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장 추모칼럼] 민주주의 역사의 큰 스승, 이해찬을 보내며

임두만 편집위원장 | 기사입력 2026/01/26 [23:32]

[편집위원장 추모칼럼] 민주주의 역사의 큰 스승, 이해찬을 보내며

임두만 편집위원장 | 입력 : 2026/01/26 [23:32]

[신문고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대한민국은 오늘 민주주의 역사의 한 축을 떠나보냈다. 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은 한 정치인의 죽음을 넘어, 한 시대의 마침표처럼 다가온다. 비통함을 넘어 허전함이 큰 이유다.

 

그는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고, 민주주의가 흔들릴 때마다 마지막으로 기대게 되는 버팀목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이해찬은 일찍부터 시대의 격랑 한복판에 섰다.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며 그는 ‘민주주의는 대가 없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재야의 투쟁은 그의 정치적 원형이었고, 그때 다져진 원칙과 소신은 평생 그의 정치적 나침반이 됐다. 그 정치적 원형을 갖고 김대중이 창당한 평화민주당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 1988년 36세의 나이로 15대 총선에 출마한 이해찬 후보의 벽보     

 

이해찬의 정치사는 ‘전환’의 연속이었다. 재야에서 제도권으로, 국회에서 내각으로, 그리고 당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정마다 그는 늘 공적 소명의식 앞에 자신을 놓았다. 7선 국회의원,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 특히 그는 ‘첫 운동권 출신 국무총리’로서 민주화 세대가 국가 운영의 전면에 등장했음을 상징했다.

 

교육부 장관 시절 그는 교육을 단순한 제도가 아닌 국가의 미래로 바라봤고, 국무총리 시절에는 개혁과 안정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동시에 짊어졌다.

 

참여정부 내내 그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가장 냉정하게 보좌한 참모였다.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그 바탕에는 언제나 국가와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이해찬이라는 이름이 민주진영에서 특별한 무게를 갖는 이유는 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은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주 대통령들이 그를 신뢰했고, 동시에 어려워했다. 그는 권력에 아부하지 않았고, 인기보다 원칙을 택했다. 그래서 그는 네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세력 전체의 흔들리지 않는 상징이자 자존심이었다.

 

특히 중앙 정치에서 상대적으로 기반이 약했던 이재명 대통령에게 그는 정치적 멘토였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국가와 당의 미래를 고민하며, 마지막까지 ‘설계자’이자 ‘구도자’로 남았다. 지역균형발전, 평화와 통일, 제도 개혁이라는 그의 문제의식은 시대를 앞서 있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0년 당대표 임기를 마치며 남긴 “저는 민주당원임이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말은 그의 정치 인생을 가장 잘 요약한다. 이해찬에게 정당은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집단적 약속이었다. 어려울 때마다 그는 당을 지켰고, 당이 흔들릴 때마다 그는 다시 기둥을 세웠다.

 

마지막까지 공적 소명을 놓지 않은 채, 공무 일정 중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은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러나 강물은 굽이쳐도 결국 바다로 흐르듯, 그가 평생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와 평화, 균형발전을 향한 여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이해찬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

 

민주주의의 큰 별이 졌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다음 세대의 길을 비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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