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찬옥 칼럼] 코리아 패싱 넘어 ‘코리아 퍼니싱(Korea Punishing)’ 경고음트럼프·김정은 담판 앞둔 한국의 미래 전략은?...북미 직거래 재개 가능성…한국은 관전자가 될 것인가[신문고뉴스] 조찬옥 칼럼 = 한반도 정세가 다시 중대한 변곡점으로 접어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새로운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다시 거론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지형도 빠르게 움직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빅터 차는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받고 평화협정이나 군축 문제를 논의하는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특히 북한 입장에서는 한국을 거치지 않고 미국과 직접 거래하는 방식이 상당한 전략적 매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다시 공개하면서 북미 접촉 재개 가능성을 둘러싼 관측도 커지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역시 이러한 움직임을 북미 간 친서 외교 재개의 신호일 가능성과 연결해 해석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과거 북미 정상회담이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었다면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훨씬 복잡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과거보다 고도화됐고 북러 군사협력 역시 강화되면서 동북아 안보구조 자체가 크게 달라졌다.
중국 역시 한반도 문제에서 자신의 전략적 영향력을 유지·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가 한국을 배제한 채 직접 담판에 들어간다면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이면서도 정작 핵심 협상에서는 밀려나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이를 단순한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을 넘어 ‘코리아 퍼니싱(Korea Punishing·한국 징벌)’의 위험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유다. 다만 코리아 퍼니싱은 미국이 의도적으로 한국을 징벌한다는 확정된 정책 개념이라기보다, 한국의 협상력이 약화될 경우 안보·경제·외교적 비용이 한국에 집중될 수 있다는 경고성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 퍼니싱을 막는 길은 감정이 아니라 ‘자강’이다
코리아 퍼니싱이라는 표현이 던지는 경고도 결국 여기에 있다. 한국이 미국과 북한 사이의 협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도 부족하며 북한과의 대화마저 끊겨 있다면 국제정세가 한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움직일 가능성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그때 발생하는 비용은 안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방위비와 주한미군 문제부터 대북제재, 경제제재, 공급망, 반도체, 에너지, 해상교통로, 대만해협 문제까지 한국의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뒤흔들 수 있는 변수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
따라서 ‘퍼니싱’을 막는 방법은 미국을 비판하는 것도, 중국에 기대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스스로 협상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레버리지’를 만드는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강력한 억지력을 확보하고, 외교적으로는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국 모두와 필요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어느 한 국가의 압박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공급망과 산업경쟁력을 구축해야 하며, 남북관계에서도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는 항상 열어둘 필요가 있다.
■ 하노이 ‘노딜’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비핵화와 제재 완화를 둘러싼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결렬됐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전략과 핵능력은 당시와 상당히 달라졌다. 북한은 핵무력을 국가안보의 핵심수단으로 규정하고 핵전력 고도화를 지속해왔다.
따라서 향후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면 과거와 같은 ‘완전한 비핵화’ 중심의 협상뿐 아니라 핵동결, 핵확산 방지, 군비통제, 위험감축 등 보다 현실적인 의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이 한국에는 가장 큰 전략적 위험 요인 가운데 하나다.
미국이 북한 핵무기를 단기간에 폐기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핵군축 또는 위험관리 방식으로 협상 방향을 전환할 경우, 한국은 가장 직접적인 안보 당사자이면서도 협상 결과를 받아들이는 ‘수용자’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이 추구하는 비핵화 목표와 미국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위험관리 전략 사이에 간극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미 협상이 시작된 뒤 대응할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한국의 안보이익과 협상 원칙을 분명하게 만들어 미국과 공유해야 한다.
■ 한국형 핵잠재력, 독자 핵무장과는 달라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핵심은 ‘독자 핵무장’과 ‘핵잠재력 확보’를 구분하는 데 있다. 한국이 당장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이탈하자는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막대한 외교·경제적 비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북한의 핵능력 앞에서 한국이 오로지 미국의 확장억제에만 의존하는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한국은 핵무기를 직접 보유하지 않으면서도 국가 생존에 필요한 전략적 선택지를 확대할 수 있는 잠재력과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핵추진잠수함과 핵연료, 원자력 협력 문제 역시 단순한 군사장비 또는 산업 협력의 차원을 넘어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특히 핵추진잠수함은 장기간 잠항 능력과 높은 생존성을 갖춘 해군 전략자산이라는 점에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뿐 아니라 주변 강대국의 해양전략 변화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목표는 독자 핵무장이라는 하나의 선택지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아니라 ▲한미 확장억제 강화 ▲한국의 재래식 전략전력 고도화 ▲핵추진잠수함 등 전략자산 확보 ▲민수 원자력 역량과 핵주기 관련 제도적 역량 확대 ▲필요할 경우 국가적 선택지를 유지할 수 있는 전략적 잠재력 확보라는 다층적인 전략이어야 한다.
■ ‘한국형 핵공유’ 논의도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국이 검토해야 할 또 하나의 축은 이른바 ‘한국형 핵공유’다. 나토식 핵공유 모델을 그대로 한반도에 적용하는 데는 현실적인 제약이 많지만 미국의 핵전략 운영과 관련해 한국의 참여와 협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안은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보다 실질적인 협의 구조로 발전시키고 미국의 핵전력 운용계획과 한국의 재래식 전력 운용을 더욱 긴밀하게 연계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핵억제력과 한국의 첨단 재래식 전력, 그리고 한국이 보유한 전략적 잠재력을 하나의 억제체계로 묶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핵우산을 일방적으로 제공받는 구조를 넘어 한반도 유사시 한국이 전략적 협의와 의사결정 과정에 보다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체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한국형 핵공유’의 한 방향이 될 수 있다.
■ 미국과 중국 사이, 전략적 헤징이 필요하다
한국 외교가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는 미중 전략경쟁이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는 방식으로는 급변하는 동북아 질서 속에서 지속 가능한 국익을 확보하기 어렵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축이라는 현실을 분명하게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은 한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자 북한과 한반도 문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다. 따라서 한국 외교는 ‘동맹’과 ‘협력’을 구분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안보는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하되 경제·외교·지역협력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전략적 헤징이 필요하다.
중국과의 관계를 한미동맹의 대체재로 볼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외교적 선택지와 공간을 넓히는 별도의 전략적 자산으로 관리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차이나 패싱’ 역시 피하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이 직접 대화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까지 약화된다면 한국의 외교적 공간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면서도 중국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건설적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외교력이 필요하다.
■ ‘4자 회담’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새로운 다자협상 틀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4자 회담을 그대로 복원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핵문제와 정전체제, 평화체제, 군비통제, 경제협력 등을 단계별로 나누면서 남북한을 중심에 놓고 미국과 중국이 참여하는 새로운 협상구조를 고민하자는 것이다.
한국이 여기서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한반도 문제의 ‘캐스팅보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의제 설정자’가 되어야 한다. 다른 국가들이 만든 협상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는 나라가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의제 자체를 제시하는 국가가 돼야 한다.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한국이 사전에 미국과 협상 의제를 조율하고 북한과의 소통채널을 복원하며 중국과 평화체제 논의를 병행한다면 한국이 협상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 남북경협도 안보전략의 일부로 봐야 한다
남북 경제협력 역시 단순한 경제정책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과 같은 과거의 협력 모델을 그대로 재개하는 것만으로 변화된 국제환경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향후에는 국제사회와 유엔의 대북제재 체제를 준수하면서도 북한 주민의 생활 개선과 한반도 긴장 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 인도적 협력, 보건·의료, 환경·재난 대응,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준비, 산림·수자원 공동관리 등 단계적인 협력사업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미대화가 재개될 경우 한국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경제협력의 구체적인 카드도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실질적인 이해당사자로 협상에 참여할 수 있다.
■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길
한반도 정세는 이제 과거와 같은 단순한 남북대결 구도로 설명하기 어렵다. 북한의 핵능력,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중국의 부상,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 일본의 안보 역할 확대가 복잡하게 맞물리면서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환경도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이처럼 복잡한 국제정세에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한쪽 진영에 서서 다른 진영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익을 중심에 놓고 필요한 모든 국가와 협상할 수 있는 힘과 전략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나는 것은 한국에 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북미가 대화를 시작한다면 한국은 그 대화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미국에는 한반도의 핵심 당사자인 한국의 안보이익이 협상에 반영되도록 요구하고, 북한에는 남북대화 복원과 군사적 긴장완화를 촉구해야 한다. 중국에는 한반도 평화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건설적인 역할을 요구하면서 대한민국 스스로 협상의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대한민국 자체의 힘과 선제적인 전략 능력이 있어야 한다. 결국 코리아 패싱을 막는 것은 외교적 구호가 아니다. 강한 동맹, 강한 국방, 강한 경제, 넓은 외교 공간, 살아 있는 남북대화 채널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 해답이다.
그때 비로소 한국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핵심 동맹국이면서 중국도 무시할 수 없는 경제·외교 파트너가 되고, 북한 역시 외면할 수 없는 한반도의 핵심 당사자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이 다른 국가의 협상 결과를 기다리는 나라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국가로 올라서야 하는 이유다.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만 바라보며 기다릴 시간이 아니다. 북미가 만나기 전에 한국이 먼저 전략을 세우고, 먼저 미국과 협의하고, 북한과의 대화채널을 복원하고, 중국과도 협상해야 한다.
한반도의 미래를 워싱턴과 평양의 두 정상이 결정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서울이 그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당사자로 나설 것인가. 지금 대한민국이 해야 할 선택은 분명하다.
‘코리아 패싱’을 걱정하는 나라에서 벗어나 누구도 대한민국을 빼놓고는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할 수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이 가야 할 전략적 자강과 전략적 자율성의 길이다.
(사)민주화추진협의회 사무총장 조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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