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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뉴스] 조찬옥 칼럼 = 대한민국이 거대한 미국의 압박 앞에 서 있다. 호르무즈 파병 문제가 불거진 데 이어 우크라이나에 한국산 천궁-Ⅱ를 판매하거나 제공해야 한다는 미국 내 요구까지 등장,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적 선택을 둘러싼 부담이 커지고 있다.
동시에 한미 간에는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핵연료 공급,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둘러싼 협상도 진행되고 있다. 과연 이 모든 현안이 각각 따로 떨어진 문제인가. 국민은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이 미국의 요구를 하나씩 받아주는 대가로 우리가 원하는 안보·원자력 분야의 권한을 얻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미국이 호르무즈 파병과 천궁-Ⅱ 문제를 핵잠수함이나 농축·재처리 협상과 공식적으로 하나의 거래로 묶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 간 협상은 공개된 문서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미 간에는 통상과 투자, 방위비, 군사협력, 반도체, 원자력, 핵추진잠수함 등 수많은 현안이 동시에 협상 테이블에 올라와 있으며, 각각의 사안이 서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더욱 냉정해야 한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내주는 방식의 거래외교가 아니라 각각의 사안을 철저하게 대한민국의 국익과 주권, 국민 안전이라는 기준에서 판단해야 한다.
호르무즈 파병은 동맹의 충성도 시험이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중요성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한국은 중동산 에너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과 자유로운 항행은 대한민국 경제와 에너지 안보에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항행의 자유를 지키는 것과 미국의 군사작전에 한국군을 직접 투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실제 군사적 기여를 결정한다면 국내법상 절차와 국회의 동의, 장병 안전 문제까지 국민적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미국이 동맹국인 대한민국에 협력을 요청할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 장병을 전쟁 위험이 존재하는 지역에 보내는 문제까지 ‘동맹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압박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청년의 생명은 어떤 외교협상에서도 흥정의 카드가 될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 천궁-Ⅱ까지 내놓으라는 것인가
천궁-Ⅱ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의 방공능력 강화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산 천궁-Ⅱ의 제공 또는 판매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방산정책과 외교·안보 전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천궁-Ⅱ는 대한민국이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기술력을 투입해 개발한 핵심 방공체계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무기 수출과 제공 여부는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주권적 판단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미국이 필요하다고 해서 한국산 무기를 내놓고, 미국이 요구한다고 해서 한국군을 호르무즈에 보내는 방식이라면 대한민국의 외교적 자율성은 어디에 있는가. 동맹은 협력의 관계이지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따르는 관계가 아니다.
더욱이 천궁-Ⅱ 문제에는 러시아와의 관계와 한반도 안보, 방산 수출정책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런 문제를 단순히 ‘동맹이니까 해줘야 한다’는 논리로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협력이 아니라 압박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핵잠수함과 핵연료 문제
여기서 우리는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한국은 오랫동안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건조 가능성을 검토해왔고, 핵연료 공급과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 역시 대한민국의 안보와 원자력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국가적 현안이다.
이 문제는 대한민국 안보와 원자력 정책의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 있는 만큼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핵추진잠수함과 핵연료 관련 권한을 마치 미국이 대한민국에 베푸는 ‘선물’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국방력과 원자력 기술 수준을 고려한다면 언제까지나 미국의 승인만 기다리는 수동적 국가로 남아 있을 수도 없다. 핵추진잠수함은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높이고 해양안보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 역시 평화적 원자력 이용과 에너지 안보, 미래 원전산업의 경쟁력이라는 국가적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이러한 대한민국의 전략적 필요와 정당한 이해관계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만약 호르무즈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핵잠수함 논의가 빨라지고, 천궁-Ⅱ 문제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원자력 협상이 유리해지는 식의 거래구조가 존재한다면 정부는 이를 국민 앞에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무엇을 주고 무엇을 얻는 협상인지 국민이 알아야 한다.
이제 미국에도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미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만 질문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정부도 미국이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당당하게 물어야 한다. 호르무즈 파병을 요구한다면 한국의 에너지 안보와 우리 장병의 안전을 위해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보장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미국이 한국에 호르무즈에서의 군사적 역할을 요구하고 우크라이나에 한국산 방공체계 지원을 요청한다면,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미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도 분명해야 한다. 동맹은 상호성 위에서 유지될 때 지속 가능하다.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 대화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의 규모와 방식을 조정하려 한다면 대한민국의 안보 우려도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한국에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동참하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한반도의 핵심 안보 문제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일방적으로 맞춰야 한다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에 가장 직접적인 안보 위협은 여전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군에는 해외에서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면서 한반도 방위태세에서는 북한을 의식해 양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동맹의 상호성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미국은 대한민국에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도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 미국이 호르무즈 협력을 원한다면 한국의 국익과 장병 안전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천궁-Ⅱ 문제를 제기한다면 대한민국의 방산주권과 대러 관계, 한반도 안보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 핵추진잠수함과 핵연료 문제에서는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율성과 원자력 산업의 미래를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동맹의 모습이다.
대한민국은 ‘예스’와 ‘노’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미국의 모든 요구에 무조건 ‘예스’라고 답하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호르무즈 파병은 국민과 장병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고, 천궁-Ⅱ 수출과 제공은 대한민국의 방산주권과 외교전략이 걸린 문제다.
한미연합훈련 역시 한반도의 방위태세와 직결된 문제이며 핵잠수함과 핵연료 협상은 앞으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의 안보와 원자력 산업을 좌우할 문제다. 이처럼 성격이 전혀 다른 사안들을 하나의 거대한 흥정판에 올려놓아서는 안 된다.
미국이 무엇을 요구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에 무엇이 필요하느냐이다. 미국이 자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역시 대한민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반미가 아니다. 오히려 성숙하고 지속 가능한 한미동맹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다. 한미동맹이 진정한 동맹이라면 미국의 이익만큼 대한민국의 이익과 주권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할 자유가 있고 세계전략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대한민국 역시 우리의 안보를 지키고 국익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대한민국의 전략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호르무즈 문제는 호르무즈대로 대한민국의 국익에 따라 판단하고, 천궁-Ⅱ 문제 역시 대한민국의 국익과 방산정책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핵추진잠수함과 핵연료 문제는 당당하게 협상하되 한반도 방위태세만큼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야 한다.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는 순간
미국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호르무즈에 병력을 보내는 결정이 이뤄진다면 그것이 앞으로 어떤 선례가 될지도 생각해야 한다. 한번 외교적 압박에 밀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시작하면 다음에는 또 다른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그 요구가 대미투자 확대가 될 수도 있고 반도체 공장 증설이나 추가적인 통상·관세 협상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요구를 받아들일 때마다 새로운 요구가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대한민국의 협상력은 오히려 약해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동맹을 지키는 것과 미국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같은 의미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 산업기술을 가진 국가이며 스스로 국익을 판단하고 선택할 능력을 갖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항행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 장병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지, 또 그 결정이 통상·관세·안보 현안과 얽혀 이뤄지는 것이 타당한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정부는 분명히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관세와 맞바꾸지 말고 우리 장병의 생명을 대미투자나 경제협상의 카드로 삼아서도 안 된다. 한미동맹은 지키되 대한민국의 국익과 주권까지 양보하는 동맹은 거부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국에 대한 굴복이 아니라 동맹을 기반으로 한 당당한 협상력이다. 호르무즈 문제는 단순히 군함 한 척이나 항공기 한 대를 보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어떠한 외교원칙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을 것인가의 문제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조선·방산·반도체·원자력 기술을 가진 국가다. 우리는 미국의 보호만 받아야 하는 국가가 아니며 미국 역시 인도·태평양 전략과 첨단산업 공급망, 안보협력에서 대한민국의 전략적 가치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정부는 협상 테이블에서 위축돼서는 안 된다. 호르무즈 파병을 서두르지 말고 천궁-Ⅱ 문제도 미국의 요구만을 기준으로 결정하지 말아야 한다. 핵추진잠수함과 핵연료 문제 역시 미국의 시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전략적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협상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가능한 범위에서 국민에게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무엇을 요구받고 있고 무엇을 협상하고 있으며,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양보하려 하는지를 국민이 알아야 정부의 외교정책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파병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방산기술을 외교적 흥정의 대상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호르무즈가 미끼가 되어서는 안 되고, 천궁-Ⅱ가 흥정의 카드가 되어서도 안 되며, 핵잠수함이 당근처럼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적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종속국도 아니다. 한미동맹은 지켜야 하지만 동맹을 지키는 것과 대한민국의 주권과 국익을 포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국 앞에서 무릎을 꿇는 정부가 아니라 미국과 당당하게 협상하는 정부다. 호르무즈에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생명을 함부로 걸지 말고, 천궁-Ⅱ는 대한민국의 국익에 따라 결정하며, 핵잠수함과 핵연료 문제는 우리의 전략적 권리와 필요라는 관점에서 협상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 앞에 당당하게 답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고 있는가. 이 질문에 정부가 명확하게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미동맹은 일방적인 의존이 아니라 서로의 국익을 존중하는 진정한 전략적 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민주화추진협의회 사무총장 조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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