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오일장’ 수입 농수산물 속 ‘보물’

1936년 일제하 소설속 오일장 & 이름도 생소한 2016 ‘평창올림픽시장’

추광규 기자 | 기사입력 2016/08/12 [11:38]

‘평창 오일장’ 수입 농수산물 속 ‘보물’

1936년 일제하 소설속 오일장 & 이름도 생소한 2016 ‘평창올림픽시장’

추광규 기자 | 입력 : 2016/08/12 [11:38]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中)

 

한 편의 시를 읽는 듯 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입니다. 소설은 그가 태어난 봉평을 중심으로 대화 평창을 그 무대로 삶을 꾸려가는 장꾼들의 내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소설은 1936년에 발표되었으니 이 모습이 그리고 있는 것은 80년 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 이효석 문학관 인근에 있는 메밀밭에는 꽃이 한참이었습니다.      © 추광규 기자

 

 

80년 세월의 벽을 뛰어넘은....‘소금 뿌린 듯 한 메밀밭’ 

 

평창에 숙소를 정하고 보니 다음날 어느 곳을 들를까 고민하다 이곳이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 무대라는 것에 착안해 이효석 생가와 전통 오일장의 모습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짐을 정리한 후 숙소를 나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이효석 문학관입니다. 생가와 문학관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입구에는 소설속 장꾼들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던 당나귀가 전시되어 있는 게 시선을 잡아 끕니다.

 

메밀꽃 필 무렵의 소설속 나귀에 대해 이효석은 주인공과 이십년 세월 동안 장에서 장으로 다니면서 함께 늙은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가스러진 목뒤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곱을 흘렸다. 몽당비처럼 짧게 쓸리 운 꼬리는, 파리를 쫒으려고 기껏 휘저어보아야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아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中)

 

▲ 이효석 생가를 복원해 놓았습니다.      © 추광규 기자

 

 

소설속 나귀의 모습을 뒤로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메밀밭입니다. 소설속 장면이 80년을 뛰어 넘어 불쑥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이효석 문학관 인근 산허리는 피기 시작한 메밀꽃이 마치 소금을 뿌린 듯 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이효석 선생의 생가는 원래 있던 위치에서 700m쯤 지난 곳에 복원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연글이 씁쓸함을 새기게 합니다. 생가터에 대해 군에 매각을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아 이곳에 복원 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글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 수 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지인의 시어머님이 이효석 선생의 누나라고 했는데 당시 생가 복원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 평창강의 모습입니다.     ©  추광규 기자

 

 

2016년, 정겨운 오일장은 사라지고... 생소한 ‘평창올림픽시장’

 

이효석 문학관과 생가 터를 둘러본 후 발길을 돌린 곳은 80리를 격해 있는 평창 오일장입니다. 평창군 관내에서는 미탄장(1·6일), 봉평장(2·7일), 진부장(3·8일), 대화장(4·9일), 평창장(5·10일)이 각 5일마다 한 번씩 열리고 있습니다. 바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입니다.

 

“드팀전 장돌림을 시작한지 이십년이나 되어도 허 생원은 봉평장을 빼논 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지방도 헤매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 하러 가는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다녔다. 닷새만큼씩의 장날에는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다.”(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中)

 

▲지난 10일 평창 오일장의 모습입니다.      © 추광규 기자

 

 

평창군 관내에서 이루어지는 이들 다섯 개 전통 장터는 꽤 오랜 시간을 이어져 내려온 것은 확실합니다. 그 가운데 지난 10일 열리는 장은 평창 장이었습니다. 소설속에서 봉평장에서 대화장으로 가는 여정을 육칠십리 밤길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죽들은 그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반날 동안이나 뚜벅뚜벅 걷고 장터 있는 마을에 거지반 가까왔을 때 거친 나귀가 한바탕 우렁차게 울면 더구나 그것이 저녁녘이어서 등불들이 어둠속에 깜박거릴 무렵이면 늘 당하는 것이건만 허 생원은 변치 않고 언제든지 가슴이 뛰놀았다.(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中)

 

 

 

 

 

 

 

 

 

나귀에 짐을 싣고 봉평장에서 장사를 마치고 다음날 열리는 대화 장으로 가는길은 밤길을 반나절 이상 더듬어야만 하는 꽤나 고단한 여정이었을 겁니다. 소설 주인공에게 반나절 걸리던 길은 자동차로는 2~30분에 불과한 거리입니다. 그만큼 우리들이 시간을 압축해서 살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평창시내로 들어선 후 시장을 찾다보니 생소한 이름이 눈에 띕니다. ‘평창올림픽시장’입니다. 이곳은 해방 후 생긴 상설시장인데 지난 2012년 동계올림픽의 개최지로 확정되면서 2012년 평창올림픽시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했습니다.

 

평창오일장은 바로 이곳 평창올림픽시장 인근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평창 오일장을 찾은 지난 10일에는 무더위가 절정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시장 상인들도 무더위에 꽤나 지쳐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극성을 부리는 무더위 탓인지 사람들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전통 오일장의 모습을 기대했으나 현실은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수입 농수산물 그리고 각종 수입 공산품이 전통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창에서 나오는 농산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저 호박 몇 개 풋고추 몇 개 따다놓고 더위를 피하고 있는 할머니의 좌판 뿐 이었습니다. 장사는 뒷전이고 그늘에서 더위를 쫒으며 한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에서 그나마 이곳이 백수십년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시장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을 뿐입니다.

 

토종닭 한 마리와 집에서 기른 닭이 낳았다는 계란 10개를 사들고 나오는 길에 이곳이 메밀의 산지로 가공하고 남는 메밀껍질을 떠올렸습니다.

 

 

 

 

베개속으로 안성맞춤이 ‘메밀껍질’입니다.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기름집에서 팔지 않을까 하는 귀띔에 한 걸음에 찾아가 물어보니 팔기는 파는데 가마니 단위로 판다고 했습니다.

 

한 가마니에 일만 오천원입니다. 흥정을 마친 후 참기름집 주인은 창고에서 가져와야 한다고 한 후 큼지막한 자루를 메고 나타났습니다. 메밀껍질 자루를 승용차 뒤 트렁크에 싣다보니 공간 거의 전부를 차지합니다.

 

그래도 베개 몇십 개는 족히 채울만한 양의 메밀껍질을 보노라니 마음이 흐뭇합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추석날 형제들이 집에 오면 메밀껍질로 베갯속 하라고 나눠줄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흐뭇합니다. 평창오일장에서 생각지도 않던 보물을 건진 셈입니다. 또 이런 맛에 전통시장을 찾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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