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고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근 10개월 여를 끌던 윤석열 등 12.3내란사건 피고인들의 1심 결심공판이 끝났다. 그리고 특검은 이들 '내란사건' 주모자인 우두머리 윤석열 피고인에게 사형, 내란주요임무 종사자인 김용현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그러나 이같은 특검의 구형이 나온 뒤 윤석열 피고인은 약 40분에 걸친 최후진술을 통해 "단 몇시간 계엄이라 괜찮다"는 논리를 들어 자신은 '내란범'이 아님을 설파했다.
이날 나온 윤석열의 최후진술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나는 국민을 깨우려고 계엄을 했고, 폭동도 없었으며, 그러니 내란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논리가 법과 헌정의 문법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점이다. ‘의도’로 ‘결과’를 지우고, ‘짧은 시간’으로 ‘권력 남용’을 상쇄하고, ‘총알이 없었다’는 주장으로 ‘헌정 질서 침해’를 축소한다. 내란의 핵심은 “얼마나 오래 했느냐”가 아니라 헌정기관을 군·경으로 압박하고 기능을 제약하려 했느냐에 있다. 그의 주장은 바로 거기서 무너진다.
“몇 시간”이라는 변명, 위헌·위법은 시간으로 면죄되지 않는다
윤석열 피고인은 “불과 몇 시간의 계엄을 내란으로 몰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헌정 파괴는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권력의 방향으로 판단된다.
국회라는 헌법기관을 대상으로 군 병력을 투입하고, 국가 기능을 ‘대국민 메시지’라는 명분으로 강제 조정하려 했다면,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금기를 건드린 것이다. “2시간 만에 끝났으니 괜찮다”는 논리는 강도질이 5분이면 범죄가 덜하냐는 궤변과 다르지 않다.
“총알 없는 빈총”의 프레임도 문제다. 폭력의 유무가 아니라 ‘위협의 구조’가 문제다
그는 “총알 없는 빈총을 들고 하는 내란을 봤냐”고 말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공권력의 가장 큰 무기는 총알이 아니라 명령 체계와 국가 폭력의 가능성이다. 병력이 무장했는지, 실탄이 있었는지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 무장한 군인이 총을 들고 탄창을 찬 모습으로 있다면 일반인은 누구라도 그 탄창 안에 실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왜 국회에 군이 갔는가? 왜 선관위에 군이 갔는가? ‘빈총’은 ‘무해함’이 아니라 ‘위협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실탄이 없었다’는 주장은 계엄의 본질적 위헌성을 가릴 수 없다. 더구나 그동안 재판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실탄을 휴대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결국 윤석열 피고인은 이 부분에서도 자신의 주장만을 되풀이 한 것이다.
“국민을 깨우기 위한 계엄”이라고? 계엄을 ‘정치 캠페인’으로 전락시키는가?
그의 핵심 논거는 “국민에게 알리고 호소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스스로 계엄의 요건을 허문다.
계엄은 “국민 계몽”을 위한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다. 그 스스로가 주장한대로 헌법이 대통령에게 허용한 '계엄'과 같은 '국가긴급권'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사용해야 하는 한정된 예외적 수단이다.
국회와 대립이 심하고 국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주권자를 깨우기 위해” 군을 투입했다면, 그것은 국가긴급권이 아니라 권력자의 정치적 수단화다. 따라서 그의 진술은 계엄의 ‘정당성’을 입증하기는커녕, 계엄을 선전·선동의 도구로 썼다는 자백에 가깝다.
“국회는 방해 안 했다”는 주장과, ‘병력 투입’ 사실의 모순은 또 어떤가?
윤석열 피고인은 “국회 의사일정을 방해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국회에 특전사·수방사 병력이 들어갔다고 상세히 설명한다.
여기서 논리적 균열이 생긴다. 국회의 자유로운 기능은 “결과적으로 표결이 됐으니 방해가 없었다”로 판단하지 않는다. 의결방해를 위해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한 사건으로 기소된 다수의 국회의원들은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들 의원들의 의결 방해에도 국회는 법안을 의결했지만 법원은 방해 시도와 위협 자체가 헌정기관의 기능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본 것이다.
윤석열 피고인은 군투입에 대해 “질서 유지”라 했지만, 국회 질서 유지는 원칙적으로 국회 자체 경비 및 경찰 체계로 가능한 영역이다. 그럼에도 군을 투입했다면, 그 행위는 이미 국회 위에 군을 올려놓는 발상을 드러낸다.
선관위 군투입을 “보안 점검”이라고 주장한 것도 계엄법 해석을 악용한 위험한 확대다.
선관위의 군 투입을 “계엄법 제7조에 따른 행정·사법 사무 관장 권한”이라 포장하지만, 선관위는 선거의 독립성을 위해 존재하는 헌법기관급 독립기구다. 보안 점검이 필요했다면 통상 절차(감사, 국정원 협조, 합동 점검, 국회 보고)를 밟을 수 있었다.
그런데 군을 동원해 “서버 사진을 찍고 나왔다”는 진술은, 오히려 핵심을 말해준다. 실효적 점검이 목적이 아니라 ‘장악의 제스처’가 목적이었을 가능성이다. 실제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말은 ‘정당성’이 아니라 ‘무리함’을 증명한다.
“국가긴급권은 대통령 전속” 주장 또한 헌법의 견제 장치를 지운다
윤석열 피고인은 국가긴급권 판단이 “대통령에게 전속”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헌법은 대통령을 ‘전권자’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존재한다.
국회의 사후 통제만 받는다고 해서, 그 이전 단계의 요건·절차 위반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전 세계 헌정사에 형사법정에 선 전례가 없다”는 주장은, 헌정질서 파괴 가능성을 두고 책임을 회피하는 수사일 뿐이다. 전례 부재는 면책 사유가 아니다.
반대파들에 대해 “이리떼·어둠의 세력”이란 주장 또한 법정언어가 아닌 선동의 언어다.
최후진술의 상당 부분은 ‘반국가세력’ ‘이리떼’ ‘숙청’ 같은 단어로 채워진다. 이는 법정에서 사실과 법리로 다퉈야 할 사건을 정치적 전쟁 서사로 바꾸려는 시도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서사가 지지층에게 “사법 판단은 음모”라는 인식을 심어 판결 불복의 정서를 자극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권력자가 법적 책임을 ‘정치 탄압’으로 둔갑시키며 제도를 불신하게 만들 때다.
윤 피고인은 마지막에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는 내란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그 문장은 법이 아니라 희망이고, 논증이 아니라 선언이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칼을 쥐여준 것이 아니라, 칼의 칼집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 칼집을 빼서 국회와 독립기관을 향해 겨누었다면, 아무리 짧았다고 해도, 아무리 실탄이 없었다고 해도, 아무리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해도, 민주주의는 그것을 ‘메시지’로 보지 않는다. 헌정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본다.
바로 그 지점이, 윤석열 최후진술의 가장 큰 허점이다. 그는 스스로를 “헌법 수호자”라고 주장했지만, 진술 전체는 헌법이 가장 경계하는 것, '권력이 예외를 핑계로 상식을 압도하는 순간'을 되풀이하고 있다.
#윤석열 #최후진술 #비상계엄 #내란혐의 #헌정질서 #국가긴급권 #국회 #선관위 #법치주의 #민주주의 <저작권자 ⓒ 신문고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