자정 전에 잠을 자는 부모와 달리 이 녀석은 밤새우는 게 취미인 것 같다. 잠을 언제 자든 그거야 자기 생활이니 큰 문제는 아닌데 딸내미의 독특한 수면 특성이 우리 집안에 드리웠던 어두운 그림자는...바로 녀석이 스스로 잠에서 깨어나는 법을 거의 모른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딸내미를 깨워 학교에 보내는 일은 나와 아내의 일상에서 힘겨운 통과의례 중 하나였다. 크게 속 썩이는 일 없이 잘 자라주었던 딸내미였지만 깨우면 일어나지 못하고, 일어나서는 잠을 못 이겨 성질을 버럭 내고, 그래서 잠자게 놔두어 지각 사태가 벌어지면 왜 자기 안깨웠냐고 폭발해버리고... (나중에 물어보면 그전에 엄마가 깨웠던 일도 일어나서 성질내던 일도 기억을 못한단다...) 돌이켜 보면 부모 자식 관계를 험악하게 만들었던 에피소드의 상당수가 아침 기상과 관련된 사고들이었던 것 같다.

    

딸내미도 이런 자신의 약점을 잘 아는지라 한계 극복을 위해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다양한 자명종을 운용해 왔다. 그리고 딸내미가 운용했던 모든 자명종들은 아주 훌륭한 성능을 발휘해 주었다.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눈을 뜨게 해주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자명종이 깨워준 사람들이 딸내미를 제외한 우리 가족 모두라는 점이다. 딸내미가 맞추어 놓은 알람 시간이 되면 나와 아내와 아들내미는 온 집안에 울리는 우렁찬 알람소리에 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딸내미 방으로 들어가 혼수 상태인 딸내미 곁에서 자명종을 찾아내 어떻게 꺼야 되는지도 모르는 낯선 그 녀석을 처리해야 했다....

    

딸내미가 대학생이 되고 난 후, 우리 가족이 치르던 "대 자명종 투쟁"은 소강상태를 맞이한다. 녀석의 기상 시간이 많이 늦어진 덕이다. 하지만 요즘도 가끔 아침 먹다가 딸내미 자명종을 처리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오늘 아침, 밥을 먹는데 갑자기 딸내미 방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려온다.

 

무슨 일인가 깜짝 놀라 후다닥 방으로 가보았더니 딸내미가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아침부터 도대체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니까 자명종을 끄는 중이란다.

    

요즘 스마트폰에 설치하는 자명종 어플리케이션에는 소리를 질러야 꺼지는 기능이 있단다. 새롭게 경험하는 첨단 자명종이다. 열심히 전화기를 상대로 소리를 지르던 딸내미는 자명종이 잠잠해지자 다시 곤히 잠이 든다.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사위될 친구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미리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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