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 대북 선전 방송 궁금해 찾아간 '애기봉'

추광규 기자 | 기사입력 2016/06/16 [18:00]

대남 대북 선전 방송 궁금해 찾아간 '애기봉'

추광규 기자 | 입력 : 2016/06/16 [18:00]

 

[신문고뉴스] 추광규 기자 = # 제 기억속 DMZ의 밤은 시끄러운 소음으로 남아 있습니다. 33년 전 대학 2학년 때 교련 훈련의 일환으로 전방입소 교육 당시의 기억 때문입니다.

 

전두환 정권은 학생들을 예비 병력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등학교부터 군사교육인 ‘교련’을 정규과목으로 가르쳤는가 하면 대학교에서도 이 같은 군사교육은 이어졌습니다.

 

또 그 일환으로 실시된 게 1학년 때는 문무대 입소 그리고 2학년 때는 전방입소였습니다. 그에 대한 댓가도 상당했습니다. 2년 동안 교련과목을 이수하면 3개월 복무단축의 혜택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 애기봉 오르는 길에 세워진 해병대 구호가 인상적 입니다.

 

 

# 전방부대 입소는 1983년 5월 경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철원에 위치한 6사단으로 입소한 후 사나흘 간은 FEBA 지역에서 훈련을 한 후 GOP에 투입된 것은 목요일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현역 사병 2명 그리고 입소한 대학생 2명이 1조가 되어 경계근무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름 아닌 밤새 이어졌던 남북 간의 치열한 선전방송이었습니다.

 

수 킬로 앞의 북쪽에서는 “위대한 김일성 수령 동지....”라는 대남선전 방송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또 이에 맞서 남쪽에서는 대북방송으로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틀어 대고 있었습니다.

 

남북 양쪽의 선전방송은 산에 부딪힌 후 메아리 쳐지면서 웅웅거리는 소음으로 1980년 대 남북 간 대치상황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남북 간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선전방송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멈추었습니다. 북쪽의 대남 선전방송을 멈추는가 했더니 남쪽에서도 틀어대던 노래를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동틀 녘까지 이어지는 것은 적막함 그 자체였습니다. 소음이 컸던 것에 반비례해 고요함은 더 짙게 느껴졌습니다. 남북 간 선전방송의 소음을 대신한 것은 이름모를 산새의 울음소리였습니다. 여기에 새벽 안개 속에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던 기나긴 철책선의 모습은 33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제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 애기봉 표지석 입니다.    © 추광규 기자

 

 

#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수십 년을 이어져 오던 대남 대북 선전방송은 노무현 정권 당시인 지난 2004년 6월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심리전을 중단하기로 합의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8월 비무장지대 목함 지뢰 사건을 계기로 남북 간의 대남 대북 선전 방송이 재개되었습니다. 북핵 실험 등 남북 간의 갈등이 높아질수록 정부는 대북선전 방송 출력을 높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대남 대북 방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던 중 지난 14일 좋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남북 간의 갈등이라는 독특한 사례를 관광 상품으로 만들고 있는 'DMZ관광'이 ‘DMZ 방문을 포함하는 안보 투어 프로그램’을 상품으로 개발하면서 언론사 기자들을 상대로 하는 팸투어 프로그램에 김포 애기봉 방문이 있다고 해서 주저없이 신청을 했던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대북제재의 가장 큰 수단인 냥 내세웠던 대북 방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또 이에 맞서 북한 쪽 대남방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한강하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중국어선 단속을 먼 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애기봉에서 이루어졌다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 촬영장소 표지석

 


# 지난 14일 오전 대남 대북 방송 그리고 북핵 실험 이후 DMZ의 모습은 어떨지를 머리 속에서 상상하면서 공덕역에 모인 후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한강을 따라 김포시내로 들어선 후 얼마 안 돼 민통선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잠시 멈춰선 관광버스에 오른 해병대 병사의 인원점검 후 버스는 좁은 길을 구불구불 지나더니 애기봉에 도착했습니다.

 

애기봉은 성탄 트리를 점등하면서 남북 갈등의 한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었는데 이날 찾은 애기봉의 모습은 제가 마음 속에 그리던 그런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애기봉 전망대는 새롭게 건물을 짓는다는 이유 때문에 낡고 쇄락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멀어진 남북 간의 관계를 상징이라도 하듯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북녘 땅은 운무에 가리워져 흐릿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애기봉에서 바라본 남북의 산하는 그저 조용하고 평화로운 모습뿐이었습니다.

 

애기봉 전망대에서 마주보이는 개풍군 하조강리 북녘 들판 또한 그지없이 평화롭게만 비쳐 졌습니다. 망원경으로 바라본 북녁땅에는 마을 주민 세 명이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인지 수문 비슷한 것을 둘러싸고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 북녘 개풍군 하조강리 입니다.      © 추광규 기자

 

 

8년 전인 지난 2008년 개성관광을 다녀온 적 있는데 당시 이 지역을 지나면서 바라본 북녘 땅의 벌거벗었던 산은 짙푸른 녹음으로 우거지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산에서 나무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의 모습이었는데 남쪽에서 바라본 2016년 6월 북녘의 산은 초여름을 맞아 초록색이 제법 짙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전망대에 상주하고 있는 해설사에게 김포나 애기봉 근처에서 대북방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물어보니 이 부근에는 없고 강화도 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기대했던 중국어선 단속 현장과도 이 곳은 멀었습니다. 강화도까지 보이기는 하는 것 같은데 한강과 한탄강이 만나면서 조강이라고 부른다는 애기봉 앞에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한강 하류의 제 시야의 범위 내에서는 그 어떤 배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애기봉에서 바라본 한강 하구 입니다. 왼쪽이 강화도 입니다.       © 추광규 기자

 

 

애기봉을 내려오는 길에 길가에 핀 참나리가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가운데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의 꿀을 탐하고 있었습니다.

 

 

▲ 참나리꽃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 추광규 기자

 

 

초여름이 오니 참나리 꽃은 피고 호랑나비는 또 그 꽃을 찾아 생명을 이어가면서 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은 가지만 또 새로운 세월이 다가오듯 대자연의 순리에 있어 남북 간의 갈등은 티끌도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수십 년이 흐른 후 제 건강이 허락해 또 다시 이 곳을 찾게 된다면 그때의 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남북은 통일이 되어 있을지 아니면 더욱 첨예하게 갈등이 깊어졌을지 말입니다.

 

 

 

 

 

무심하게 지저대는 산새 소리에 2016년 6월 어느날 애기봉의 평화는 그렇게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겉으로만 보이는 평화 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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