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본질은 형식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판결이었다.
한덕수에 대한 중형 선고는 단순한 개인 처벌이 아니다. 그것은 ‘십이·삼 사태’를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으로 확정한 사법적 선언이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한덕수에게 법원은 ‘십이·삼 사태’가 형법상 내란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정하며 중형을 선고했다. 이는 한 개인의 범죄를 넘어, 해당 사태의 성격을 헌정질서 파괴 범죄로 규정한 판단이다.
한덕수에게 중형이 선고됐다는 사실은 단순한 처벌의 문제가 아니다. 사법부가 ‘십이·삼 사태’를 국가 헌정질서를 흔든 내란 범주의 범죄로 공식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정점에 있던 윤석열이 중형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헌법이 말하는 내란의 핵심은 단 하나다.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국헌문란이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구성된 국가기관의 권능을 무력화하거나, 국민이 위임한 주권 행사를 폭력과 강압으로 왜곡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시 말해, 선출되지 않은 힘으로 헌정질서를 뒤집으려는 시도다. 이것이 바로 내란이다.
한덕수에게 중형이 선고됐다는 것은 재판부가 이미 다음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십이·삼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며, 단순한 직무상 과오도 아니고, 정치적 해프닝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릴 목적을 가진 국가 권력의 범죄였다는 사실을 법원이 확인한 셈이다.
또한 십이·삼 사태는 국가 권력의 정점에서 시작된 결정과 지시, 그리고 이를 실행한 국가기관의 조직적 동원이 있었음을 전제로 한다. 특정 정치적 결과를 관철하기 위해 헌법이 보장한 절차와 권한을 우회하고, 무력과 강압을 배경으로 국정 질서를 흔들었다면 그 목적은 이미 분명하다. 바로 국헌문란이다.
윤석열은 여전히 “정치적 판단이었다”, “질서 유지 차원이었다”, “계엄령이 아닌 계몽령이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을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헌법을 지킨다는 논리가 과연 가능한가.
국가기관의 정상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국민의 주권 행사를 위협하며, 법 위에 군림하는 시도가 어떻게 통치행위가 될 수 있는가.
형법이 내란죄에서 ‘목적’을 가장 먼저 묻는 이유는 분명하다. 권력자는 언제나 명분을 만든다. 질서, 안정, 국가안보. 그러나 그 명분 뒤에서 벌어진 일이 헌정질서의 파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정치가 아니라 범죄다.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십이·삼 비상계엄을 단순 사건이 아닌 헌정질서에 대한 공격으로 보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다. 그렇다면 이 국헌문란의 목적은 어디에서 형성됐는가. 누가 기획했고, 누가 승인했고, 누가 최종 책임자인가.
이미 하위 실행선에서는 중형이 선고됐다. 그렇다면 어느 경우든 윤석열은 이 책임에서 벗어날 출구가 없다.
내란죄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은 언제나 가장 위에 있던 자에게 있다. 직접 명령하지 않았더라도 알고도 막지 않았다면 책임은 면할 수 없다. 보고받고 묵인했다면, 그것은 실행과 다르지 않다. 내란의 우두머리는 반드시 연설대 위에서 명령을 외친 사람일 필요는 없다.
국가권력을 쥔 자의 승인 자체가 곧 명령이 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에 남은 길은 명확하다.
십이·삼을 국헌문란 목적의 행위로 보았다면, 그것은 곧 내란이다. 이를 인정하면서도 최고 책임자인 윤석열이 중형을 비껴간다면, 법은 스스로의 논리를 무너뜨리게 된다. 아랫사람은 처벌하고 윗사람은 보호하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국헌문란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단죄될 때 비로소 종결된다.
십이·삼 사태를 내란으로 부르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떤 권력도 헌법 위에 서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헌법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역사로 배워왔다.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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