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법리 투쟁과 문재인의 야권 통합론

김양수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1/18 [15:10]

박근혜의 법리 투쟁과 문재인의 야권 통합론

김양수 칼럼니스트 | 입력 : 2017/01/18 [15:10]
 

 

[신문고 뉴스] 김양수 칼럼니스트 =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다. 이는 끝내 스스로 내려오길 거부한 대통령, 알량한 대통령 자리만이 유일무이한 방패막이인 범죄피의자 박근혜를 자리에서 끌어내기 위한 헌법적 절차이다.

 

이 헌법재판은 그런데 세간의 예상과 달리 헌재가 심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평가된되. 하지만 성미 급한 내가 보기엔 시계 바늘을 쳐다보는 것처럼 탄핵 재판의 진행은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진다. 지켜보자니 짜증나고 울화통 터지는 일이지만 법치주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을 단죄할 수 있는 가장 온건하고 합리적인 방법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박근혜의 탄핵은 인용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가능성의 명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온통 썩어 문드러진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우리나라가 기아나 전염병, 인종, 종교 분쟁, 내전 따위로 수십 수백만 국민이 죽어나가는 후진국들 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구석이 있는, 최소한의 원칙과 상식으로 돌아가는 사회라면 박근혜의 탄핵은 인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탄핵의 당사자 박근혜와 그녀를 추종하는 무리들의 생각은 전혀 다른 듯하다. 새해 첫날부터 청와대에서 기자들 모아놓고 ‘유체이탈 자기변명 굿판’을 벌인 박근혜의 모습과 탄핵 심리에서 박근혜의 법적 대리인이라는 인간들이 늘어놓는 ‘반론 개그’를 지켜보면 그들이 인식하는 세상은 1970년대 유신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겠다는 측은한 심정마저 들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러한 행위를 ‘치열한 법리투쟁’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법리(法理)의 사전적 의미는 ‘법률의 원리와 논리’이다. 그렇다면 법리투쟁은 말 그대로 법의 논리 체계에 따라 전개되어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와 대리인들이 탄핵의 부당성을 주장하면 쏟아내는 문장들 중 과연 논리라고 부를 만한 구석이 티끌만큼이라도 존재하기는 할까?

 

박근혜의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해 박근혜 대리인 측이 내놓은 소명자료를 접한 헌법재판관의 반응을 보면 그들이 전개하는 법리투쟁의 수준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부족하니 다시 보충하여 다시 제출하라.’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내로라하는 법률가들이 치열한 법리투쟁의 무기라며 들이댄 소명자료가 한마디로 기초적 사실마저 기술하지 못해 논리의 적절성을 따지기조차 어려운 휴지조각이라는 거다. 솔직히 하기는 싫은데 억지춘향 격으로 잡범의 변호를 맡은 국선변호사도 이것보다는 조금 수준 높은 반박 자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탄핵 위기에 몰린 대통령의 법리투쟁을 대신하겠다며 탄핵 심판에 등장한 어느 변호사는 도대체 저 인간이 법정에 선 법률가인지, 광기 가득 찬 수구들의 놀이터 한가운데서 극우파시즘을 선동하는 히틀러의 후예인지 정체성마저 의심되는 장광설을 늘어놓기도 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이러는 걸까?

 

그들의 ‘동기’에 대한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의 분석은 거의 한가지로 모아진다. 그들은 법리투쟁의 가면을 쓰고 진영논리로 탄핵 국면을 재편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쉽게 말해 ‘박근혜는 절대 선이다’라는 명제로 팬덤 지지자들을 선동, 규합하여 세력을 부풀리면 법리적 타당성에 상관없이, 대한민국을 마지막으로 지탱하는 원칙과 상식을 송두리째 무력화시키며 탄핵 기각을 이끌어 내고, 그 결과를 동력 삼아 ‘유신의 재림’까지 노려보겠다는 것이 그들이 품은 야욕의 실체라는 의미다.

 

진영논리는 말 그대로 ‘진영’이 논리의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뜻이다. 진영논리가 작동하면 보편적인 상식과 원칙이 개입할 여지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즉, 박근혜의 탄핵이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 판단도, 박근혜를 대한민국 대통령 직위에서 격리 시키는 일이 대한민국 공동체의 안녕과 이익을 위해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의 손해득실도 너는 박근혜 편이냐? 아니냐? 라는 이분법적 진영논리 앞에서는 그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게 된다는 거다.

 

박근혜는 진영논리로 대통령직을 쟁취한 인물이다. 여전히 정부의 선거개입과 개표부정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패자인 문재인도 인정한 2012년 대선의 결과는 대략 51%대 49%로 박근혜가 승리했다. 이분법적 양자 구도. 이는 친노세력이 패권을 차지한 야권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동의한 선거구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명박의 실정(失政)과 독재자의 딸이라는 박근혜의 치명적 약점 등 야권에게 유리한 호재가 넘쳐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분법적 양자 구도에서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이기지 못했었다.

박근혜의 지지율이 4% 바닥이라고 해도, 그녀에게 등을 돌린 47%의 유권자들은 ‘촛불’의 이성과 순수성과 진정성이 아닌 이분법적 진영논리가 정치적 선택을 지배하는 구조로 복원된다면, 언제든지 박근혜에게로 결집될 수 있는 유권자들이다.

 

그래서 박근혜는 법리투쟁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법률대리인과 최순실 부역자들을 앞세워 진영논리에 호소하는 선전 선동을 집요하게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뒤흔든 이후부터 문재인은 여야를 통틀어 부동의 지지율 1위를 질주하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문재인은 탄핵국면에서 두드러진 정치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광장의 정치’와 ‘대의 민주주의 의회 정치’는 다르다는 논리로 촛불집회에 가장 나중에 합류한 정치인 중 하나였고, 촛불의 민심이 박근혜의 즉각 퇴진과 구속을 외칠 때 자신이 박근혜의 명예로운 퇴진을 보장하겠다는 오만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었다. 

 

문재인의 이러한 소극적 행동은 사이다 발언으로 상징되는 이재명의 일관성 있고 선명성 높은 박근혜 처벌 주장과 초기부터 거리로 나서 대중과 직접 살을 맞대면서 서명운동을 전개했던 안철수의 행보와 확연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은 현재까지도 지지도에서 이들을 압도하는 기현상을 보여준다. 도대체 문재인 선전의 이유는 무엇일까?

 

문재인을 보면 어렵지 않게 답이 나온다. 문재인의 정치적 아젠다는‘야권통합으로 정권교체’이다. 이는 상당히 익숙한, 아니, 익숙하다 못해 지겹게 느껴지는 정치구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친노세력이 야권의 패권을 차지한 이후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바로 그 구호’니까.

 

그러나 문제는 친노 세력이 ‘야권통합으로 정권교체’라는 아젠다를 선거판에 들고 나온 모든 선거에서 친노 세력은 단 한 번도 유의미한 정치적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다.

 

‘야권통합으로 정권교체’라는 문재인의 정치적 레토릭은 쉽게 말해 야권도 진영논리로 박근혜 수구세력에게 맞서야 한다는 선동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물론 야권통합은 진보진영 승리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야권통합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야권통합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가’ 이다.

 

만약 김대중급 정치인이 야권에 등장한다면, 야권은 국정원이 벌떼처럼 덤벼들어 방해공작을 해도 저절로 하나로 뭉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재인, 이재명, 안철수, 박원순, 안희정 따위 정치인들에게 야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리더쉽과 카리스마로 야권을 하나로 모으라고 기대하는 것은 구구단도 못 외우는 유치원생에게 미적분 문제를 풀어내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문재인은 순리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정치적 목표인 야권통합만이 정권교체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제3세력, 혹은 제3지대를 거론하는 반문 세력을 인위적 정치공학으로 야권분열을 획책하여 수구보수를 이롭게 하는 세작 같은 존재들이라는 원색적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백보를 양보하여 문재인의 주장이 옳다고 치자.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야권통합이 단 한 번이라도 물 흐르듯 순리 있는 과정을 통해 열매를 맺어 국민들에게 감동적인 정치이벤트로 어필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을까? 2012년 총선의 야권 연대 과정은 통진당 공천 사태에서 보듯 막장 드라마 그 자체였고, 이어지는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의 양보 또한 야권의 패권을 쥐고 있는 문재인 진영이 정치초년생 안철수를 집요하게 압박하여 반강제적으로 쥐어짜낸 결과에 불과했다.

 

반면 '결국에는' 야권을 분열시키고야 만 뒤 친노 세력이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 1당을 탈환한 2016년 총선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의당의 등장으로 야권이 분열된 상태에서 치른 선거였다. 그리고 비로소 그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을 이겼고, '야권'은 압승했다. '야권통합 대동단결'로 승리하지 못했던 선거에 비해 '야권분열 백전백패'의 아우성이었음에도 그 선거는 이겼다.

 

내가 주장하는 요지는 만약 제3지대 ‘ 빅텐트론’이나 반문 연대 등의 정치행위가 정파의 이익을 위한 인위적 정치공학이라고 한다면, 친노 세력이 주장하는 야권 통합 역시 정치공학이란 것이다.

 

야권통합이란 순리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정치세력들을 이분법적 진영논리로 굴복시켜 선거 승리나 정권교체라는 목표와 무관하게 친노 세력이 확보한 야권의 정치적 패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위선의 정치공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인위적으로 진영을 둘로 갈라 적 아니면 아군 심라를 주입시키는 현재의 친박 수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정치공학이라는 거다.

 

한자리에 백만 이상의 사람이 모였던 정치적 사건은 2016년 광화문의 촛불이 처음은 아니었다. 경찰 수산으로도 백만을 넘겼을 정치 이벤트는 1987년 대선 당시 여의도 광장에서 벌어졌었다. 당시 대선에 출마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모두 한겨울 백만 군중을 여의도에 ‘집합’시켜 지지세를 과시했었다.

 

1987년 여의도 광장의 모습은 2016년 광화문과 판이하게 달랐다. 백만 군중 모두가 연단에 선 대선 후보의 목소리와 손짓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구호를 외쳤다. 어느 정도는 자발적으로, 어느 정도는 동원된 청중들이 좋게 말해서 통일된, 나쁘게 말해서 획일화된 분위기의 집회를 치렀었다.

 

하지만 똑같이 100만 이상이 모였던 2016년 촛불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이다. 누군가는 주최 측의 행사에 참여하고, 누군가는 즉석에서 공연을 하거나 퍼포먼스를 시연하고, 누군가는 그저 거리를 돌아다니고....... .  그렇게 유쾌하게 축제처럼 집회를 치렀음에도 ‘탄핵과 하야’라는 분명하고도 강력한 메시지는 무소불위 안하무인 권력을 남용하던 박근혜에게 회복 불가능한 치명타를 먹였다.

 

칼은 붓을 이기지 못하고, 강요된 획일성은 자발적인 다양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법리투쟁으로, 문재인은 야권통합으로 이분법적 진영논리를 집요하게 강요하고 선동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탐욕을 위해 지지자들을 맹목과 맹신의 제물로 삼으려 한다.

 

어쩌면 기적적으로 박근혜는 재기할지도 모르고, 아마도 문재인은 야권의 패권을 움켜쥔 덕분에 어부지리로 대통령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끝내 진영논리라는 마약 중독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대한민국 역사에 영원한 반동이자 죄인으로 각인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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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차려 2017/01/20 [16:54] 수정 | 삭제
  • 정말 가증스런 것들은 닦치고 문재인을 빨면서 진보 언론을 자칭하는 한걸레, 개마이, 갱향 등 문재인 홍보 찌라시 카르텔이다. 일명 한,경,오 찌라시들은 야권연합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 97년(?)이명박과 정동영의 대선때 문재인 홍보 찌라시들은 화장지 장수 황옥현(?)을 시대의 대안 새력이라며 야권 연합을 철저하게 훼방 놓은 찌라시들 아닌가? 문재인 패거리들과 야권 연합은 하늘이 두쪽나도 응해서는 안된다.
  • 한국기행 2017/01/18 [19:11] 수정 | 삭제
  • 다른 야당은 물론 비박조차 탄핵에만 몰두하던 시기에 친문 노영민은 대놓고 선거운동을 하며, 문재인의 대선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누가 이런 전략을 생각하겠습니까? 역시 문재인은 다릅니다. 현대판 인조대왕인 노무현의 2인자 답네요.^^
  • 반문반박 2017/01/18 [16:49] 수정 | 삭제
  • 안철수와 호남세력이 나갈 때, 문재인은 대체 무슨 노력을 했었나?

    문빠들이 지난 총선 이후 호남과 국민의당에 저주에 가까운 폭언할 때, 문재인은 왜 가만히 있었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문재인의 정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