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철학자 (The Philosopher with Silver Hair)

유호근(예종) | 기사입력 2025/11/05 [17:12]

백발의 철학자 (The Philosopher with Silver Hair)

유호근(예종) | 입력 : 2025/11/05 [17:12]

 

 

거울 앞에 서니

 낯선 노인이 나를 바라본다.

 그의 눈빛 어딘가에

 아버지의 그림자가 묻어 있다.

 

나는 한평생

 마음의 나이를 잃어버린 채

 사십과 오십의 언덕에

 영원을 새기며 살았다.

 세월은

 손끝의 모래처럼 스러졌는데

 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머리칼 사이로 흰 파도가 번졌다.

 시간이 나를 흘러가며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이제 건강은 바람처럼 들고 나며,

 몸은 계절의 속도를 따라가려 애쓴다.

 문득 문득,

 멀리서 들리던 이름들이 사라진다.

 그들은 하늘의 언덕으로 걸어가고,

 남은 나는,

 침묵의 철학자가 되어간다.

 

그래도 아침마다

 걸음을 딛는다.

 새벽의 공기 속에서

 심장은 아직도 시를 쓴다.

 걸음마다 생각이 피어나고,

 땀방울마다 생이 반짝인다.

 

이 늦은 시절의 평화 속에서

 나는 알았다.

 늙는다는 것은

 세상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일임을.

 침묵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이 들린다.

 그분은 오늘도

 내 백발 위에 빛을 놓으신다.

 

 

▪︎ The Philosopher with Silver Hair

 

 Poem by Ho Geun Yoo (Yejong)

 

 

Before the mirror,

 a stranger stares back—

 his gaze carrying

 a shadow of my father.

 

All my life

 I have mistaken myself

 for the man in his forties,

 engraving eternity

 on the hill of midlife.

 Yet time slipped

 like sand between my fingers,

 and still, I stood the same.

 

One morning,

 white waves crept through my hair—

 time calling my name

 in a quiet voice.

 

Now my health drifts

 like the wind between days,

 and old friends fade

 into heaven’s horizon.

 Their absence leaves

 a hollow echo,

 and I become a philosopher

 of silence and dawn.

 

Still, I walk.

 Two hours each morning,

 five days a week—

 my heart keeps its rhythm,

 writing poems in motion.

 Each step a thought,

 each breath a prayer.

 

In this new world of aging,

 I have learned—

 to grow old

 is to love deeper,

 to listen longer,

 to find God

 in the quiet light

 resting on silver hair.

 

 

1. 시 해설 (Poetic Commentary)

 

이 시는 ‘나이듦’이라는 필연적 현상을 두려움이 아닌 철학적 성찰과 은총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시적 화자는 어느 날 거울 속 낯선 얼굴을 통해 ‘시간의 자화상’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이는 단순한 노화의 묘사가 아니라, 세대의 연속성과 존재의 깊이를 사유하는 장면이다.

 

 “세월은 손끝의 모래처럼 스러졌는데 / 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 구절은 체스와프 미워시나 루이스 글릭의 작품에서 보이는 시간과 존재의 간극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간극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는 “새벽의 공기 속에서 심장은 아직도 시를 쓴다”는 고백을 통해,

 노년에도 여전히 창조와 생의 의미를 품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증언한다.

 

 결국 “하나님의 숨결이 들린다 / 내 백발 위에 빛을 놓으신다”는 마무리는

 시간의 쇠락이 아니라 영적 숙성(Spiritual Maturity)으로 나아가는 빛의 결말이다.

 그리하여 이 시는 “늙음의 철학”이자 “영혼의 찬가”로 읽힌다.

 

2. 시인의 노트 (Poet’s Note)

 

젊은 날엔 나이를 잊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시간의 손길에 감사한다.

 백발이란 흰 눈처럼 쌓인 세월의 증언이요,

 주름은 삶의 지도를 새긴 흔적이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걸음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그분의 빛이 내 머리 위에 머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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