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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뉴스] 김영남 기자 = 광주의 초여름 바람이 천천히 골목을 스치던 지난 27일, 대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의 발걸음이 고려인마을에 닿았다. 낯설지만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시간의 흔적을 따라 걷는 그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경건함이 함께 어렸다.
학생들은 홍범도공원과 고려인문화관, 문빅토르미술관, 그리고 고려인마을 특화거리를 차례로 지나며 고려인 선조들의 삶을 가슴 깊이 마주했다. 연해주로의 이주, 스탈린의 강제이주, 조국 독립을 향한 처절한 투쟁. 교과서 속 활자로만 존재하던 역사는 이날 골목의 공기와 유물의 숨결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고려인문화관 전시실에 머문 학생들의 눈빛은 오래도록 흔들렸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생을 바친 고려인 독립운동가들의 기록 앞에서, 아이들은 말없이 시간을 삼켰다. 누군가는 조용히 메모를 남겼고, 또 누군가는 한참 동안 전시물 앞을 떠나지 못했다.
이어진 중앙아시아 음식 체험과 생활문화 프로그램은 고려인동포들의 현재를 이해하는 또 다른 창이 되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살아온 공동체의 삶은 학생들에게 다문화와 공존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일깨웠다.
무엇보다 고려인마을 청소년들과의 만남은 특별했다.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소개하며 웃음을 나누는 순간, 국적과 경계를 넘어선 따뜻한 연대가 피어났다. 한 학생은 “책으로만 보던 역사를 직접 만나니 마음이 더 깊게 움직였다”며 “고려인동포들이 지켜온 역사와 문화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고려인마을은 전국 학교와 기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역사마을 1번지’로 자리 잡고 있다. 오는 6월에도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과 공공기관, 사회단체의 탐방 예약이 이어지며 사실상 방문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를 넘어 해외 연구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미국, 유럽 등 각국의 교수진과 연구자들이 고려인문화관의 역사유물과 공동체 운영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광주를 찾고 있다. 고려인마을은 이제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디아스포라의 기억과 인류 공동체의 가치를 품은 국제적 역사·문화 연구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다.
홈페이지 방문자 수 역시 이를 증명한다. 하루 평균 수십만 명이 고려인마을의 역사자료와 영상 콘텐츠를 찾고 있으며, 지난 20일에는 하루 방문객 수가 110만 명에 달했다. 잊혀졌던 고려인들의 역사가 이제 세계인의 관심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셈이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이곳은 단순히 과거를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역사와 사람, 교육과 문화가 함께 살아 숨 쉬는 마을”이라며 “앞으로도 청소년과 시민, 국내외 연구자들이 고려인 선조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며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시간은 흘렀지만, 고려인들의 아픈 역사와 꺾이지 않은 삶은 여전히 광주의 골목마다 숨 쉬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오늘의 청소년들은 과거를 배우며 미래의 연대를 천천히 써 내려가고 있다. <저작권자 ⓒ 신문고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영남기자 nandagree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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