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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뉴스] 조찬옥 칼럼 = 대한민국 경제는 지금 반도체가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지능(AI) 혁명과 데이터센터 확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증가에 힘입어 우리 반도체 산업은 세계 시장을 선도하며 수출과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수출의 버팀목이자 무역수지 개선과 경제 회복을 견인하는 대표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호황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은행은 최근 우리 경제가 반도체 중심의 성장 구조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장기적으로 경제 체질이 약화될 수 있다며 이른바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 가능성을 경고했다. 특정 산업의 호황이 오히려 국가 경제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AI용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와 무역수지 흑자 확대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반도체는 분명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다.
그러나 경제가 하나의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는 언제든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산업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흥망성쇠를 반복하지만 국가 경제는 특정 산업 하나만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없다.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꾸준히 육성하고 산업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네덜란드 병은 1959년 네덜란드가 북해에서 대규모 천연가스를 발견한 이후 나타난 경제 현상에서 유래한 경제학 용어다. 천연가스 수출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자본과 인력이 에너지 산업에 집중되면서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됐고, 결국 경제 전반의 균형이 무너지는 부작용을 겪었다.
이후 호주를 비롯한 자원 부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특정 산업이 높은 수익을 올리면서 인재와 투자 자금이 한곳으로 집중되고, 다른 산업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잃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네덜란드 병'이라고 부른다.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 역시 이와 유사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산업이 지속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록하면 우수한 인재들은 반도체 기업으로 몰리고 금융권과 투자자들의 자금 역시 반도체 산업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중소 제조업과 신성장 산업은 인력 확보와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며 산업 생태계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로봇, 우주항공, 친환경 에너지 등 미래 성장산업에 대한 투자가 위축된다면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도 점차 약화될 수 있다. 다양한 산업이 함께 성장하지 못하면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국가 경제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커진다.
반도체 산업은 본질적으로 경기 변동성이 큰 산업이다. 세계 경기 둔화와 기술 변화, 경쟁국의 추격, 공급 과잉 등이 동시에 발생하면 수출과 기업 실적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 경제 전체가 반도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면 국가 경제 역시 그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은행의 경고는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산업을 함께 육성해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책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는 반도체 산업 지원과 함께 바이오, AI, 소프트웨어, 콘텐츠, 미래 모빌리티, 우주항공, 친환경 산업 등에 대한 연구개발(R&D)과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기업 역시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술 혁신과 사업 다각화에 적극 나서야 하며, 대학과 연구기관도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산업을 뒷받침할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건강한 경제는 하나의 산업이 독주하는 구조가 아니라 여러 산업이 균형 있게 성장하는 생태계에서 만들어진다. 산업의 다양성이 확보될 때 국가 경쟁력도 높아지고 예상치 못한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이번 경고는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정책 제언이다. 반도체는 대한민국의 핵심 산업이지만 '반도체만 잘되면 된다'는 사고는 장기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도체 최강국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꾸준히 육성하는 균형 잡힌 산업 정책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경제가 네덜란드 병의 함정을 피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해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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