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박근혜 박지원의 전략((戰略)분석[김양수 칼럼] '사기성 전략'과 '진정성 전략', 그 차이는 '나'와 '국민'
[신문고 뉴스] 김양수 칼럼니스트 = 20대 총선 직전이었던 2016년 4월 8일. 문재인은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광주 충장로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호남의 정신을 담지 못하는 야당 후보는 이미 그 자격을 상실한 것과 같다’ 고도 했고 ‘진정한 호남의 뜻이라면 저는 저에 대한 심판조차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이겠다’ 라는 발언도 곁들였다.
총선을 5일 남겨둔 그때, 여론조사에서 더불어 민주당은 호남지역 전패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었고, 새누리당의 압승 또한 예상되던 상황이었다. 제 1야당이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몰린 순간 문재인은 그야말로 배수의 진을 친 승부수를 던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5일 후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선거결과가 나오면서 문재인의 승부수는 민망한 정치적 해프닝이 되고 말았다. 더민주의 호남 패배는 기정사실이 되었지만 누구도 예상 못한 바닥 민심-새누리 심판 정서- 덕분에 더민주는 새누리를 제치고 원내 1당을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거취를 두고 설왕설래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유야무야 되며 없던 일이 되고 만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난 2016년 11월 15일 박근혜 게이트가 전국을 흔드는 가운데 문재인은 자신의 과거 발언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그 당시 그 선거에서 우리가 말하자면 승리하고 또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을 막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 당 정권 교체의 기반을 구축하고, 그걸 위해서 광주와 호남에서 우리 당이 지지받기 위한 그런 여러 가지 전략적인 판단으로 했던 발언이었다“
'전략, 그렇다. ‘전략(戰略)’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 사회적 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서 방법이나 책략’이라고 나온다. 한마디로 문재인은 자신의 정계은퇴가 걸린 발언을 선거승리를 위한 방법이나 책략 정도로 이용했다는 것을 자백한 셈이다.
이는 2016년 4월 당시 사람들의 눈에 선거를 책임진 장수가 배수의 진을 치는 듯 보였던 비장한 발언이 사실은 선거 공학에 입각한 정치적 퍼포먼스에 불과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검찰의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편파적인 검찰의 수사는 받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다. 또 "촛불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촛불시위가 있을 때마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그렇다면 촛불민심은? 박근혜 퇴진, 즉 하야댜. 그런데 그는 하야를 '여야 협상'에다 맡긴단다. 이는 ‘연쇄 담화 범죄’다. 그래도 언론이나 세간은 이를 '전략'이라고들 한다.
대통령도 정치인이다. 따라서 정치인의 중대 발언이 ‘전략적’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치적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면, 즉 문재인의 광주발언이 '전략'이었다고 이해해주길 바란다면, 정치인이기도 한 박근혜 대통령의 처신 역시 국민들은 정치인의 전략적인 발언이라고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이 가능하다. 그럴 수 있는가? 없다. 그렇다면 문재인의 발언도 용납이 되면 안 된다. 더 나아가 문재인은 어떤 논리로도 박근혜의 '전략적'발언을 비난하면 안 된다는 말도 된다.
오해마시라. 박근혜를 두둔하고자 함이 아니다. 박근혜 게이트를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정치판을 새롭게 바꾸고자 한다면 사람에 상관없이, 진영에 상관없이 잘못된 행동은 봐주지 말고 가차 없이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나는 함량 미달 정치인의 ‘전략적 발언’을 반추했을 뿐이다.
‘울지 않는 새’를 어떻게 할까? 오다 노부나가는 "새를 죽여버린다"고 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를 울게 하겠다"고 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처세술의 모범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 전국 시대 인물들의 일화이다.
2016년 12월 2일 대통령 박근혜 탄핵안을 두고 제 1야당과 제 2야당의 입장이 엇갈렸다. 민주당의 추미애는 가결 여부와 상관없이 탄핵안을 표결에 붙이자고 했고, 국민의 당 박지원은 비박의 찬성 없이 표결로 밀어붙이면 100% 부결될 것이 확실하니 표결을 9일로 미루자고 했다. 박지원의 주장으로 2일 표결은 무산되었고, 국민의 당과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비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아야 했다.
하지만 주말 230만 촛불의 힘은 상황을 반전시켰다. 민심의 무서운 분노를 체감한 새누리당 비주류는 주말 이후 박근혜의 입장 여부와 상관없이 탄핵 찬성으로 입장을 급선회했다.
9일 탄핵안 표결을 사흘 앞둔 12월 6일 현재, 박근혜가 9일 이전 즉각 하야를 발표하는 초강수를 선택하지 않는 한, 탄핵안 가결은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상황이다.
결과론적 시각이겠지만 ‘울지 않는 탄핵새’를 민주당은 죽여버리자고 덤빈 격이고 박지원은 탄핵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자며 결국 울게 만든 셈이다. 만약 민주당의 의지대로 2일 탄핵안 가결을 밀어붙였다면? 비박의 비토로 부결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래도 그 다음날 촛불의 파도는 230만 기록을 쉽게 넘어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500만 촛불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은 탄핵을 압박하는 강력한 무기가 아닌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정치권에 대한 분노의 투사 이상 의미를 지니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정치권은 촛불의 무서운 분노 앞에 나름 수습책을 내놓겠다며 야단법석을 떨겠지만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 왔던 한심한 수준의 역량으로 볼 때, 탈선한 탄핵열차를 대신할 영양가 있는 대책을 보여주긴 어려울 것이다.
12월 2일. 여당 비주류에 대한 박지원의 정치적 메시지는 ‘지금 탄핵안 안 받을래? 그럼 시간을 주지. 어차피 주말 촛불을 보면 너희나 우리나 답이 나올 테니까’ 로 요약될 수 있다. 그 시점에서 주말 촛불의 동력이 어느 정도일지 예측하는 것은 마치 선거 결과를 예상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주말, 뚜껑이 열렸다. 결과는 속된 말로 ‘대박’이었다.
결과를 알 수 없었던 주말 민심. 이것을 박지원은 탄핵새를 울게 하는 동력으로 삼았다. 아이러니하게도 230만 촛불 중 누군가의 이유는 국민의 당과 박지원에 대한 분노였을지도 모른다. 반면 민주당은 그 소중한 민의를 아무 결과도 장담할 수 없는 분노 투사의 성격으로 낭비하려 했다. 과연 누가 무책임하고 누가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일까?
박근혜 탄핵안이 가결된다면 그것은 누가 뭐래도 광장의 촛불 민심 때문이다. 하지만 광장의 민심을 정치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승화시킨 탁월한 정치적 전략을 구사한 박지원이 없었다면 깊고 높고 뜨거운 광장의 민심에도 불구하고 정국은 예측 불허의 난장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정치인 박지원에게 커다란 빚을 진 바 있다. 그는 2003년 이른바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되어 노무현 정부의 ‘정치 전략’에 따라 구속 수감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김대중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평가 받는 남북화해 정책을 앞장서 추진했던 정치인에 대한 보답이 ‘범죄자 낙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야당 정치의 버팀목으로서 굳건하게 그의 정치적 행보를 이어왔다. ‘3김의 정치 9단급’은 아니어도, 지금 정치판에서 정치 8단 정도 경지에 올랐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박지원 말고 과연 누가 있을까?
문재인의 표구걸을 위한 ‘전략적 발언’은 면죄부를 받고, 탄핵새를 울게 했던 박지원의 탁월한 정치 전략은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박근혜를 대한민국에서 도려내는 일과 전혀 별개의 차원으로, 이 블랙코미디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할 정치적, 사회적 병리현상일 것이다. <저작권자 ⓒ 신문고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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