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은 미국패권붕괴의 전조

우리사회연구소 곽동기 상임연구원 | 기사입력 2016/11/18 [15:22]

트럼프 당선은 미국패권붕괴의 전조

우리사회연구소 곽동기 상임연구원 | 입력 : 2016/11/18 [15:22]

 

11월 8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범죄자들, 범죄기록이 있는 사람들, 갱단 멤버들, 마약 거래자들을 내보낼 것이다. 2백만, 심지어 3백만 명이 될 수도 있다.”라는 발언에서 보듯, 트럼프는 과격한 언행으로 익히 구설수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의 편협한 여성관, 인종차별적 태도들은 그가 한 나라의 대통령직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게 합니다.

 

하지만 그는 공화당의 대선주자로 지명되었으며 본선에서도 힐러리를 꺾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트럼프의 당선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미국은 어떤 전철을 밟게 될까요?

 

대선의 이변 –트럼프 당선

 

11월 8일에 치러진 미국 대선 선거인단 선거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전체 538명의 대통령 선거인단 가운데 306명을 확보하여 232명에 그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제치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선거인단은 무려 74명이 많은 압승으로 보이지만 이는 승자독식제를 채택한 미국대선의 특성 때문입니다. 트럼프의 전체 득표수는 6037만표로 6104만표를 얻은 클린턴보다 오히려 67만표가 적었습니다. 지는 곳에서는 큰 차이로 지더라도, 이긴 주에서 박빙의 차이로 이긴다면 전체 득표수가 적더라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습니다. 

 

 

트럼프의 당선은 커다란 이변이었습니다. 언론은 대체로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예측하였습니다. 2016년 9월, <경향신문>은 특파원 칼럼에서 <워싱턴포스트>의 한 기자가 사석에서 “트럼프는 절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수 없고, 설사 후보가 된다 하더라도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트럼프가 공화당의 대선후보가 될 것인지 조차도 몰랐습니다. 선거 3일 전인 11월 5일만 하더라도 민주당 클린턴을 지지하는 선거인단은 216명까지 확보된 반면 공화당 트럼프를 지지하는 선거인단은 164명밖에 확보되지 못했다는 예측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투표를 하니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국 제도권이 미국 국민들의 민심을 읽지 못한 것입니다. 미국 국민들은 마음 속으로는 트럼프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편협하고 인종차별적이라는 공격을 받는 트럼프를 지지한단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던 것 아닐까요? 결과적으로 미국인들은 트럼프를 전폭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왜일까요? 그만큼 미국경제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경제는 어려운데 겉으로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서민의 삶에 관심있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기득권층의 사리사욕을 대변해주는 미국의 위선적인 정치시스템에 혐오를 느낀 것입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트럼프는 러스트밸트 라고 불리는 미 중북부의 공업지대(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일리노이, 미시간, 위스콘신)의 표를 싹쓸이했습니다. 이 지역은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던 지역입니다. 결국 이번 선거 결과는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쇠락한 미국경제가 백인노동자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고 그에 대한 반발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 지지층의 변화 – 샌더스 열풍

 

트럼프 현상은 2016년 초에 몰아쳤던 샌더스 열풍과 함께 보아야 합니다.

 

버니 샌더스는 버몬트 주 상원의원이었지만 전국적 지명도도 낮았고 무소속 출신으로 민주당 내에 기반도 없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민주적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대변한다고 하였습니다. 소련과 냉전을 치렀고 아직도 사회주의와 대결을 하는 미국 주류가 알면 깜짝 놀랄 주장입니다. 

 

 

그런데 샌더스는 미국 대선경선의 첫 장이라고 할 수 있는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클린턴을 20% 격차로 꺾어 이변을 연출하였습니다. 그는 10개월 사이 700만명의 소액기부자들로부터 총 2000억원 이상을 모았습니다. 1인당 평균 3만2000원의 소액기부금으로 기성정치를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샌더스는 결국 11개 주에서 민주당 대선주자 경선이 치러진 3월 1일 ‘수퍼화요일’에서 대의원 수가 클린턴(334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45명에 그쳐 기세가 꺾이고 말았습니다.

 

샌더스 열풍은 상위 1%가 90%를 지배하는 모순을 뜯어고치겠다는 그의 주장에 수많은 미국인들이 공감하였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샌더스는 유세 도중 ‘정치혁명’이라는 말을 올렸다고 합니다. 주류정치에 대한 개혁을 호소해 젊은충과 진보층으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얻어낸 것입니다.

 

샌더스 열풍에는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갈수록 어려워진 미국경제도 크게 한 몫 하였습니다. 오바마행정부는 의료보험을 확대하고 내수경제를 살리겠다고 하였지만, 미국인들의 고통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미국의 기성정치세력은 90% 국민들의 고통보다는 1% 지배층의 이익을 더욱 중시하였습니다. 샌더스 열풍은 미국인들이 지금의 지배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 몸짓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공화당 지지층의 변화 – 트럼프 현상

 

트럼프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럼프는 미국인이 가지고 있던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을 십분 활용하였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관련 수사를 공격하며 힐러리를 대표적인 ‘구태정치’세력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정치신인 트럼프는 상대적 새로움을 선전할 수 있었습니다. 

 

▲ 트럼프     ©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경제난을 화두로 출마해 집권하였던 2007년 이명박과 당선사례가 유사합니다. 당시 이명박 후보도 BBK 논란과 더불어 “전과 14범”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던 만큼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경제난으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을 이용해 지지세력을 모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명박은 스스로 ‘기업인 출신’임을 부각시키며 기성정치세력과 차별화를 시도하였습니다.

 

트럼프도 이명박처럼 경제난을 활용한데서 나아가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감을 활용하였습니다. 실제로 미국정치판에서 오랜 세월 활동한 힐러리를 ‘구태정치’로 규정한 것입니다.

 

혼란에 빠진 미국

 

샌더스는 트럼프 당선 직후 성명서에서 “만일 트럼프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외국인 혐오, 반 환경적 정책들을 추진할 경우 맹렬히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역시 “트럼프의 캠페인은 증오와 공포를 혼합한 유독한 스튜 요리”라고 비난했습니다. 미국의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인 ‘미국을 위한 민주주의’의 닐 스로카 대변인은 “미국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샌더스나 워런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트럼프에 대해) 굉장한 회의를 지니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물론 샌더스와 워런도 트럼프 당선 이후 트럼프를 돕겠다고는 하였습니다. 트럼프가 샌더스나 워런 등의 주장과 유사한 저소득층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과 복지제도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샌더스와 워런의 도움선언은 몇몇 정책에 국한된 선언일 뿐입니다.

 

트럼프의 포퓰리즘 공약은 벌써 후퇴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트럼프는 대권을 거머쥐자 맨 처음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역할을 분리해 월가자본을 규제하는 ‘도드-프랭크 법’을 무력화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향후 트럼프의 전반정책에 대해서는 샌더스와 워런 뿐만 아니라 미국의 기성정치세력들도 트럼프를 축으로 이리저리 패가 갈려 서로 대결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중앙일보>는 11월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 인수 작업이 혼란에 빠졌다며 요직에 거론되던 후보자들이 물러나는가 하면, 주요 공화당 인사들은 입각을 고사하며 인수위 활동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폴리티코는 인수위의 불협화음에 대해 “트럼프가 정권 인수를 망치고 있다” “칼부림(knife fight)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부자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트럼프는 인수위원장이었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를 부위원장으로 강등시켰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인수위의 국방·외교정책 담당 2인자였던 매튜 프리드먼도 인수위에서 해고됐다고 전했습니다. 보건부 장관 물망에 오른 벤 카슨은 15일 의회전문지 더힐에 장관직에 대해 “관심없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의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100년을 이어온 권력독점을 은폐하기 위한 정치행사에 불과했습니다.

 

선거자금 모금액수로 당선자를 예측할 수 있는 대선은 세계에서 아마도 미국이 유일할 것입니다. 미국의 정치권력은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양대정당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의 허울뿐인 민주주의가 완전히 가면이 벗겨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당선을 미국 민주주의의 혁명이라 볼 수도 없습니다. 편협한 여성관과 인종차별적 인식을 가진 트럼프는 민주주의를 대표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미국사회가 만들어놓았던 허울뿐인 선거-실제로는 돈선거-의 약점을 공략하며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지금껏 미국 기득권층은 국민의 눈을 속이는 이미지 정치에 재미를 보았지만, 그들의 기만적인 이미지 정치는 트럼프에게 악용되었습니다. 이제 미국기득권층은 트럼프라는 문제적 대통령의 당선을 속절없이 지켜보게 된 것입니다.

 

가시화되는 미국의 붕괴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은 어떤 길을 걸을까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은 미국의 정치시스템이 21세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완전히 파산하였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미국은 이미 수많은 사회적 혼란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부자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나라이지만 서민들에게는 헬조선을 능가하는 열악한 사회입니다. 뿌리 깊은 인종간 갈등과 높은 범죄율, 열악한 사회보장제도 등은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미국사회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미국사회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횡행하여 공동체는 붕괴되었고 개별 국민들은 고립되어 남을 믿지 못하고 절망적인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례로 미국은 그토록 많은 사회적 문제가 있음에도 총기규제가 지금까지도 시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경찰의 치안조차 믿지 못하고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의 사회적 문제를 더욱 불거지게 할 것입니다. 트럼프의 극단적 이민제한과 추방정책은 백인노동자들에게는 일시적 환영을 받더라도 주변국과의 외교는 파탄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멕시코 간 국경에 거대장벽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이 시행되면, 트럼프의 고립주의는 세계적 지탄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는 구호판을 들고 시위를 하는 미국 학생들 
▲ 반트럼프 시위가 급기야 폭력난동으로 변질되고 있다. 민간인들의 차를 부수고 공공기물을 파손하는 시위대     © 자주시보

 

대외정책도 다르지 않습니다.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패권의 붕괴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입니다.

 

지난 오바마행정부 시기에 미국은 군사패권을 사실상 상실하였습니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는 중국, 러시아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막지 못하고 있으며 20년간의 대결 끝에 핵무장력을 사실상 완성한 북한의 핵능력도 타격을 주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달러패권도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중국경제의 부상은 미국의 현존하는 과제입니다. 경제난으로 미국의 주요한 동맹축인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었습니다. 미국은 브릭스(BRICs) 국가들과의 관계 역시 변화된 경제환경에 맞게 재정립할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립주의 외교를 표방한 트럼프가 당선되었습니다. 트럼프의 고립주의는 지금까지 미국이 부담하던 미국의 패권유지비용을 주변국에게 전가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미국과 주변국들의 갈등은 더욱 촉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껏 미국을 선호하며 미국과 함께하려던 주변국들의 지식인들은 차례로 미국의 외교정책과 거리를 두고 비판에 나설 것입니다. 중장기적으로 트럼프의 등장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긍정여론을 잠식하고, 미국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반발을 키울 것이 자명합니다.

 

동북아에서 트럼프

 

트럼프의 당선이 동북아시아에서 주한미군의 자발적 철수와 북미관계정상화 등 일련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볼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지금은 중국이 부상하고 북한의 핵개발이 날로 강화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5차례에 걸친 핵시험을 통해 핵능력을 사실상 완성한 마당에 미국은 오바마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폐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립주의를 전면화한 트럼프는 한국정부에게 대북대결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온 국민의 지탄을 받은 박근혜 정부의 대결정책을 뛰어넘는 대북강경정책을 요청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일례로 트럼프는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을 대폭 인상할 것으로 요청하였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한국보수진영에게 커다란 협박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핵이 없던 북한과의 대결에서도 북한체제를 바꾸지 못한 미국이 핵을 가진 북한체제를 변화시킬 가능성은 더욱 낮아집니다. 미국은 향후 대북정책을 대결과 대화의 양면정책으로 가져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을 대북정책의 유화국면이라고 볼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트럼프행정부는 오히려 북-미간 대화가 마련된다면, 북미대화의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군사적 충돌을 불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화채널이 오히려 전면전을 막을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북미가 접촉했다고 해서 곧바로 화해국면이 열릴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트럼프가 능동적으로 대북화해를 추진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오히려 트럼프가 대북대결을 추구해나가는 와중에 미국의 내부모순과 알력으로 트럼프 체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내부에서 갖은 모순을 안고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가 동북아에서 연전연승하면서 정전체제를 지탱시킬 수는 없습니다. 트럼프의 미국은 오바마의 미국보다 더 두들겨 맞으면서 패권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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